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라이프 농부작가 문홍연의 # 일상
농부작가 문홍연의 # 일상 - 만추(晩秋)에 들른 만귀정(晩歸亭)....
문홍연 | 승인 2021.11.07 20:24

#일상
만추(晩秋)에 들른 만귀정(晩歸亭)....

만추(晩秋)라는 단어를 들으면 묘한 기분이 듭니다. 늦을 만(晩)자가 내포하는 특별한 의미 때문이겠지요?
晩은 "늦다"라는 뜻도 있고 저물다, 늙다 그리고 쇠하다는 뜻도 있다고 하네요.

또 하나는 만추(晩秋)라는 영화 때문입니다. 60년도에 이만희 감독이 처음 만들었는데, 몇 십년 후 김수용 감독이 다시 리메이크를 했고, 최근에는 김태용 감독이 현빈과 탕웨이를 주연으로 해서 세 번째로 찍었었지요. 
물론 성공을 했구요. 만추라는 단어에는 그만큼 특별한 매력이 있답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 입동(立冬)이군요. 오늘은 만추의 마지막 날이기도 합니다. 
특별한 날...! 친구들과 어울려 의미가 남다른 만귀정(晩歸亭)을 찾았습니다.


만귀정 입구에 있는 표지석에 새겨진 글씨입니다. 예사롭지 않고 멋스럽네요.

이곳은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신계리 70번지입니다. 워낙 골짜기에 있다보니
올라가는 길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중간에서 다른 차라도 만난다면 난감한 일이 생길 것만 같습니다. 입구의 안내판에는 400m라고 했는데 차라리 걸어올 걸, 조금 후회가 되더군요. 다행히 중간에서 다른 차와 마주치지 않고 무사히 정자에 도착했습니다.

만귀정(晩歸亭)은 "응와(凝窩) 이원조"라는 분이 세웠다고 합니다.

인물 소개는 안내문을 옮기겠습니다.
"이원조(李源祚)는 1792년 성주의 한개마을에서 태어났다.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의 제자로 18세 때 증광문과에 급제했다. 그는 대사간, 공조판서, 판의금부사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나 벼슬을 하는 내내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러다 경주부사로 재직하던 중 부당한 뇌물을 요구하는 암행어사 김세호의 청을 거절하자 앙갚음의 장계로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고 그렇게 그는 59세의 나이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설명문 그대로 해석하면 성정(性情)이 아주 곧은 분이셨습니다. 물론 지금의 관직체계와는 다르겠지만 대사간은 감사원장 비슷한 자리로 생각이 됩니다. 공조판서는 건설부장관이 맞는가요? 판의금부사는 의정부의 벼슬로 종1품이라고 하네요.

결론은 59살에 관직을 버리고 요즘 유행하는 단어로 은퇴를 하셨다는....
그 실천방법으로 귀촌을 택하셨구요.

검소하지만 멋을 부린 정자입니다.
딱히 설명하기가 어려운,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마음은 편안합니다.

만귀(晩歸)는 늦은 귀향이라는 뜻인데 그 분은 정자를 짓고 이렇게 썼다네요. '나는 이제 늙었다. 벼슬길에 종적을 거두고 이 고요한 곳에 몸을 쉬려 한다.'
(요즘으로 치면 59살이 많은 나이가 아니지만 18세기에서는 노인이지요.)

우리같은 범인(凡人)들은 
상상도 못할 일을 실천하셨지요. 
또 현판의 글씨는 응와 선생이 평안남도 자산부사로 있을 때 당시 예서체의 대가였던 소눌(小訥) 조석신(曺錫臣)에게서 미리 받아둔 것이라고 하니 은퇴준비를 단단히 했다는 느낌입니다.


특이하게도 무쇠로 만든 철제 비(碑)가 보입니다 ‘고판서응와이선생흥학창선비’라고 쓰여 있습니다. 내용은 응와 이원조의 학통을 이은 한주 이진상이 이원조의 학문과 덕행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서 철판에다 새겼다고 하는군요. 
제가 과문해서 그렇겠지만 쉽게 접할 수 없는 철제비(碑)였습니다. 

그리고 만귀정의 담장은 거대한 바위를 그대로 살려서 석축을 쌓았는데 굽은 곡선들이 참 아름답습니다. 옛 선인들의 자연을 대하는 선한 마음이 엿보입니다.

마당에도 바위가 그대로 박혀 있었고 잘 생긴 배롱나무 한 그루가 보였습니다. 이곳은 '가야산국립공원'의 한쪽 자락에 있는지라 저 멀리 높게 보이는 봉우리가 가야산의 최고봉 칠불봉이라고 합니다.

설명문에 의하면 응와 선생은 이곳에서 서책을 가까이 하면서 많은 제자들도 양성을 했다니 귀향의 모범이라 할까요.
창선비를 세운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제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물입니다.
이름하여 만산일폭루(萬山一瀑樓).... 옆에는 400년이나 묵었다는 소나무가 누각을 더욱 빛나게 합니다.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은 두말할 것도 없구요

굳이 해석을 하자면 "일만 산의 물이 하나의 폭포로 내려온다".... 또 다른 뜻이 있을 것만 같은데, 농부의 짧은 밑천이 드러날 것 같아서 이쯤에서 줄입니다.


어느 분이 지었는지는 모르겠고
한시를 한편 해석해서 붙여 놓았네요.
(당연히 응와 선생이 지었겠지요?)

"아홉구비 홍개동 한 하늘이 열렸네.
백년을 아껴둔 이 산천일세.
새로이 정자 지어 몸을 누이니,
속세가 아니로세 별천지일세."

응와(凝窩) 이원조선생은 만귀정에서 20여 년을 지내셨다고 합니다.


성주군에서 발행한 소개 책자를 보니 1862년(철종13년) 진주에서 일어난 민란이 전국으로 번져가자 응와 선생은 71세의 노구를 이끌고 성주 관아까지 나가서 폭도들을 설득해 물러가게 했다고도 합니다. 

또 철종임금이 승하 후 흥선대원군의 섭정 시에는 국정을 바로잡도록 
상소를 올리기도 했었구요. 
1871년(고종 8년)에 80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하셨다고 합니다.

사족(蛇足)을 하나 덧붙이면....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주차장을 
조금 더 확충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입구에도 물론 주차장은 없었습니다.
성주군의 작은 배려가 아쉽습니다. 
물론 응와선생의 큰 뜻을 생각하면
이까짓 불편은 아무것도 아닙니다만...

문홍연  gcilbonews@daum.net

문홍연  gcilbonews@daum.net

<저작권자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홍연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상호 : 김천일보 김천iTV  |  경북 김천시 거문들1길 88-74  |  전화번호 : 054-436-2287
등록번호 : 경북, 아 00398  |  대표전화 : (054)437-0478  |  등록일 : 2016년 01월 18일  |  발행인 겸 편집인 : 이명재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성숙  |  e-mail : gcilbonews@daum.net
Copyright © 2022 김천일보 김천iTV.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