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 부장판사의 불법 녹취

세상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각자도생의 시대라고 해야 할까. 내가 살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국가의 녹을 먹고 있는 자들조차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어서 심히 개탄스럽다.

이순신 장군은 왜군과 전투하면서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를 다졌었다.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고 싸우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러나 오늘날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즉생의 자세로 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오늘(2월 4일) 한 법관이 국회에서 탄핵되었다. 법원 역사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아마 헌정사상 처음이지 싶다. 그 법관의 탄핵이 정당했는지, 사법부가 바로 서는 데 그 일이 도움이 될지 그런 건 잘 모르겠다.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 법관이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을 면담하는 과정에서 내용을 몰래 녹음했다는 사실이다. 고의성이 짙은 이런 법관의 행동은 불신사회를 조장하는 짓에 다름 아니다.

김명수-임성근(연합뉴스 사진)

법을 공정하게 다루면서 재판에 임해야 할 법관이 대법원장과의 면담 내용을 몰래 녹음을 했고, 그것을 자신의 보신(保身) 용으로 활용을 했다? 법관으로서 탄핵문제는 둘째 치고라도 '몰래 녹음' 하나만 봐도 법관으로서의 자질이 의심된다.

사전 동의 없는 불법 녹취는 법적 효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야비한 짓이기 때문이다. 시정잡배들 사이에서나 있을 법한 일을 한 부장판사가 거리낌 없이 행했다. 지은 죄는 사실이 아니라는 게 입증되면 얼마든지 벗을 수 있다.

그러나 불법 녹취는 사법부뿐 아니라 사회의 불신 풍조를 증폭시킬 게 뻔하다. 하급자가 위기에 몰려 면담을 할 때 상급자는 범죄 유무를 떠나 격려와 위로를 할 수 있다. 립서비스도 대화에 섞이게 마련이다. 이런 녹취는 사실 파악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결과론적 얘기지만 대법원장의 처신도 잘했다고 할 수 없다.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고지식하다고 해야할지... 사법부의 수장 치고 어리숙한 점이 눈에 띈다. 개인 신변에 대한 면담에선 자기 합리화의 촉수가 극히 예민해져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한다.

판사가 몰래 녹취를 하고 그것을 자신을 위한 도구로 활용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이미 불신사회에 진입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면담을 위해 대법원장실을 방문할 때 휴대폰을 맡기게 한다든지 그것도 아니면 전원을 끄게 하는 절차적 장치를 마련했어야 했다.

대법원장은 국가 서열 3위의 자리이다. 지명 때부터 좀 불안했다. 사법부 수장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였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여 개인의 양심에 따라 판결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최근의 판결들을 볼 때 의구심이 든다.

사법부조차 정치 논리에 휩싸여 상식 밖의 판결을 쏟아낼 때 국민은 허탈감을 넘어 상실감까지 느끼게 된다. 한 법관의 '불법 녹취' 사건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파장은 큰 것 같다. 한 법관의 이기심이 사법부 전체를 망가뜨렸다.

싸움에 능한 정치꾼들에게서 볼 수 있는 엉큼한 기교(불법 녹취)를 법관이 실연한 것은 충격적 사건이다. 검찰 개혁과 더불어 사법부의 개혁이 절실함을 말해주고 있다. 정당함이 통하는 상식의 사회, 점점 요원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편집부 gcilbonews@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