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ph. D)

벽화 하나로 이런 난리를 피우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이 아니다. 벽화를 그려서 세상을 풍자하려 한 사람은 그렇다고 해도 그 벽화를 두고 찬반으로 나뉘어 사생 결단의 자세로 싸우는 것은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 하고도 남는다. 세상이 요지경이다.

한 여성을 두고 이유 없이 비하하고 풍자하는 것은 피해야 할 일이다. 주어진 환경이 다르고 생활의 조건이 제각각인 사람들을 한 가지 시각, 즉 무흠하고 순결한 도덕군자 상(像)으로 기대하며 바라보는 것은 무리다. 쥴리벽화도 좀 과했다고 생각한다.

쥴리벽화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비판의 소리가 나왔다. 김상희 국회부의장은 명백한 인권 침해라며 자진해서 철거하라고 촉구했고, 대선 후보인 이낙연 전 대표도 민망하고 말하기 거북하다고 했다. 또 이재명 후보는 금도를 넘은 표현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와중에 쥴리벽화에 대한 야권의 반응은 어떤가. 그야말로 울고 싶은 아이 뺨 맞은 격으로 높은 수위의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몇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는데, 먼저 대선 예비후보 중 한 사람인 최재형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 정치폭력이라고 했다.

또 있다. 역시 대선 후보 출사표를 던진 사람들이다. 하태경은 여성 보호에 도움이 안 되는 여가부 폐지를 주장했고, 윤희숙은 여가부가 정치적 득실에 따라 오락가락한다고 비판했다. 전여옥은 한 단계 높여, 벽화를 그린 사람들을 괴물이라고 했다.

개인의 SNS에 올린 글들이어서 객관성 있게 수용되지 않지만 그들 생각의 일단을 가늠해 볼 수는 있는 의견들이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정치하는 사람들의 입장 표명은 결국 정치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쥴리벽화에 대한 견해 표명도 마찬가지다.

쥴리벽화를 두고 민망하다, 금도를 넘었다, 인권 침해다 등의 반응을 보인 여권 인사들의 말이 거친 언어로 비판한 야권 정치인들의 말보다 더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은 언어 구사의 원칙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언어 사용의 궁극적 목적은 설득하는 데 있다.

싸움에 이기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상대를 결박해서 백기를 들게 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우회적 방법으로 설득해 깨닫게 하는 방법이다. 국힘당 인사들은 주로 전자의 방법을 쓰고 있는 것 같다. 같은 진영 사람들은 환호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반감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개인의 약점을 들추어내어 공격의 고리로 삼는 것은 야비한 행동이다. 꼭 여성의 약점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약점은 긍휼의 마음으로 보호받고 보완되어야 할 일이다. 결코 공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비판엔 객관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쥴리벽화에 보인 정치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드는 의문점이 하나 있다. 주로 야권 인사들에게 묻고 싶다. 최재형, 하태경, 윤희숙, 전여옥 등 국힘당 인사들이 쥴리가 여권 인사와 관련되어있는 사람이었다 해도 저렇게 비분강개(悲憤慷慨)할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울 관철동 한 벽에 그려진 '쥴리벽화'를 보수단체 차들이 가로막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쥴리벽화에 대한 그들의 반응이 결국 정치적 행위이기 쉽다는 것이다. 바른 비판에서 벗어나 있기 쉽다. 대선 예비후보들이란 사실을 감안할 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좋은 기회로 여겼을 법하다. 이런 이들은 비판에 균형추를 상실해서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쉽다.

여성 인권을 강조하며 쥴리벽화를 공격하는 야권 인사들을 보고 작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는 정경심 교수 앞에서 퍼포먼스라면서 유튜버들이 눈을 안대로 가리고 히히득거리고 있었다. 사고로 한 쪽 눈을 잃고 안대를 한 정 교수의 장애를 희화한 것이다.

여성 인권도 중요하지만 장애인 인권도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서기 좋아하는 국힘당 인사들 그때 어디 있었나. 쥴리의 인권은 중요하고 시력 장애를 가진 여성 정경심의 인권은 무참히 짓밟혀도 괜찮은가. 조국의 부인이어서?

쥴리벽화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며 여가부 폐지를 외치고 있다. 여가부가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쥴리를 보호하지 않았다고 폐지하라는 게 말이 되는가! 사회적 약자 보호가 여가부의 주요 업무다. 폐지 주장은 숲을 보지 않고 나무만 바라보는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당사자 윤석열의 반응은 어땠는가. '쥴리벽화에 배후가 있다'는 게 윤의 첫 마디였다. 이런 말은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특수부 검사 출신 윤석열의 입에서나 나올 수 있는 말이다. 특수부는 죄를 특정해 놓고 사건을 만들어가는 식 아닌가. 정치는 검찰 특수부가 아니다. 

국민 각자 대통령 부인에 대해 그리는 상이 있다. 법적으론 하등 문제가 없다고 해도 정서적으로 거리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국민이 좋아하는 영부인은 다정다감하고 사람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며 서민들의 애환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 정도가 아닐까.

이런 것과 먼 거리에 있는 사람은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해도 글쎄? 국민은 대통령과 함께 대통령 부인을 보고도 일희일비(一喜一悲)한다. 용기를 얻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공식 행사에 영부인을 동행하는 것은 공적 인물임을 말해 주는 것 아닌가. 그런 인물에 대해 세미하게 살펴보는 것은 국민의 당연한 자세가 아닐까?

시골 서생인 내가 쥴리에 관심 갖게 된 것은 쥴리벽화로 인해서다. 쥴리가 김건희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관계가 있다면 대통령 후보 부인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과거를 묻지 않고 그런 여성을 대통령 부인으로 세우는 것이 계층 초월의 이해 폭을 확대시켜 주는 일인지...

글을 쓰고 있는 사이 쥴리벽화의 문구들을 흰 페인트로 지웠다는 기사가 떴다. 또 윤석열이 국힘당에 입당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윤석열에게서 무엇에 쫓기는 듯한 초조함이 읽혀진다. 쥴리벽화에서 글자를 지운 것은 잘 한 일이다. 공격에 빌미를 줘서는 안 된다.

윤석열의 무게감도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정권에 맞짱 뜰 때의 인기라면 대대적인 환영식이 열렸을 법도 한데 말이다. 당 대표, 원내 대표도 자리하지 않은 곳에서 입당식이 열렸다고 하니... 대통령은 지나가는 찰나적 인기로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발행인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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