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현(전 국무총리 비서실장)

‘경선 연기’ 논란 와중에 이재명계의 민형배 의원이 ‘통큰 정치’를 거론했다. ‘180일 전 경선’ 고수를 주장하는 민 의원은 최근 경선 연기를 주장하는 이낙연, 정세균 후보를 겨냥해 “당 대표와 총리까지 지내셨다. 통 큰 정치, 원칙 있는 정치를 기대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말이요, 또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러나 ‘통큰 정치’의 본질은 이런 것이 아니다. 

‘통이 크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가진 자만이 취할 수 있는 처신이다. 즉 가진 자의 여유요, 위세와도 같은 것이다. 못 가진 자는 통 크게 놀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지금은 선거 정국이니 ‘가진 자’라면 당연히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이낙연, 정세균 두 사람이 당 대표와 총리를 지낸 것은 맞지만 지금은 그걸로 우열을 논할 상황이 아니다. 

‘통이 크다’는 것은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대의(大義)를 따르는 것을 말한다. 안중근 의사가 의거 후 사형선고를 받고 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을 때 그의 모친 조마리아 여사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대의를 따라 죽으라”고 했다. 아들의 목숨이 무엇보다 소중했지만 그보다는 한 목숨을 바쳐서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는 일이 대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지금 민주당의 절체절명의 대의는 대선 승리다. 원내 과반이 넘는 170여 석을 가지고 있지만 대선 상황은 절대 녹록치 않다. 부동산 문제로 민심을 잃어 지난 4.7 재보선에서의 참패 후유증이 적지 않은 데다 최근에 물아 닥친 ‘이준석 돌풍’이 정치권을 집어삼킬 태세다. 여기에다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는 코로나로 30도를 웃도는 여름철에도 여태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대선 후보 경선 일자를 두고 갈등을 겪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뿐만이 아니다. 기존 당헌대로 7~9월에 경선을 치르게 될 경우, 여름 휴가철과 올림픽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다. 이는 모두 예견된 일정이어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다. 민심이 떠난 데다 시기적으로도 좋지 않은 여건이라면 경선 흥행은 그 결과가 보나마나다. 이런 판국에 국민의힘은 11월로 예정된 경선을 내년 1월로 연기하자는 논의까지 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민주당의 지상과제는 대선 승리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그 대의를 따르는 것이 가장 우선시돼야 한다. 1차적으로는 경선 흥행을 위해 좋은 시기를 잡아야 한다. 그러자면 휴가철, 올림픽 경기 기간을 피해 마스크를 벗고 제대로 한판 놀이마당을 펼칠 수 있는 때를 잔칫날로 잡아야 하는 것은 상식 아닌가? 여기에 이재명, 이낙연, 정세균의 입장이 따로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런 대의명분을 두고 이재명계에서는 ‘탐욕’ ‘전면전’ ‘통 큰 정치’ 운운하며 초점을 흐리거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 진정으로 당을 생각하고 ‘통 큰 정치’를 외치려면 당내 지지율 1위인 이재명 지사가 앞서서 ‘경선 연기’의 깃발을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진정한 ‘통 큰 정치’ 아닌가? 이는 이재명 지사가 지난 대선 때 1위 문재인 후보를 향해 주장했던 바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지사 측은 이런 대의를 따를 생각도, 당을 위해 자기희생을 할 뜻도 없는 것 같다. 오직 현재의 지지율 1위를 앞세워 경선 일정 고수를 외치고 있다. 요즘 여의도 주변에는 경선 연기가 관철되면 이재명 지사가 경선에 불참할 것이라는 소문이 돈다. 부디 뜬소문이길 바란다. 소리(小利)를 탐하다가 대의와 실리를 모두 잃는 대실(大失)의 누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충고다.

편집부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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