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일상이 멈추어 있는 상황에서 우륵박물관을 찾았다. 어려운 때일수록 향수가 피어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자동차를 몰고 우륵박물관을 향해 가는 도중 조지훈의 시 ‘가야금’이 떠올랐다.

                     가 야 금

                                조지훈 / 詩

1. 휘영청 달 밝은 제 창 열고 홀로 앉다

품에 가득 국화 향기 외로움이 병이어라

 

푸른 담배 연기 하늘에 바람 차고

붉은 술그림자 두 뺨이 더워온다

 

천지가 괴괴한데 찾아올 이 하나 없다

宇宙가 茫茫해도 옛 생각은 새로워라

 

달 아래 쓰러지니 깊은 밤은 바다런 듯

蒼茫한 물결 소리 草屋이 떠나간다

 

2. 조각배 노 젓듯이 가얏고를 앞에 놓고

열두 줄 고른 다음 벽에 기대 말이 없다

 

눈 스르르 감고 나니 흥이 먼저 앞서노라

춤추는 열 손가락 제대로 맡길랏다

 

구름끝 드높은 길 외기러기 울고 가네

銀河 맑은 물에 뭇별이 잠기다니

 

내 무슨 恨이 있어 興亡도 꿈속으로

잊은 듯 되살아서 임 이름 부르는고

 

3. 風流 가얏고에 이는 꿈이 가이 없다

열두 줄 다 끊어도 울리고 말 이 心思라

 

줄줄이 고로 눌러 맺힌 시름 풀이랏다

머리를 끄덕이고 손을 잠깐 쓸쩍 들어

 

뚱뚱 뚱 두두 뚱뚱 흥흥 응 두두뚱 뚱

調格을 다 잊으니 손끝에 피맺힌다

 

구름은 왜 안 가고 달빛은 무삼일 저리 흰고

높아가는 물소리에 靑山이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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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군 대가야읍에 진입하니 문화의 공기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지만 ‘역사’ 대신 ‘문화’를 대입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문화가 미래인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가야금길 98에 위치해 있는 우륵박물관. 악성 우륵을 통해 가야시대의 옛 정취를 맛볼 수 있었다. 박물관 안과 밖은 가야금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봐서인지 환경이 깨끗했다.

우륵박물관 외형이 독특했다. 가야금의 형상을 본떠 건축한 건물이라고 했다. 열을 체크하고 방문자 기록을 기입하고 문화해설사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질서 있는 유물 배치가 살갑게 느껴졌다.

우륵박물관 앞, 한 사람이 가야금을 연주하고 있다. 물론 주인공은 우륵 선생이다. 무엇을 연주하고 있는 걸까? 그가 지었다는 12곡 중 하나? 아니면 아끼던 제자 이문(尼文)이 남겼다는 세 곡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가야금의 재료와 부속들, 생소한 단어들이다. 운족(雲足) 울림통 돌괘 부들 양이두(羊耳頭) 안족(雁足)… 이런 것들이 모여 가야금을 이루고 거기서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소리가 창출되나니…

전시실 입구에 새겨진 ‘가야금을 연주하는 우륵’브론즈 부조(浮彫)이다. 마치 가야금 소리를 발해 관람객들을 환영하는 듯하다. 천 년이 넘는 시공을 우륵이 이어주고 있다고나 할까.

가야금을 만드는 도구들. 하나의 가야금을 만들기 위해 이렇게 많은 도구들을 필요로 한다. 대패 끌 칼 등등. 이것들이 모여 어엿한 가야금 하나가 태어날 수 있다. 소리로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가야금 제작 재료에 대해 궁금증이 많았다. 그러나 상세하게 설명해 놓은 판이 있어서 고마웠다. 가야금과 우륵이 더 가까이 다가오는 듯했다. 은은히 들려오는 가야금 소리가 고왔다.

이왕직아악부가야금보(李王職雅樂部伽倻琴譜)는 궁중음악에 사용된 가야금 음악을 살필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여민락(與民樂) 등 11곡이 수록되어 있다. 백성과 더불어 즐기는 세종의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가야금도 종류가 여럿인 것 같다. 쓰임에 따라 정악가야금(궁중)과 산조가야금(서민)으로 나뉘고 줄(絃)의 수에 따라 18현 가야금, 21현 가야금, 25현 가야금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12현 가야금이 주종을 이루었다.

우리나라의 현악기로 해금 아쟁 양금 거문고 등을 들 수 있다. 그 방면의 전문 악사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놓고 있다. 연주의 명인이 되기 위해 많은 땀과 노력이 따랐을 것이다.

