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오 지음 <한국 현재사>(추수밭, 2021년 11월 출판)

이 책의 저자 주진오 교수는 진보성향의 역사학자로 학계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왔다. 주 교수님을 생각하면 나는 그의 선친도 함께 생각난다. 동국대에서 농업경제학을 가르친 진보적 경제학자 고(故) 주종환(2014년 작고) 교수님 역시 강단의 울타리를 벗어나 진보적 시민단체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언젠가 서울시청 앞에서 ‘박정희 기념관 건립반대’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이 책의 서명은 ‘한국현대사’가 아니고 ‘한국현재사’이다. 나는 바로 이 지점에 특별히 주목한다. 대개의 역사 저술은 과거사를 다룬다. 반면 이 책은 현재사, 즉 당대사를 다루고 있다. ‘역사(歷史)’는 ‘지난 얘기’라는 고정관념을 탈피했다. 따라서 이 책은 컴컴한 골방에서 쓴 묵은 옛 얘기의 기록물이 아니라 강연장에서, 거리에서 땀 흘리며 쓴 한 투사의 분투기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엔 전사(前史)가 있다. 역사학자의 길을 걸으면서 그는 프랑스의 역사학자 장 셰노가 쓴 <무엇을 위한 역사학인가>라는 책을 읽고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바로 ‘실천’이라고 확신하게 되었고, 이는 역사학자로서의 삶을 걸으면서 평생의 화두가 되었다. 이런 출발로 인해 그는 연구실을 벗어나 현장을 찾았으며, ‘공감에 기반한 역사학’을 추구해왔다. 그가 SNS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 책은 네 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를 크게 보면 역사 인물에 대한 평가, ‘위안부’ 문제, 국정교과서 논란 등 현안, 바람직한 역사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등으로 요약된다. 인물이든 사안이든 어떠한 형태로든 평가는 내려지기 마련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역사학자로서 자신의 고민, 입장 등을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어쩌면 자신이 논쟁의 한 복판에 설 수 있음에도 이를 회피하지 않았다.

이념대립이 극심한 한국사회에서 역사 인물에 대한 평가는 때로는 극단적이기도 하다. 이승만과 박정희가 그 대표적이다. 과도한 찬사와 극단적 비난으로 치달은 양극단의 장막을 걷어내면 그 어느 지점에선가 그들에 대한 합당하고도 절대적인 평가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는 엄정한 사료 분석과 합리적 비판의식이 전제돼야 가능한 일이다. 저자는 이념의 포로가 되고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돼 뒤바뀌고 뒤틀린 역사를 아파했다.

진보성향의 역사학자로서 약자에 대한 배려, 부당한 권력 행태에 대한 저항은 응당한 것이기도 하지만 고맙기도 하다. 제주 4.3사건 등 민간인 피해사건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 잊히고 묻힌 역사 속의 여성들에 대한 관조, 특히 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성찰적 태도는 박수받아 마땅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의 건국절 논란, 국정 역사 교과서 논란 당시 그는 역사학자로서 저항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근래 역사물이 영화나 드라마로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 한 편이 논문 백 편보다, 역사교사 천 명보다 더 많은 영향력과 의미를 던지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역사학자는 어떠해야 할 것인가. 시청자(관람자)로만 머물 것인가. 아니면 참여자로 나설 것인가. 저자는 후자에 속한다. 일찌감치 그는 자신이 속한 ‘사학과’를 ‘역사콘텐츠학과’로 개명하였고, 방송이나 영화 제작에 역사 전문가로서 참여해왔는데 이는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흔히 역사학은 사료를 바탕으로 고증하고 연구, 평가하는 학문으로 정의한다. 이런 식이라면 역사학자는 주체적인 기록자가 아니라 누군가가 기록한 것을 연구하는 제 3자 정도로 인식된다. 이는 역사학, 역사학자의 역량과 소임을 축소시키는 동시에 지극히 소극적으로 정의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역사는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무궁무진한 콘텐츠를 품고 있는 역사는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 하며, 역사학자는 대중과 함께 호흡하고 이를 기록해야 한다. 이것이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라고 나는 읽었다.

편집부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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