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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악순환의 한반도, 대화 시작하려면 한미훈련 유예해야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편집부 | 승인 2022.06.18 16:42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5월 하순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에선 '북한 비중'이 크게 낮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한미정상회담 결과로 나온 공동성명을 보면 북한 관련 내용은 전체 분량의 약 6분의 1에 불과했다. 바이든의 언행을 통해서도 미국이 대북정책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비무장지대 대신에 평택에 있는 삼성반도체 공장을 찾았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할 말이 있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 "헬로(Hello)"라고 간단히 답하고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끝(period)"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바이든이 일본을 거쳐 귀국길에 올랐을 때, 북한은 3발의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당초 한미 양국에선 북한이 바이든의 방한 직전이나 방한 기간에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었다. 그래야만 한미일의 관심을 끌면서 외교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바이든의 한일 순방 직후를 택했다. 이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이 외교적 성격보다는 전력화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 이슈가 간단치 않은 상황임을 일깨워주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2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연설을 한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정상회담과 북한: 어제와 오늘

 

이번 한미공동성명에는 북한 관련 내용의 분량은 많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변화는 있었다. 우선 한미동맹의 대북 군사적 태세의 변화이다.

 

한미 양국은 2018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본격화되면서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가동을 유보했고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도 자제했다. 한미연합훈련도 3월과 8월의 전구급(Full scale) 훈련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중심의 지휘소 규모로 축소했고 기동훈련은 대대급 규모로 축소했었다.

 

이에 반해 이번 정상회담에선 한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를 재가동하고 미국의 전략자산을 적시에 전개하며 한미연합연습과 훈련의 범위와 규모를 확대키로 합의했다.

 

이번 공동성명에서 문재인-트럼프 정부 때의 유산을 지운 것도 주목을 끈다. 2018년 남북 판문점 선언과 북미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대표적이다. 판문점 선언은 11년 만에 나온 남북 정상간 합의이고, 싱가포르 공동성명은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간 합의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무게가 가볍지 않다.

 

이를 반영하듯 문재인-바이든의 2021년 5월 정상회담에서도 이들 합의를 비롯한 "기존의 남북 간,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라는 공동의 믿음을 재확인하였다".

당시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 때의 북미 합의를 존중키로 한 데에는 문재인 정부의 설득이 주효했다. 이에 반해 이번 공동성명에는 이러한 취지를 담은 구절이 사라졌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굴종외교"로 표현한 윤석열 정부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예민하게 반응해온 인권 문제에 대한 언급의 차이도 있다. 문재인-바이든 성명에선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수준으로 언급된 반면에, 윤석열-바이든 성명에선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였다"로 표현 수위가 높아졌다.

 

동일한 표현이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행간의 차이를 읽을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을 전후해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 대신에 '북한의 비핵화'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라는 표현을 사용했었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들은 일방적이고 비현실적인 요구를 담은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었고 북한도 일고의 가치가 없다며 일축했었다. 이에 따라 문재인-바이든 성명에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로 표기되었었다. 이 역시 문재인 정부의 설득이 주효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윤석열-바이든 성명에서도 이와 동일한 표현이 사용된 게 주목된다. 윤석열 정부가 선호한 '북한의 비핵화'나 'CVID'로 표기할 경우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수 있다는 미국의 우려를 행간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달라진 북한: 어제의 북한이 아니다

 

한미정상회담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외교적 해결보다는 한미동맹 강화를 통한 군사적 대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언행은 자제하면서도 '북핵 해결'을 사실상 포기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양국 정부는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는 원칙적인 입장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불러내기 위한 적극적인 유인책은 마다하고 있다.

 

이에 반해 북한은 '달라진 마이웨이'를 고수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북한은 핵실험이나 미사일 시험발사를 '외교적 목적'으로도 사용했었다. '나를 잊지 말라'며 미국의 관심을 환기시켜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기 위한 성격도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2018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있었던 '톱 다운' 방식의 대미·대남 협상이 허망하게 끝났다고 판단한 이후에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미를 향해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겠다'며, 적대시정책 철회를 행동으로 보여줘야만 협상에 임할 수 있다는 자세로 돌아섰다.

 

또 '과거의 북한'은 미국 주도의 경제제재에 비명도 지르고 제재를 풀어달라고 호소도 했었다. 하지만 2021년 1월 8차 노동당 대회 이후에는 대북 제재를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1990년대 식량난으로 인한 '고난의 행군'과 최근 코로나 사태에 대한 대응을 비교해봐도 달라진 북한을 읽을 수 있다.

'고난의 행군' 시기의 김정일 정권은 식량난의 주된 원인을 미국의 제재 탓으로 돌리면서도 미국 등 국제사회와 남한의 인도적 지원은 받았었다. 그런데 김정은 정권은 최근 코로나 확산을 "건국 이래 대동난"이라고 표현하면서도 제재를 탓하지도 않고 한미의 인도적 제안에도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미는 달라진 북한이 아니라 예전의 북한을 상대하고 있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러하다. 하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활동을 여전히 '관심 끌기' 차원에서 분석하는 경향이다.