전통악기로 요고와 북한금도 빼놓을 수 없다. 요고(腰鼓)는 장구의 일종으로 오동나무와 말가죽 쇠가족 등을 써서 만든 타악기이다. 북한금(北韓琴)은 한반도 북쪽에서 사용한 가야금인 것 같다.

악학궤범(樂學軌範)은 조선조 성종 때 성현(成俔) 등이 편찬한 음악서이다. 이곳에 가야금의 합자보가 기록되어 있다. 위 사진은 가야금 합자보와 가야금 전후 명칭에 대한 설명이다.

줄풍류의 악기편성이다. 거문고 가야금 해금 피리 대금 단소 장구 등, 현악기(絃樂器)을 중심으로 구성하여 연주했다. 영산회상(靈山會相)이란 이름으로 궁중 연례악(宴禮樂)으로도 연주되었다.

하모니(harmony)는 양악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은은한 소리의 조화는 우리의 전통 음악에서 더 진솔하게 피어난다. 우리 악기의 어울림은 그래서 담백하면서도 잔잔하다. 그래서 마음의 울림이 더 크다.

가야가 멸망의 상황에 이르자 우륵한 제자 이문(尼文)과 함께 신라로 망명한다. 신라 진흥왕은 우륵의 음악에 대한 천부적 자질을 인정해서 가야금을 신라에 접목케 한다. 그뿐 아니다. 음악에 소질이 있는 관리를 우륵에게 보내어 배우게 했다.

삼국사기는 고려조 김부식이 쓴 관찬서이다. 이곳 악지(樂志)에 우륵과 가야금 이야기가 나온다. 우륵에 대한 역사적 접근은 여기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삼국사기는 삼국유사와 함께 우리의 귀중한 역사서이다.

악성 우륵이다. 악성(樂聖)이란 음악으로 성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을 일컫는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악성으로 부르는데, 우리에게도 우륵과 같은 악성이 있어 자랑스럽다. 우륵박물관 악성 우륵 상(像).

가야금은 우리의 전통 사상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유불선에서 기인한 풍류사상, 유교의 예학사상 거기에 사람 중심의 인본사상까지….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양오행사상이다. 그 의미를 잘 정리해 놓았다.

1997년 광주 신창동에서 발굴되어 일반에게 소개된 현악기 유물이다. 구조가 가야금과 비슷해 음악계의 관심을 고조시켰다. 우리나라 출토 최고(最古)의 현악기 유물이 되는 셈이다. 현(絃)이 열 개로 확인되었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 우리 민족을 일컬어 가무(歌舞)를 즐긴다는 기록이 있다. 고분벽화 중에도 악기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 놀기를 즐긴 것 같다. 고구려 장천 1호분에 오현금(五絃琴)이 보인다.

출토된 유물 중 악기와 관련 있는 것들이 있어서 주목을 끈다. 중앙에 가야금을 치고 있는 모습이 앙증맞다. 우륵을 발견한 가야 가실왕(嘉實王)은 문화적 혜안을 지닌 군주였던 것 같다.

우륵박물관 바깥에 오동나무 건조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오동나무는 가야금 몸체를 제작하는 가장 중요한 재료이다. 소리의 전달 기능이 뛰어나고 쉬 휘지 않는 속성이 악기와 맞아 떨어진다.

가야금의 12줄(絃)은 명주실로 만든다. 필자가 방문한 날도 명주실 짜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렇게 공들여 만든 가야금이 국민 속으로 파고들기를 바란다. 가야금 사랑은 바로 나라 사랑이다.

금장지(琴匠址). 악성 우륵은 가실왕의 명을 받고 옛 가야국 정정골 금장지에서 건조한 오동나무와 12줄의 명주실을 꼬아서 12현 가야금을 만들었다. 그 터를 기념해서 석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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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륵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대가야박물관으로 정동락 관장을 만나러 갔다. 정 관장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그는 사계의 전문가로 문화재에 대한 애정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약속을 하고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몇 가지 간단한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관장실을 나왔다. 다음을 기약하며....

[우륵박물관 정동락 관장 인터뷰]

Q1.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기초자치단체에서 박물관을 운영하기란 쉽지 않을 텐데요, 지금 우리나라 상황은 대체로 어떤지요? 지자체 박물관 운영 정도가...

