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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생각하다 - 『지산유고(止山遺稿)』를 읽고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철학박사)
이명재 | 승인 2022.01.15 15:07
경북독립운동기념관에서 출판한 『국역 지산유고』표지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이 있다. 옛것을 본받아 새 것을 만든다는 뜻이다. 넓게는 연면히 흐르는 역사에도 이 정신이 녹아 있고, 또 좁게는 개인의 삶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하지만 이것을 가꾸고 적용해 풍요로운 생활을 일구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이런 노력들이 우리 경북지역에서 움트는 것은 축하하고 칭찬할 일이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서 자료총서를 발간하고 있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경북을 근거지로 독립운동을 한 지사(志士)들이 남긴 글들을 모아 자료총서로 묶어내고 있다. 벌써 열 권째라고 한다.

그 자료총서 10권째가 이기찬 선생의 <止山遺稿(지산유고)>이다. 지산(止山)은 이기찬 선생의 아호이다. 선생은 철종 4년(1853) 경북 청송에서 태어나 1908년 청원군 문의면 후곡리에서 향년 55세로 이생을 마감했다. 길지 않은 생애에서 크고 작은 업적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업적 중 대표적으로 손꼽을 수 있는 것이 1896년에 조동석(趙東奭) 여중룡(呂中龍) 허위(許蔿) 등과 함께 김산 의병의 창의(倡義)한 것이다. 여기서 지산은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의병장으로 왜구에 맞서 싸운 내용은 지산유고2 서(書)와 지산유고3 일기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의병은 의로운 군대를 일컫는 것이다. 물론 이국(異國)에 대항해 국가와 민족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어난 군대이다. 따라서 국가의 지원도 없다. 희생만 있고 보상은 없는 것이 의병이다. 그래서 의로운 군대라고 한다.

지산이 활동하던 시기는 일제가 무단으로 우리나라를 지배하려고 흑심을 드러낸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강제 체결된 직후이다. 선생 52세 때의 일로 뜻 있는 사람들의 비분강개(悲憤慷慨)가 한반도에 진동했다. 선생 연보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時與湖隱李上舍友蓮李參奉諸公 痛哭而罷

(시여호은이상사우련이참봉제공 통곡이파)

이때 호은 이상사와 우련 이 참봉 제공들과 함께 통곡하고 헤어졌다.

지산유고는 5권1책에 지산 선생의 연보가 포함된 가장(家狀) 뒤에 붙어 있다. 각 권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지산유고1 / () 66

지산유고2 / () 53편의 서간문

지산유고3 / 일기격고문(檄告文), (), 통문(通文각 1편씩

지산유고4 / 잡저(雜著)

지산유고5 / 부록-(), 애사(哀辭), 제문(祭文)

지산유고 가장(家狀)

색인

영인

위의 글들에서 지산의 학적 깊이뿐 아니라 인간적 풍모를 읽을 수 있다. 지산문고1의 시는 한시를 원문과 함께 현대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국역해서 실었다. 한시의 장르도 5언절구, 5언율시, 7언절구, 7언율시, 5언절구 연속, 7언절구 연속 등 한시의 전 장르를 망라하고 있다. 지산 선생의 한학에 대한 조예가 깊고도 넓다는 얘기가 된다. 이것은 의병장 사임 후 청주 문의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길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止山遺稿(지산유고)』 필사본 표지

자산유고2는 53편의 서간문 모음이다. 편지를 문학으로 갈래짓는다면 수필의 영역에 속한다. 붓가는 대로 쓴 비교적 자유로운 글이다. 지산의 편지에서 그의 절제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또 교유의 폭이 무척 넓다는 점이다. 사람의 다양함은 말할 것 없거니와 대상이 전국에 망라되어 있다. 경북의 유생이자 창의한 의병장으로서의 진면목을 잘 알 수 있다.

자산유고3은 의병장으로서의 지산 선생을 살필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의병장으로서의 사상과 역사 그리고 인간성이 드러나게 또는 행간으로 서술되어 있다. 일기와 격고문(檄告文), 소(疏), 통문(通文) 각 한 편씩이 수록되어 있다. 모두 창의와 관련되어 있는 글이다.

