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윤석열, '걸어갈 길' 설득력 있고 소상하게 밝혀야

(서울=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월 24일(목) 대변인을 통해 "국민 여러분께 제가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해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발표 일시와 장소는 오는 29일 오후 1시,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라고 각각 전했다고 한다. 언론들은 윤 전 총장이 그날, 내년 3월로 예정된 대통령선거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내놓을 것이라 해석했다.

여태껏 그가 보여온 장외 전언정치 행보와 이날 현재 야권에서 가장 유력한 잠재 후보로 거명되는 현실을 떠올릴 때, 별 무리 없는 관측으로 받아들여진다. 법으로 임기 2년이 보장된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직에서 그가 중도 사퇴한 것이 지난 3월 4일이다. 예상대로 그가 정치 참여를 공식화하며 대선 도전 의사까지 밝힌다면 그것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만의 일이 된다.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이 요구되는 검찰총장이 임기 도중 직을 내려놓은 지 불과 4개월도 되지 않아 이러는 것은 헌정사상 전례 없는 경우다. 그것도 집권당에 맞서는 도전적 지위에서 정권 교체를 바라는 이들의 호명과 높은 지지를 동력 삼아 정치를 하겠다고 하는 것은 더더욱 생경한 케이스라 하겠다.

그를 오늘의 그로 만든 가장 큰 요인은 역설적이게도,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도 눈치 보지 말고 하라 했던 인사권자 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란 평가가 나온다. 윤 전 총장이 지지율을 쌓아 올리기 시작한 것은 이른바 조국 사태와 검찰 개혁의 갈등 과정을 통해서였기 때문이다.

윤 전 총장의 지난 3개월여 행보는 전언정치, 대변인정치, 간보기정치로 거칠게 불리기도 했다. 정작 자신의 육성으로는 정치 참여를 선언하지 않았으면서도 지인들이 근황을 전하고 관련 책을 내는가 하면 개인 대변인까지 두고 현안에 대한 생각과 말을 대신 옮겼다. 정치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안 하는 것 같기도 한 '같기도 정치'를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29일 밝힐 내용 중 하나가 정치 참여의 '공식화'라 하는 것은 틀리지 않은 명명인 듯하다. 말만 하지 않았을 뿐 윤 전 총장은 이미 정치를 해 온 것으로 간주되어서다. 그러나 장외정치가 길어지자 피로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로서는 피로감의 누적을 우려해야 할 상황이다. 지지 하락에 대한 경고음도 잇따르고 있다. 공식화 선택을 강제한 주요 배경은 그런 것이라 보는 게 상식적일 것이다.

최근에는 그와 배우자, 장모 관련 의혹을 망라한 속칭 '윤석열 X파일' 논란까지 번지고 있다. 물론 그 파급력이야 크게 다를 테지만, 직전에 있었던 대변인 사퇴처럼 그에게 악재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이날 공개된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차기 대통령감으로 누가 가장 적합한가'라는 물음에 그를 택한 응답비는 20%에 그쳐 전주보다 4%포인트 떨어졌다고 한다.

거름종이로 걸러진 것 같은 정돈된 메시지와 이미지의 전언정치로 차곡차곡 득점만 하던 시기는 지난 것 같다. 국민 앞에 당당히 나와서 제 언어와 철학을 바탕으로 소통하고 비전을 밝힐 때가 된 것이다.

퇴임 후 윤 전 총장의 첫 공개 행보는 지난 9일 우당 이회영 기념관 개관식 참석이었다. 당시 개관식에서 그는 기자들에게 "국민 여러분의 기대 내지는 염려, 이런 걸 제가 다 경청하고 다 알고 있다"며 "좀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그러고는 국민의힘 입당 여부를 묻자 "제가 걸어가는 길을 보시면 차차 아시게 되지 않겠나 싶다"고 답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 입당 여부와 입당 시 그 시점 선택, 혹시 다른 선택과 연동되어 있을지 모를 야권 후보 단일화는 늘 지속할 질문이다. 그가 야권 정체성을 안고 가려면 책임 있는 답변을 준비해 둬야 할 것이다. 대변인을 통해 "출처 불명 괴문서로 정치공작 하지 말라"고 입장을 낸 X파일에 대해서도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정치공작을 주장하기 전에 철저하게 검증받을 각오를 다지고, 그런 다짐을 국민들에게 약속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미 수사 중이거나 선고를 앞둔 여러 의혹 사건에 대해서도 검찰과 법원이 행여 자신의 눈치를 봐선 안 되고, 공평무사하게 다뤄야 한다고 먼저 주문하는 것이 필요하다. 윤 전 총장은 총장 재직 때부터 지금까지 높은 여론지지율을 자신의 큰 자산이자 보호막 삼아 움직였다는 지적을 받는다. 본인이 총장 때 가졌던 조국 일가 수사 잣대를 자신에게도 들이대야 그가 말하는 공정과 법치는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전언을 수정했지만 사기 사건 의혹에 얽힌 장모를 방어하며 "남한테 10원 한 장 피해 준 적 없다"고 한 발언의 파장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포장지만 살짝 보여주는 신비주의는 이제 폐기될 운명인가 보다. 그가 내용물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왜 정치를 하려는지, 그게 옳은 일이지, 준비는 됐는지, 검증은 견딜 수 있는지, 뭘 들고서 대선에 도전하려는 것인지 하나하나 풀어내야 한다.

* 이 [연합시론]은 김천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김천일보 편집부).

yna 편집부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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