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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병연 외 지음 <혁신의 시작>최영록(울산과학기술원 경영과학부 교수)
취재부 | 승인 2022.05.28 14:28
김병연 외 8인 <혁신의 시작>(매일경제신문사, 2021년 11월 출판)

이제는 혁신과 기업가정신의 본질에 더욱 충실해야…

“4차 산업혁명 자체가 3차 산업혁명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면에서 덜 파괴적이어서 이에 대해 아시아의 제조업 강국들도 잘 적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 탄소중립 사회의 비전은 창조적 파괴형 규제로서 한국이나 중국 등 아시아의 제조업 강국에 큰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 - 79쪽

한국 경제가 기로에 놓여있다. 세계 경제에서 높아지는 위상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혁신의 부담 때문이다. 혁신은 익숙한 용어이지만 관련 현상이 매우 복잡하여 전체 모습을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 책에서는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들로 구성된 저자들이 ‘혁신의 수요와 공급’ 분석 틀을 제시하며 한국 경제의 혁신 이슈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가고 있다.

이 책은 혁신에 영향을 미치는 거시경제정책, 글로벌 공급망, 경쟁, 공정, 노동시장, 금융시장, 인구구조, 통상정책 등의 요인을 다루는 8개의 장으로 구성되며, 각 장의 말미에 심화노트를 제공하여 해당 주제를 보다 깊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저자들은 한 나라의 혁신이 R&D 투자와 교육 지출과 같은 투입 요소보다는 창조적 사고를 지닌 인적자본과 제도의 공정성 및 유연성, 그리고 기술 융합 역량의 결합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고 있다. 한국이 대기업 중심의 기술 융합 역량은 우수하나 창의적 사고와 공정하고 유연한 제도에서는 선진국에 비해 뒤처진다고 평가한다.

한국은 R&D 투입이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혁신이 저조하고 애플과 같이 글로벌 경제를 주도하는 혁신 기업이 부재한데, 저자들은 그 원인을 한국 제도의 후진성에서 찾고 있다. 이의 극복을 위해서 정부나 국회는 자신들이 만드는 정책과 제도가 혁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혁신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의 특성에는 공정성과 유연성이 있다. 공정성은 혁신을 주도하는 사람이 성공의 과실을 받고 실패의 책임을 지게 하는 제도적 환경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창업가의 자유로운 수익 추구를 보장하고 유인하는 차등의결권, 혁신에 도전하는 동기와 기업가정신을 높이는 적절한 수준의 사회안전망 제도, 시장 진입을 보장하고 독과점 기업의 시장지배력을 제한하는 제도들이 공정한 제도로 이해된다.

이 책은 시장경제 체제가 제공하는 제도적 유연성이 혁신에 매우 유리하다고 보고 유연성을 해치는 관료주의, 규제 등이 혁신의 방해 요소이고 정부 위주의 혁신정책은 오히려 혁신의 실패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며 규제완화를 주장한다. 예를 들면, 플랫폼 노동과 같이 혁신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사회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저자들은 한국 제도의 경직성을 5년 단임제 대통령제와 이에 따른 관료의 유인체계에 의해 영향 받는다고 분석하며, 기업의 지배구조보다 정책의 지배구조에 더 많은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창의적 사고를 갖춘 인적자본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인적자본을 육성하는 한국의 고등교육이 계층 유지의 수단이 되면서 역량 보유와 활용의 불일치가 나타나고 혁신의 씨앗이 사장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점은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는 한국의 대기업이 기술융합에서 유리하다는 것으로 향후에는 이러한 이점이 외부와의 융합, 새롭게 부각되는 기술과의 융합, 중소기업과의 융합으로 확대되어 한국의 혁신 엔진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는 민주주의 국가의 경제성장 및 정치안정이 혁신과 선순환 관계에 있다고 보고 혁신의 수요를 깊게 다루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혁신을 결정하는 ‘수요와 공급 틀’에 대한 보다 완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혁신을 소비하는 또는 필요로 하는 경제 구조, 시장의 수요 특성, 기업의 전략, 제도의 수용성 등 미시적인 분석이 병행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혁신의 공급을 이해하는 과정에서도 이미 알려진 요인을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 유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관료의 개입을 규제와 동일시하는 관점에서 벗어나, 관료의 역할을 공공부문이 불확실성하에서 새로운 가치창출을 시도하는 공공 기업가정신(public entrepreneurship)의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한국이 창의적 인적자본과 제도의 공정성 및 유연성에서 취약하다고 평가하지만, 이에 대한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현재 한국이 직면한 혁신 과제는 “선진국에 진입하는 한국이 추구해야 하는 혁신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일 것이다.

선진국에 진입하는 한국의 경제·사회적 상황을 고려하면 점증적 혁신보다는 기존의 균형을 깨뜨리고 보다 높은 가치의 새로운 균형을 제공하는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가 더 적합한 혁신의 형태라는 점에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창조적 파괴가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피터 드러커가 꿈꾸었던 ‘변화가 일상적이고 건강하며 현상유지가 오히려 불이익이 되는 기업가적 사회(entrepreneurial society)’가 해법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취재부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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