 

일례로 북한이 올해 초에 미사일 시험발사를 연이어 하자,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우리로부터 주목을 받기 위해 미사일 시험 발사를 지속하는 것"이라며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관성적인 분석은 북한이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바이든의 한일 방문 직전이나 그 기간에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예상은 빗나갔다.

또 하나는 북한이 비핵화를 선택하면 북한의 경제발전을 지원하겠다는 접근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고 바이든 행정부도 이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는 북한이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만큼(혹은 어려울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경제지원을 비핵화와 연계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깔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비핵화는 경제적 흥정물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미의 경제 지원도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화의 문을 열려면: 1992년 '팀스피릿'에서 다시 읽는 역사적 지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증강이 '협상용'도 아니고 '지원 받기용'도 아니라면 무엇을 위한 것일까? 북한이 작년부터 부쩍 강조해온 두 가지 표현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군사력 균형"과 "전쟁 억제력"이 바로 그것이다. 즉, 군사적 적대관계에 있는 한·미·일을 상대로 최대한 군사력 균형을 맞춰 전쟁을 억제하겠다는 것이 북한의 근본적인 의도이자 목표라는 것이다.

 

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 격화되고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전쟁 억제력" 확보에 대한 북한의 강박관념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북한의 선택이 유감스럽고 우려스러운 것은 분명하지만, 지피지기(知彼知己)를 해보면 전혀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한·미·일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에만 주목하지만,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의 군사력은 북한을 압도한다. 최근 한국과 일본의 자체적인 군사력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17년 세계 12위로 평가받았던 한국의 군사력은 최근 세계 6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특히 킬체인(kill chain)–한국형 미사일방어체제(KAMD)-대량응징보복으로 구성된 3축 체계가 매우 강해지고 있다. 전수방위 원칙을 내세워 방위비 증강과 공격용 무기 도입을 자제했던 일본도 GDP 대비 방위비 2%로의 인상과 '적기지 공격론'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에 맞서 북한은 핵과 미사일에 선택과 집중을 하면서 신형 미사일 보유를 통해 군사력 균형을 유지하고 전쟁 억제력을 강화하려고 한다. 북한이 최근 선보이고 있는 미사일의 특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한·미·일의 미사일방어체제(MD)를 무력화하고자 하는 의도를, 잠수함이나 열차에서 쏘는 미사일은 발사 플랫폼을 다양화해 2차 공격 능력을 확보하겠다는 뜻을 품고 있다. 또 전술핵무기 개발은 전쟁 발발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의지를 과시함으로써 전쟁 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속성이 강하다.

 

그럼 북한의 폭주를 막을 방법은 무엇일까? 경제적 고통을 높이려는 대북 제재 강화나 경제적 숨통을 터주겠다는 대북 지원 의사 표명으로는 역부족이다. 한미일의 군비증강과 군사 훈련 강화도 악순환을 키울 뿐이다. 그럼 뭐가 있을까? 그건 북핵 문제의 기본이 군사 문제에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깨달음에 있다.

 

한·미·일이 북한의 무기고와 각종 시험 못지않게 자신들의 무기고에 쌓여가는 첨단무기들과 이들 무기로 수시로 훈련하는 모습을 바라볼 줄 아는 지혜에 있다. 이러한 지적이 대북 억제가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억제는 난무하는데 대화는 실종된 현실을 직시하자는 취지이다.

 

공식적인 남북대화는 2018년 12월 이후 중단된 상태이다. 1971년에 남북대화가 시작된 이래 최장기간이다. 북미대화도 2019년 10월 이후 중단되었다. 이 역시 이례적이다. 과거에는 남한이나 미국이 조건을 내세우면서 대화를 거부한 적이 종종 있었지만, 최근에는 북한이 대화의 문을 굳게 잠그고 있다. 한미가 전제조건 없이 대화하자고 해도 무응답이다.

안타까운 현실은 이 지점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미가 효과가 없는 대북 조치와 제의는 반복하면서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조치는 할 수 없다거나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택은 한미가 연합훈련 유예를 선언하면서 북한에 대화를 제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미연합훈련 중단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여러 차례 약속했던 바이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이러한 약속 불이행과 대화 중단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이는 거꾸로 한미가 연합훈련 유예를 선언하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대화를 재개하는 데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년이면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북핵 문제가 본격화된 지 30년을 맞는다. 그런데 북핵 문제의 발생은 한미동맹의 약속 불이행과 떼어놓을 수 없다. 1992년 1월에 노태우와 조지 H.W 부시가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팀 스피릿'을 그해 연말 양국 국방장관이 재개를 선언하고 이듬해에 강행한 것이다.

 

북핵의 발단 원인 가운데 하나를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면 새로운 시작도 이 교훈에서 찾아야 한다. 모쪼록 한미가 조속히 연합훈련 유예를 선언함으로써 악순환과 위기가 예고된 한반도의 앞날을 주도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한미 연합훈련 유예선언의 효과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시도할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미국이 과거에 여러차례 약속했던 바를 늦게라도 지키려고 할 때, 비로소 대화재개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편집부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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