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Ph. D)

윤석열이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할 모양이다. 6월 29일 오후 1시를 D-데이로 잡았다고 한다. 법적 요건을 갖춘다면 출마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권력기관의 장이 사퇴하고 바로 대선 출마 깃발을 드는 것에 대해 부정적 시각들이 많다.

윤석열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주창하면서 정권과 각을 세우다가 검찰총장직을 사퇴한 사람이다. 그의 출마 선언으로 주창해온 검찰 독립과 정치적 중립이 무색하게 되었다. 검찰총장으로 휘두른 권력이 정치적 행위였음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대선 출마 선언은 결과적으로 그것을 말해 준다. 다른 것은 접어 두더라도 이것 하나는 짚을 필요가 있다. 그가 대선 출마 기자회견 장소로 윤봉길 의사 기념관으로 택한 이유는 뭔가. 윤이 걸어온 길은 매헌 윤봉길 의사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윤은 대통령을 꿈꾸고 있지만 윤봉길 의사는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던진 분이다. 나라와 압박받는 국민을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은 분이다. 특수부 검사로 이름을 날린 윤석열은 어디 하나 매헌의 삶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는가.

대통령 꿈을 꾸고 있는 윤석열이 매헌에 의탁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런 행동은 홍커우공원 투탄 의거의 주인공 윤봉길 의사의 뜻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윤석열이 매헌을 모르고 한 결정 같다. 걸어온 길이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은가.

굳이 공통분모를 찾아보았다. 본관이 파평 윤씨로 같다는 것, 충청남도 출신이라는 것(매헌 선생은 예산, 윤석열은 부친이 공주 출신이고 정작 자신은 서울 출생이다) 정도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영달을 위해서 지연과 혈연 학연까지 관계 지으려 애를 쓴다.

정치 철학과 정책으로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각종 연(緣)으로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는 것은 구태정치의 한 모습이다. 사라져야 한다. 윤석열이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정식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옳지 않다. 정치 신인이 구태 정치를 답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세훈 서울시장, 윤석열 전 검찰총장, 윤주경 의원 등이 지난 6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 개장식 뒤 우당 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사진=연합뉴스).

더 우스운 것은 윤주경 의원이 보인 처신이다. 윤은 매헌의 손녀로 지금 국민의힘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다. 그가 윤석열의 대선 출마 기자회견장에 참석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가벼운 처신인 것만은 분명하다.

윤 의원은 윤석열 측으로부터 출마선언식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흔쾌히 응했다고 한다. 거기에 덧붙인 말이 가관이다.

"윤 전 총장이 평소 저희 할아버지를 존경하신다는 말을 들었고, 의미 있는 선언을 하는데 할아버지 기념관을 선택해 주신 게 고맙다"(윤주경의 말, 뉴스1, 6월 25일 기사)

윤주경이 할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기를 바라지만 그것을 강요할 순 없다. 윤은 박근혜 정권 때 독립기념관장을 지냈고 지금 그 후신 격인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이다. 그를 독립투사 윤봉길 의사와는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매헌 윤봉길 의사를 다시 생각한다. 매헌 선생은 독립운동에 헌신케 할 목적으로 민중(농민) 교육에 힘썼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금언에 근거해 교재를 만들고 야학에서 가르쳤다. 급박한 시대 상황은 그것 이상을 요구했다. 매헌이 무장투쟁으로 방향을 전환한 이유이다.

윤주경에게 바른 시각을 기대할 수는 없는일. 도대체 매헌기념관이 무슨 구멍가게라도 된다는 말인가. 대선 출마 선언 장소로 할아버지의 기념관을 선택해 주신 게 고맙다니! 후손이면 조상의 명예를 빛나게 하는 것이 도리이다. 허나 먹칠을 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윤주경의 경우는 할아버지의 후광으로 기대 이상의 영화를 누리고 있다. 내가 볼 땐 그렇다. 이쯤 되면 자중하고 있는 게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고 사회를 위해서도 좋다. 무엇보다도 할아버지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녀에겐 지금 자숙이 금이다.

검찰개혁에 저항하다가 사퇴한 윤석열이다. 자신이 속했던 정권에 비수를 꽂으려고 갖은 수를 다 쓰다가 검찰총장의 직에서 물러났다. 적지 않은 대미지만 주고…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보수 야당과 조중동 등 메이저 언론의 후원 덕이 컸다.

살아있는 권력도 성역 없이 수사하라는 대통령의 말을 잘못 받아들여 정권만 수사하다가 시간을 다 보냈다. 그리고 지금 일전불사를 외치며 그 정권을 물리치겠다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그것을 공식화하는 자리가 내일 모레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발행인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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