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현(전 국무총리 비서실장)

내가 처음 알게 된 최재형(崔在亨)은, 거룩한 이름이다. 연해주 독립운동사에서 그를 빼놓곤 얘기할 수 없다. 러시아에서 불린 그의 별명은 최뻬치카. 겨울철 병사들의 내무반을 훈훈하게 해주던 뻬치카, 최뻬치카는 바로 그런 훈훈한 인물이었다.

함경남도 경원 출신으로 노비의 자식이었다. 국망(國亡) 후 부모를 따라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 어린 시절을 유랑민의 2세로 보냈다. 러시아 선장의 도움으로 교육을 받고는 하급선원과 무기공장 직공으로 일했다.

1904년 러일전쟁이 터지자 러시아 군대에 납품업을 시작하여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연해주 굴지의 거부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부자들과는 달랐다. 번 돈으로 마을에는 학교와 공원을 세우고 매년 교포 유학생 1명씩을 페테르부르크에 유학을 보냈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범윤과 함께 연해주에 의병부대를 창설했는데 안중근 의사는 이 부대의 참모 중장이었다. 연해주의 민족신문 <대동공보>가 자금난을 겪자 이를 인수하여 한인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한 때 안중근 의사도 이 신문사에서 탐인(探人, 기자)으로 근무하였는데, 이 신문의 이강(李剛) 기자는 안 의사의 절친이었다.

거사 5일 전인 1909년 10월 21일, 안 의사가 블라디보스톡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던 날 이강은 정거장까지 나와 눈물로 배웅하였다. 1919년 3.1혁명 후 블라디보스톡에 대한국민회의라는 임시정부가 처음 설립되었다. 재정은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이후 상해에 임시정부가 세워지자 여기에도 거금의 독립자금을 보냈다. 이같은 공로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서 초대 재무총장에 선임되었으나 그는 사양하였다. 연해주에서 계속해서 활동하고자 함이었다.

1920년,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 때는 체코제(製) 기관총 등을 구매해 지원하였다. 결과는 청사에 길이 빛날 대승을 거두었다. 두 전투에서 참패한 일본군은 복수의 이를 갈았다.

소위 ‘연해주 4월 참변’을 일으켜 무수한 조선 동포들을 학살하였다. 피신할 수 있었음에도 그는 포기하였다. 남은 가족들이 겪을 고초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두 동지와 함께 일본군에 처형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이 추서되었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던 그였으나 그의 숭고한 삶이 널리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다. 만고의 영웅 안중근에 묻히고, 또 홍범도 장군에 밀린 때문이었다.

2019년 3월 3.1혁명 100주년을 맞아 그가 살던 옛집을 개조해 독립운동 기념관(전시관)으로 조성, 개관했다. 금년 4월 그의 순국 100주년 추모 공연이 열렸다.

근년에 나는 또 다른 최재형을 접했다. 판사 출신으로 감사원장 자리에 있었다. 판사 시절에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소신 판결을 했던 인물로 호평받았다고 들었다. 사법연수원장으로 있던 그는, 2018년 1월 문재인 정부의 감사원장에 임명됐다. 청문회에 부담을 느낀 후보자들의 고사로 1년 만에 임명됐다. 그는 청문회를 아무 탈 없이 통과했다.

그는 공직사회가 법과 원칙을 지키도록 파수꾼 역할을 했다. 법령에 어긋나는 감사원 1급들의 관용차 사용과 대통령 측근들의 부당한 자문료 지급을 중단시켰다. 감사원장 본연의 일을 훌륭히 수행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그가 감사위원 제청을 두고 청와대와 각을 세웠다. 이 때문에 감사위원 한 자리가 9개월째 공석으로 있었다. 이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걸고 넘어졌다. 결국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감사는 법정으로 이어졌다.

그는 “대선에서 41%의 지지밖에 받지 못한 정부” 운운하였다. 기독교계 등 보수진영은 환호했고, 여권은 배신감을 토로했다. 여기에 그의 두 아들 입양 등 미담이 소개되면서 야권은 그를 대선주자감으로 띄우기 시작했다. 최근 대선 국면이 시작되면서 그도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그러자 그런 상태에서 계속 감사원장을 수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몇 군데서 제기됐고 6월 28일 그는 사의를 표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로 그의 사표를 수리했다.

그는 물러나면서 “임기를 끝까지 마치지 못해 송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숙고하겠다”고 덧붙였다. 대선 출마를 시사한 것이라고 볼만하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예전처럼 좋게 보지 않는다. 그간의 처신은 오직 입신을 위해, 정치적 야욕을 위해 감사원장 자리를 이용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온다. 현 정권과 각을 세워 이름을 얻고 입지를 다진 또 한 사람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29일 대선 출마선언을 했다.

그도 그 길을 따라갈지 어떨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 같은 이름의 두 최재형이 역사의 무대에 올랐다. 최재형, 부디 그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기 바란다.

정운현  gcilbonews@daum.net

정운현  gcilbonews@daum.net

<저작권자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