A. 현재 경상북도 23개 시군 중 거의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공립박물관을 설립해 운영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박물관의 규모나 시설, 인력은 지자체마다 차이가 큽니다. 한두 사람의 학예사가 있으면서 시설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하나의 과나 사업소 단위로 규모가 큰 경우도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고령 대가야박물관을 비롯해, 상주, 경산, 구미, 안동, 예천 등등의 박물관은 비교적 조직과 인력이 잘 갖춰져 있는 곳입니다.

Q2. 제가 우륵박물관을 다녀왔는데, 관리가 잘 되는 것 같더군요. 우륵박물관의 의미랄까 역할 등을 간단하게 말씀해 주시지요.

A. 우륵박물관은 대가야시대에 가실왕의 명으로 가야금을 창제하고 우륵 12곡을 작곡한 우륵과 가야금 전문 테마박물관입니다. 가야금에 대해서는 전국 유일의 박물관인 셈이지요. 가야금은 우리 전통국악기 중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국민 국악기이고, 제작 주체나 시기, 목적 등이 분명한 몇 안 되는 전통악기입니다. 우륵박물관은 가야금의 세계화를 지향하며, 가야금의 모든 것을 직접 배우고 느끼고 체험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Q3. 우륵박물관은 한 인물에 대한 박물관이기도 하고 음악이란 특정 분야에 대한 박물관이기도 합니다. 이른바 테마 박물관에 해당될 텐데 음악인에 대한 박물관은 흔치 않지요?

A. 현재 우륵과 가야금에 대한 국내 유일의 전문박물관이 우륵박물관입니다. 그 외에 판소리나 국악전반, 혹은 난계 박연 등의 음악인을 주제로 한 국립국악원이나 박물관은 드물게 있긴 합니다.

우륵박물관은 가야문화, 가야의 정체성을 담은 경상북도 또는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입니다. 앞으로, 고령뿐만 아니라 경상북도, 더 나아가 국가 차원에서 가야금에 대한 관심이 요청됩니다.

집집마다 가야금을 가지고 있으면서, 국민 누구나가 가야금으로 아리랑을 연주할 수 있는, 가야금의 대중화가 우륵박물관이 꿈꾸는 미래입니다.

Q4. 우륵에 대한 유물 유적은 이 박물관이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을 텐데, 수집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A. 우리 고대사, 특히 대가야와 관련한 대부분의 유산은 토기나 철기 등의 물질자료입니다. 그에 비해 우륵과 가야금은 음악이나 예술에 해당하기 때문에, 관련 자료나 유물이 희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륵과 가야금은 대가야의 문화예술 등 정신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소재입니다.

우륵박물관에서 우륵과 관련한 문헌기록, 또는 가야금을 비롯한 전통악기와 관련한 각종 자료를 수집 소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대의 악기 관련 유물은 매우 희소해 복제품을 전시할 수밖에 없는 점이 아쉽습니다.

Q5. 정 관장님은 우륵박물관과 대가야박물관을 대표(관장)하고 있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일상 삶을 위축시키고 있습니다. 이 위기가 단기간에 끝날 것 같지 않은데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박물관 운영의 묘책이 없을까요?

A. 현재, 박물관이나 공연장 등 대부분의 문화기반시설은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대가야박물관의 경우도 예년에 비해 관람객이 1/5정도로 급감한 상황입니다. 최근 조금씩 회복되는 기미가 있으나, 국민의 70% 이상 백신접종이 완료될 때까지는 좀 더 기다려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박물관에서는 현재 최대한 철저한 방역조치를 실시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코로나19가 종식되어 일상이 회복되는 시기를 대비해, 박물관 시설의 대대적인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박물관에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경우 온라인으로 전시내용을 체험할 수 있도록 스마트박물관 구축사업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Q6. 고령에 발을 딛는 순간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지역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코로나19가 있기 전에는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아요.

A. 고령지역은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 대가야시대의 무덤인 지산동고분군을 비롯해 주산성, 대가야궁성지 등 많은 유적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가야박물관은 지산동고분군 내에 위치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대가야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 때문에 연 평균 1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는 문화체험 공간으로 널리 각광을 받았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 군에서는 지산동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를 비롯해, 대가야생활촌, 대가야역사테마공원 등등 문화기반 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매년 대가야체험축제를 개최해 대가야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고령군은 대가야와 관련한 유적과 문화기반시설이 어우러진, 가야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과 방문을 부탁드립니다.

- 인터뷰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도 유익했구요. 고령의 문화에 대해 깊이 있는 대담 자리가 조만간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탐방 취재, 글 사진 / 발행인 이명재 

취재부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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