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Ph. D)

과반 지지에 미달할 뿐 아니라 0.73%라는 간발의 차이로 대선에서 승리를 거둔 윤석열의 거동이 심상치 않다. 정치 신인이니까 그러려니 하면서도 국정을 불안의 도가니로 몰아넣지 않을까 솔직히 조바심이 인다.

윤 당선자를 필두로 정부와 여야 모두 대선 후 통합과 협치를 강조했다. 아깝게 고배를 마신 이재명도 패배를 인정하고 윤 당선자를 축하하면서 당부한 것이 통합의 정치였다. 진영에 매몰된 패거리 정치를 청산하자는 것이다.

협치의 첫 단추는 정권의 인수인계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여야가 바뀌는 정권 교체에서 이 점이 특히 두드러진다. 지금은 민주당 정권에서 국민의힘 정권으로 교체되고 있는 때이다. 구정권과 신정권이 서로를 배려하면서 정권 인수인계를 해야 한다.

하지만 윤석열 당선자 측의 태도는 당혹감을 갖게 한다. 오만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인수위의 권영세 부위원장, 장제원 당선자 비서실장, 권성동 의원 등 이른바 신정권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안하무인식 언행은 국민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들의 태도는 마치 총칼로 정권을 탈취한 쿠데타 주모자들을 보는 것 같다. 협치가 아니라 싸움에 패했으니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이다. ‘꿩 잡는 게 매’라는 말처럼 어쨌든 이겼으니 따라오라고 억박지른다. 겨우 0.73%였음에도….

그런 오만은 대통령과 당선자의 만남이 불과 4시간 전에 파기된 데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이런 만남에 조건을 다는 것은 결례이다. 정치하는 동네에선 상식에 속한다. 이건 당선자와 대통령 둘 다 해당되는 말이다.

대통령이 이러저러한 것을 약속해야 당선자를 만날 수 있다든지 역으로 당선인이 이런 것을 받아주지 않으면 만나지 않겠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언론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과거 어느 때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윤 당선자가 대통령에게 MB 사면과 김오수 검찰총장 사퇴 그리고 공기업 인사에 대해 당선자의 의견을 강하게 주문한 것이 사달을 일으켰다고 한다. 정말 한심한 일이다. 이 생각이 윤석열 본인에게서 나왔다면 정치에 무지한 소치란 말을 들어도 싸다.

혹 윤의 측근들의 내놓은 생각이라면 더 큰 일이 벌어지기 전에 그들을 정리해야 한다. 분란과 갈등의 씨가 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인수위 발탁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분단론자, 신친일파, 극우론자 일색으로 짜여 있어서 기대를 접게 만든다.

윤석열 당선자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먼저, 0.73% 차이로 당선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재명 후보가 이런 표 차이에도 패배를 인정하고 당선자에게 축하의 말을 전했다. 만약 상황이 바뀌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재검표를 요구하며 나라를 혼란으로 몰고 가진 않았을까?

지금 실세라고 일컫는 국힘당 인사들의 오만방자함을 볼 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윤석열의 복심으로 불리는 권성동은 김오수 검찰총장은 거취를 스스로 알아서 결정해야 한다고 사퇴 압력을 가했다. 이건 윤석열의 생각을 전달한 것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런 방송 인터뷰가 있고 나서 권영세를 비롯해 소위 '윤핵관'들도 유사한 발언들을 쏟아냈다. 여기에 대해 윤석열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을 무언의 지지로 볼 수밖에 없다. 권력을 잡았다고 몇 개월 전의 일을 까마득히 잊고 있다는 것은 집권 의지를 의심케 한다.

문재인 정권에서 검찰총장 임기 때문에 가장 득을 본 사람이 윤석열이다. 마음 약하기 짝이 없는 문 정권이 이 검찰총장 임기 보장 때문에 그를 그만 두게 하지 못했다. 윤석열은 그것을 맘껏 즐기며 국정을 헤집고 다녔고….

결과론적 얘기지만 전 정권들이 했던 것처럼 그의 약점을 캐내어 파면이라도 시켰다면 대통령 당선에까지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그는 자리에서 끝까지 버텼다. 여느 검찰총장이었다면 그만둬도 몇 번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오늘 김오수 검찰총장은 사퇴 압력을 일축하고 검찰총장 본연의 일에 충실하겠다고 했다. 멀리 볼 필요 없이 전임 총장 윤석열만큼만 하면 된다. 어찌 알겠는가. 정권과 대립각을 세워서 김오수가 대통령 후보 반열에 오를 수 있을지.

이건 김진욱 공수처장과 박은정 지청장 임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 등 이른바 반윤 라인 검사들도 마찬가지다. 절대로 스스로 그만둬서는 안 된다. 사퇴가 개인에게는 편한 일일지 모르나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크나큰 손실이다. 이럴 때 윤석열과 같은 끈기가 필요하다.

윤석열은 대통령에 취임하기도 전, 당선자 신분으로 선언적 의미의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청와대 이전, 검찰권 강화, 원전 폐기 철폐, 대북 강경 정책, 대장동 전면 수사 등...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고 있다. 역사를 후퇴시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죄는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될 때 의미가 있다. 이 말은 유명한 법언(法言)이기도 하지만 윤 당선자가 즐겨 쓰는 말이기도 하다. 맞는 말이다. 대장동 사건만 해도 권력 잡은 자의 의지에 따라 수사 방향이 왔다갔다 한다면 법 앞에 평등이 아니라 권력 앞에 굴종하는 것밖에 안 된다.

아직도 자세를 수습할 시간은 있다. 5월 대통령 취임까지 한 달 20일 정도 남았다. 윤 당선자측은 반대 진영에 보복의 칼을 갈 것이 아니라 국민 통합과 협치를 위해 무엇이 진정 필요한지 지혜를 구할 때이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란 말을 기억하기 바란다.

발행인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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