일기는 개인의 기록이지만 가끔 역사의 빈 부분을 보완해 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령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나치의 폭압성을 고발하고 있고,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는 임진왜란 때 왜적 앞에서의 긴박성을 증언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기의 서두에 밝히고 있듯이 지산 선생의 일기는 김산의진을 창의하고 그가 대장으로 있으면서 쓴 약 2개월 동안의 일지이다. 김산의진에 대한 자료가 빈한한데 그의 일기는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당시 경향 각지에서 활동한 우국충정의 사람들을 기록으로 만나는 자체가 독자에게 힘이 되고 용기를 북돋게 한다.

격고문은 창의의 대의를 밝히면서 의진에 동참할 것을 권하는 글이다. 대의명분이 명확함에 대한 지산의 확신이 엿보인다. 소(疏)는 상소문을 말한다. '承諭釋兵後 請討復言事疏(승유석병후 청토복언사소)'는 명을 받들어 병사를 해산한 뒤 토벌과 복수를 청하는 나랏일에 관한 상소이다. 통도내문(通道內文)은 의병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참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지산의 애국심이 배어있는 글들이다.

지산문고4는 잡저(雜著)와 제문(祭文)으로 구성되어 있다. 잡저는 문자 그대로 주제의 방향을 정해놓고 쓴 글이 아니다. 체계 없이 써 둔 잡다한 글을 말한다. 箴(잠) 銘(명) 說(설) 序(서) 발(跋) 上樑文(상량문) 등으로 이루어진 잡저는 모두 25편의 글을 담고 있다. 실생활과 연관이 많은 글들이어서 마음이 간다. 제문은 죽은 사람에 대해 애도의 뜻을 나타내는 글이다. 지산이 직접 쓴 5편의 제문이 올려져 있다.

지산유고1, 시작하는 부분(영인본)

지산유고5는 부록이다. 부록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글로 여기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輓(만), 哀辭(애사), 祭文(제문) 등이 포함되어 있다. 지산의 지인들이 그의 사후 쓴 추도의 글이다. 여기서 지산 선생의 살아생전 애틋한 인간성을 살필 수 있다. 그의 마음이 글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전이된다.

지산유고 끝에 가장(家狀)이 첨가되어 있다. 가장은 한 집안 어른의 행적을 기록한 글이다. 물론 주인공은 지산 선생이다. '지산 이선생 연보'가 포함된 가장은 지산 사후 그의 후손이 정리한 것이다. 연보는 지산 선생의 일생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록하고 있는데, 시대 상황과 교차하며 읽으면 그분의 일대기를 대하는 것과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일찍이 학문에 눈 뜬 모습에서 의로운 선비의 상을 그려볼 수 있다.

몇 가지 독후 감상을 서술하면서 글을 맺으려 한다.

완벽에 가까운 번역은 국역 지산유고의 특장이라 할 수 있다. 국역한 전공자들의 정성과 노고가 읽혀진다. 오탈자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것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출판가에서 오가는 말이 있다. 한문 필사본 번역이 가장 어렵다는…. 지산유고를 국역한 사람들은 이 점을 말끔하게 불식시키고 있다.

이 책은 교양도서로 뿐 아니라 연구자들에겐 좋은 사료가 되고 있다. 일반인은 국역된 것을, 전공자들은 영인본과 대조하면서 원문을 읽어가면 학문하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경북독립운동기념관이 이 점에 착안해 자료총서를 계속 발간하고 있는 것 같은데, 후대 사람들에게 역사적 안목과 정신적 풍요를 선물하는 것이어서 기쁨이 배가된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 선조들의 사료는 책 출판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책을 통해 알려진 그분들의 인물됨과 사상을 연구해서 거울로 삼아야 한다. 전공자들이 점점 줄어가는 상황에서 지자체와 연구단체에서 예산을 지원하고 인력을 확보해서 연구의 결과물을 축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Ph. D)

지산 선생의 올곧은 삶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경북독립운동기념관에서 필사본을 멋진 책자로 출판한 것도 박수를 받을 만하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도 없다. 현재가 없으면 또한 미래도 없다. 『지산유고』를 읽으면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감사할 일이다.

이명재  lmj2284@hanmail.net

이명재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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