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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용의 국내여행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태원용 | 승인 2022.05.14 20:29

한 번 와보고 싶었다. 강북삼성병원에서 걸어서 25분 걸렸다. 영천시장을 지났다.

오랜만에 독립문을 보았다. 대학교 2학년 때 자전거 타고 전국 일주를 했었다. 국회의사당과 독립문 앞에서 찍은 사진이 생각났다.

‘당신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1908년,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으로 개소되었다. 1923년, 서대문형무소로 운영되었다. 1945년, 해방까지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었다.

1987년까지 서울구치소로 이용되면서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갇히었다. 1998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국가사적 제324호)으로 개관했다.

서대문독립공원은 서대문형무소를 포함하였기에 생각보다 넓었다. 조선시대 중국 사신을 맞이했던 모화관이 독립관으로 복원되었다.

유관순 애국열사를 비롯한 여러 동상이 있었다. 붉은 벽돌로 길에 이어진 담과 망루, 건물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망루는 높이 약 10m의 감시탑으로 상단 8개 변에 감시창이 설치되었다. 싸늘하고 적막한 기운이 느껴졌다.

총 6기가 있었으나 현재 2기만 남았다. 담장은 4m 높이다. 현재 앞쪽 161m와 뒤쪽 214m를 보존하고 있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초를 당하고 죽임을 당했을까?

1923년에 건축한 보안과 청사는 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1층에는 서대문형무소의 건축과 확장 내력을 전시했다.

7분동안 영상을 보았다. 지하실에는 조사실과 취조실이 있었다. 2층에 올라가니 벽 전체가 서대문형무소에 갇혔던 4,800여 명의 수형 기록카드가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마음이 아파 그들을 바라 볼 수가 없었다. 중앙사-12옥사-11옥사-공작사-한센병사-추모공간-여옥사-취사장을 둘어보았다.

옥사는 수감자들이 투옥되었던 건물로 1922년에 건축했다. 12옥사는 2층 벽돌 구조로 총 46개 감방이 있다.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기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투옥자들은 범법자가 아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투쟁했다.

애타게 염원하던 독립도 민주화도 보지 못하고 먼저 하늘나라로 간 사람들도 많다. 미국, 유럽에서 본 교도소와는 느낌이 크게 달랐다.

내 나라 대한민국! 사랑하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사람들에게 존경의 마음이 들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했다. 햇살은 교도소와 어울리지 않게 환하게 비추었다.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맑고 푸르른 하늘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미루어 짐작을 해 보았다.

태원용  gcilbonews@daum.net

태원용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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