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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남종국 지음 <중세를 오해하는 현대인에게>구지훈(창원대학교 사학과 교수)
편집부 | 승인 2022.06.17 18:43
남종국 지음 <중세를 오해하는 현대인에게>(서해문집, 2021년 11월 출판)

중세의 얽힌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방법

“노예와 같은 피지배 계층은 오랫동안 역사 서술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역사는 항상 왕후장상 등 지배 계급의 역사였고 그들이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기술되어 왔다. 그렇지만 20세기 후반 유럽 역사학계는 ‘위로부터의 역사’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역사’ 쓰기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 어떤 사람들과 어떤 사건들을 통해 역사를 배우고 기억하느냐가 그 나라의 역사의식, 역사의 수준과 품격 그리고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 221쪽

서양의 중세는 언제나 일반 대중에게는 과장되고 부풀려져 다가왔다. 실제의 모습보다 더욱 괴기스럽게, 혹은 더욱 낭만스럽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중세라는 시대가 우리에게 그 모습을 드러낼 때 실제 역사의 모습보다는 오히려 영화나 소설 같은 대중문화를 통해 특정한 부분들이 상당히 과장되거나 강조, 혹은 축소되어 표현된 까닭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언급한 개인적 에피소드에서 받았다는 질문은 사실 2022년인 지금에 와서도 서양의 중세를 연구하는 이들이라면 아마 누구나 한 번쯤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받아보았을 법한 질문이다. 여전히 중세는 암흑의 시기이고, 신의 이름으로 그 어떤 것이 행해져도 이상하지 않으며 총명한 여성은 마녀라는 이름으로 불태워 죽이는 것이 정상이었던 때라고 피상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책 제목대로 현대인들은 많은 부분에서, 중세를 ‘오해’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서양의 중세는 왜 현대인들에게 ‘오해’받고 있는 것일까? 저자와 마찬가지로 서양 중세사와 미술사를 전공하는 평자의 ‘엄살 아닌 엄살’대로 말하자면 중세보다 더 오래된 시기인 고대 그리스나 로마 시대와 비교해 보아도 오히려 더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휑하니 유적만 남은 고대 그리스의 신전 터나 고대 로마제국 황제의 목욕탕, 콜로세움 앞에서 사람들은 화려했던 과거를 상상하지만, 중세 시대에 세워져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 고딕 양식의 뾰족한 종탑 앞에서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 중세를 마치 사실인 듯이 이야기한다. 대체 이 괴리감은 어디서 유래하는 것일까?

서양의 중세는 ‘기록이 있으되 읽을 수 없던’ 시절이다.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등의 원형을 이루는 라틴어는 제한된 식자층만 사용하는 언어였으며 그 외의 속어들은 기록으로 전해지지 못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거기다 게르만과 노르만 등 북유럽에서는 또 다른 언어를 사용하였고 야만족이라 불렸던 이민족들의 언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쇄술은 중세 후반에나 발명되었고, 실제 활성화까지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했다. 거의 대부분의 기록들은 단편적으로 필사되어 전해졌고 또 그 기록들 역시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의 유럽어에 대한 어학능력과 동시에 중세 필경사의 캘리그라피를 독해할 수 있는 능력까지 겸비해야 접근이 가능한 셈이다.

문헌이 아닌 이미지 역시 마찬가지다. 중세미술 이미지들의 도상에 관한 기념비적인 저작을 쓴 에르빈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는 자신의 『도상해석학 연구(Studies in iconology : humanistic themes in the art of the Renaissance)』에서 고대와 중세 초의 여러 이미지들은 기독교의 전파, 그리고 신 중심의 사고로의 전환에 따라 여러 이미지들이 실제 뜻과 의미를 상실하고 환상적인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로 전이되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요컨대 문헌자료는 접근과 이해가 쉽지 않으며, 우리에게 전해지는 중세의 이미지들은 이미 한 번 이상의 의미 왜곡이 일어난 상태인 셈이다. 게다가 “현재와는 500년 이상의 시간 차이가 있고, 물리적 공간으로도 …… 우리와 가깝지 않은” 까닭에 중세인들의 세계관과 현대인들의 그것 사이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기도 하다. 이러한 시공의 간극이라는 엉킨 실타래를 풀어야만 제목에서 저자가 제시한 ‘오해’가 풀리게 될 것이다.

엉킨 실타래를 푸는 방법에 대하여 서양의 지혜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알렉산더 대제처럼 한칼에 타래를 두 동강 내 풀어버리는 방법,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에게 건네준 실타래처럼 이를 차근차근히 되감아 나오는 방법이다. 저자는 중세를 오해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차근차근 이야기를 들려주며 언젠가는 출구를 알려줄 실타래를 천천히 감아나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중세와 현대 사이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나 중세만의 특징적인 요소들은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게끔 담백하게 풀어낸 이야기로, 중세와 현대 사이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요소들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에서 이해를 권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학술적 글쓰기가 가질 수 없는 편안하고 경쾌한 호흡으로 풀어내고 있다.

저자인 남종국 교수는 국내의 서양 중세사학계에서도 손꼽히는 뛰어난 학자이다. 지중해 인근 국가들의 교역과 해상 무역에 대해 오랜 시간 동안 천착해 왔으며 그 외에도 이질적인 두 세계의 접점과 확장에 관해 꾸준히 관점을 넓혀가고 있다. 학술적 글쓰기와 대중적 글쓰기의 중간에서 많은 고민과 생각 끝에 내어놓은 저자의 답변이 여러 독자들에게 평자와 같은 정도의 울림으로 가 닿기를 희망하면서 서평에 갈음하고자 한다.

편집부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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