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주 지음 『신석구 연구』(기독교대한감리회 홍보출판국, 2002년 10월 출판)

책을 한 권 읽고 만족감을 느끼는 것은 자주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서나 교양 도서가 아닌 역사서에서 그런 경험을 하기는 더 어려운 일이다. 이덕주 교수의 『신석구 연구』(기독교대한감리회 홍보출판국 간행, 2002년)를 기쁘게 읽었다.

『신석구 연구』는 개인의 전기(傳記)인데, 전기에 머물지 않고 책 제목 ‘연구’에서 읽을 수 있듯이 신석구를 분명한 역사적 관점 하에 집필한 학술서이다. 많은 전기에서 볼 수 있는 미화 일변도이거나 칭찬 위주의 서술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집필된 것이 이 책에 역사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

이 책은 교회사가(敎會史家)가가 쓴 인물론이다. 즉 한 인물 신석구를 역사 위에 바로 세우기 위해 쓴 책이다. 우리는 흔히 선입관을 갖기 쉽다. 교회사가가 쓴 책은 결론이 “하나님”이고 자료의 미비로 서술이 힘들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지하려 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또 대충 엉성한 결론을 도출해 놓고 “하나님의 은혜”라는 식으로 끝맺는다. 해방 전 일제시대까지 이런 논리가 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국민의 지적 수준이 높아지고 욕구가 상승된 지금, 그런 식의 서술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 관련 서적을 식상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런 식상함을 교회사가 민경배 교수로부터 서서히 덜기 시작했다. 그의 분명한 사관, 그리고 풍부한 자료 제시와 군더더기 없는 문장에서 교회사가로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일반사가와 견주어 뒤지지 않는 역사 서술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덕주 교수로부터 또 그것을 경험한다. 그의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오래 되지 않았다. 그는 많은 책을 저술한 교회사가이다. 하지만 저술한 책이 모두 아카데믹한 역사서임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어디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책들, 책을 자식에 비유한다면 모두 훌륭한 자식을 출산했다고나 할까.

비결이 있을 것이다. 먼저 분명한 그의 사관이다. 토착교회사의 관점으로 역사를 보고 있는 그의 눈은 따사롭다. 서민 중심의 생활 전통에 선남선녀들의 보잘것없는 것 같은 일도 얽어 역사로 만드는 그의 손은 대단히 뛰어나다. 따지고 보면 민중사의 한 부분인 것도 같은데 차이가 있다.

그의 책의 특징은 우리 고유의 민중 이야기를 우리의 전통과 연결시켜 서술하고 있다. 『한국 토착교회 형성사 연구』, 『한국교회 처음 이야기』, 『한국교회 처음 여성들』 등의 저술이 모두 이 땅 민중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들로 전통과 접맥시켜 채워놓고 있다.

또 그는 글을 매우 쉽게 쓴다. 글을 쉽게 쓰면서도 격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수필이 읽기는 쉽고 편하지만 그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기가 어렵다. 쉬운 글을 터부시하는 한국학계 분위기에서 그가 쉬우면서도 학적 가치를 잃지 않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생각해 본다. 먼저 충분한 자료의 준비이다. 자료 없이 글을 쓰지 않는다는 그의 입장은 학문하는 사람들의 기본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현실이다. 이에는 기독교사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 교수는 글 쓸 자료가 없을 경우 꿈 속에서 그 자료를 만난 경험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또 자료가 있는 현실의 장소를 꿈 속에서 안내받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한다. 꿈에서 본 도서관 그 서가에 가니 필요한 자료가 꽂혀 있었다는…. 학문적 열정과 간절함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두 번째로는 그의 어학 실력이다. 국어에 대한 정확한 어휘 구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한문과 영어 심지어는 독일어에 이르기까지 능수능란한 어학 활용은 글들을 매우 풍요롭게 만든다.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어학 실력을 바탕으로 정확한 문헌에 입각해서 대중을 상대로 글을 쓰기 때문에 쉬우면서도 수준 높은 글이 생산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그의 사람을 보는 따뜻한 마음에서 글의 참가치를 발견한다. 학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성(理性) 쪽으로 두뇌가 발달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사물과 사람을 보는 눈이 냉철하다. 하지만 이 교수는 그렇지 않다. 차가운 것 같으면서도 그 속에서 솔솔 피어나는 따뜻함이 독자들에게 전달되어 덩달아 따뜻하게 만든다.

그렇게 볼 때 이덕주 교수는 대단한 사랑의 실천자이다. 이성을 중시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 교수는 그렇지 않다.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빛을 받아 그것을 주위에 충실하게 반사하는 글을 쓰고 있다고 해야 할까.

『신석구 연구』는 한 개인을 연구한 전기(傳記)에 속하는 책이라고 했다. 신석구의 장점만을 서술하지 않고 단점까지 균형 있게 서술함으로써 책의 객관성을 잘 유지해 주고 있다. 그는 사진 자료에서부터 자서전, 신문 기사, 재판 기록, 연회 회의록 등 모든 자료를 망라한 후 신석구를 역사의 수레바퀴에 동승시킨다.

