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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작가 문홍연의 # 일상 - 노거수를 찾아서....
문홍연 | 승인 2022.01.16 19:57

#일상
노거수를 찾아서....


"코로나19"가 장기간 지속되다 보니 가장 불편한게 여행이라고들 합니다. 특히 외국을 자주 들락거리는 분들에게는 참으로 견디기가 힘든 시간이겠지요. 

농부는 요즘 일상의 무료함을 떨치는 한 방편으로 노거수(老巨樹)를 찾아가는 여행 아닌 여행을 즐기고 있답니다.
일행이라고 해봐야 아내와 단둘 뿐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노거수(老巨樹)는 
수령이 오래되고 거대한 나무를 뜻하지요. (아무리 오래된 나무라도 분재(盆栽)로 만들면 노거수라고 할 수는 없구요)

노거수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문화재와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시골 마을의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는 촌락을 처음 만들면서 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마을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고, 또 한여름 주민들이 일을 하다가 쉬는 공간의 역할도 하니 농민들의 생활사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마을 입구의 느티나무를 보면 자연스럽게 마을의 역사를 가늠할수도 있겠네요.


노거수를 알고 싶어서 검색을 해보니 우리나라에는 약 1000여 종의 나무가 있다네요 휴전선 이남의 대한민국에도 
약 600∼700여 종의 다양한 나무들이 자란다니 나무종류는 무궁무진합니다.

하지만 수백종의 나무가 있어도 노거수로 이름을 드날리는 나무는 그렇게 많지를 않더라구요. 제가 아는 나무는 기껏해야 소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비자나무, 상수리나무, 감나무 정도입니다.

(신문에서 봤던 연수사 은행나무의 단풍)

연수사(演水寺) 은행나무는 1993년 1월 8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124호로 지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노거수를 소개하자면 거창읍 남서쪽에 위치한 감악산(甘岳山:951m) 북쪽의 해발 800m 지점에 있는 연수사(演水寺) 경내에 있습니다. 사찰에서는 은행열매가 일종의 양식이라 은행나무를 심을때 암나무로 골라서 심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연수사 은행나무는 수나무라고 하네요 당연히 은행열매가 안열린다고 합니다.
무슨 연유가 있을까요? 그것이 아니면 심을때 암·수를 모르고 심었을수도....

(거창군 소개책자에 나오는 은행나무)

재미있는 전설을 하나 소개합니다.

"이 은행나무는 600년 전 고려왕족과 혼인을 한 여인이 고려가 멸망하여 아들과 함께 속세를 떠나 연수사로 들어와 심은 것으로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애틋한 그리움과 모정이 묻어 있다. 지금도 아들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친 어머니의 혼을 담고 있는 은행나무가 가끔 슬피 우는데, 곡을 하듯 슬피 우는 은행나무의 울음은 인근의 마을사람들도 듣고 함께 울게 할 만큼 그 슬픔의 흐느낌이 애절하다고 한다. 높이 솟은 은행나무의 몸에는 눈물이 흘러내린 흔적인 듯 한 고랑이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혹, 어머니가 아들을 그리며 600년을 넘게 흘린 눈물이 골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지 신기하기만 하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발췌> 

(저 멀리 거창읍내가 내려다 보입니다. 거창읍을 호위라도 하는 듯이 대웅전은 북향으로 배치가 되어 있습니다)

노거수를 보려고 들린 연수사지만, 사찰 소개를 안하려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절집을 한바퀴 돌면서 사진도 찍고 약수도 한사발 들이키고 한참을 서성거리다가 집으로 돌아갑니다.

연수사 소개글은 네이버에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연수사는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손꼽히는 천년 고찰이지만 자세한 연혁은 전해지지 않고 많은 이설이 있을 뿐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802년(신라 애장왕 3)에 감악 조사(紺岳祖師)가 
현재 가람이 있는 곳 남쪽에 절을 세우기 위해 서까래 재목인 큰 통나무를 다듬어 놓았는데, 한밤중에 갑자기 없어져 그다음 날 찾아보니 현 사찰 대웅전 자리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에 연유가 있다 싶어 현재 도량이 있는 곳에 건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감악 조사가 남쪽에 절을 세웠으나 빈대 때문에 절이 망하게 되어 능선 북쪽인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연수사의 가람 배치는 드물게 북향인데, 해발 700m의 높은 곳에서 마치 거창군을 수호하듯 내려다보고 있다. 신라 헌강왕[재위 875~885] 때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지병인 중풍에 시달리고 있던 헌강왕이 여기서 나는 약수를 마시고 병을 고친 뒤에 감사의 뜻으로 절을 창건하고 이름을 ‘연수사(演水寺)’라고 지었다고 한다. 

또 고려 공민왕[재위 1352~1374] 때 감악 조사가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조선 숙종 연간에 벽암 선사(碧嚴禪師) [1575~1660]가 사찰을 중수하고 또 10여 동의 건물을 지어 불도를 크게 일으켰다. 1991년에 혜일(慧一) 승려가 대웅전을 개축하는 등 면모를 일신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발췌>

문홍연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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