신석구에 대해 더 이상의 연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완벽을 기했다. 이 책은 1부 신석구 목사의 삶, 2부 신석구 목사의 신앙과 신학 사상 그리고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2부 신석구 목사의 신앙과 신학 사상과 부록이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함으로써 학술 서적으로서의 위치를 단단히 확보하고 있다.

1부를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물질적 어려움에 구애받지 않고 초지일관 신석구가 신앙과 인생관을 견지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가? 젊었을 적 인생관을 아무 변명 없이 쉽게 바꾸고 사회에 동화되는 오늘날 지도급 인사들의 행태를 볼 때, 신석구의 삶이 더욱 가치 있게 다가오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스스로 한 번씩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스스로는 어떤가? 자신이 있는가? 신앙과 인생관에 변절 없이 성숙해져 갈 수 있을 자신이 있는가? 신석구의 삶은 많은 교훈과 동시에 과제를 우리 모두에게 던져 주고 있다.

3.1운동으로 잡혀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었을 때도 그는 처음의 입장을 견지해서 비교적 장기간 감옥 생활을 한 뒤에야 나올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그는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민족 대표로 도장을 찍는 마지막 순간까지 ‘민족 대표’ 칭호를 감당하기를 부담스러워 한 그의 모습에서 겸비를 확인할 수 있다(123쪽).

나는 『신석구 연구』를 읽으면서 색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신석구가 손수 지은 한시(漢詩)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7언율시(七言律詩) 또는 5언고시(五言古詩)의 형식으로 지은 그의 시들은 주로 유치장과 감옥에 있을 때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옥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그의 정서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그의 한시에 대한 소양은 시인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그런 시 중 특별히 다음의 시가 마음 속에 깊이 남는다. 용산경찰서 유치장에 구류되어 있을 때 지은 시인데, 어려운 가운데서도 목회자로서 느끼는 하나님의 은혜를 절실하게 토로하고 있다(200-201쪽).

訟主恩(주의 은혜를 찬송함)’

福音一播萬邦新 복음 한 번 퍼지니 만방이 새롭도다

遠近親疎摠是隣 가깝고 멀던 사람 모두가 이웃일세

天父洪恩無限界 하나님의 넓은 은혜 무한하시니

何故分別愛憎人 미운 사람 싫은 사람 구별할 수 없구나

막내아들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돌보는 이 없는 버려진 막내아들의 무덤을 뒤에 발견하고 탄식하는 그에게서 목회로 돌보지 못한 아들에 대한 회한이 잘 드러나 있다. 같은 목회자로서 동병상련(同病相憐)으로 마음의 쓰라림이 몰려왔다(219-220쪽).

그는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건설될 ‘새로운 세상’의 기초로 기독교 신앙을 생각한다. 그리고 섬김(봉사)과 죽음(희생)을 새 세상의 핵심 덕목으로 설정하고 있다(222쪽). 신앙인은 시련 속에서 성장한다는 말을 신석구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신석구 연구』는 신석구 목사를 서술하되 감리교의 중요한 사건도 빼놓지 않고 짚고 있다. 감리교의 역사를 한 눈에 조망해 볼 수 있는 유익도 덩달아 얻게 된다. 사실 신석구는 감리교 목사로 교단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단 조직에 순종하는 그의 뜻이 잘못 이해되어 지방 오지(奧地)에만 순회하며 주변부에만 머물렀다. 자기 역할을 다 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사양지심(辭讓之心)의 발로이다. 신석구 목사는 자기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이 투철한 사람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책은 내용이 중요하지만 형식도 무시할 수 없다. 이 책을 꼼꼼히 읽어가면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단어 문장 문단의 사용에 찬탄을 금할 수 없었다. 아마 저자의 성격이 그대로 반영된 것일 터. 굳이 하나라도 교정할 부분을 찾아내라면 235쪽의 한자 말 ‘復興派’를 ‘복흥파’라고 표기한 부분인데 이것은 ‘부흥파’가 맞는 말일 것이다.

『신석구 연구』를 읽으면서 몇 가지 깨달음이 있었다. 이 책을 통해서 일제시대 등 우리의 현대사에 대한 애정을 가져야 하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 책은 비슷한 시기의 다른 역사서를 읽고 싶도록 만든다. 책이라는 것이 새로운 정보를 직접 제공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그 방면에 관심을 갖게 하는 역할도 중요하다.

그뿐 아니라 이 책과 관련되는 다른 자료를 읽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기능도 중요하다. 『신석구 연구』는 그런 점에서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켜 준다. 개인적 깨달음도 없지 않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쉽게 신앙과 사상을 바꾸어서는 절대 안 되겠다는 것. 정의와 진리를 초개같이 던져 버리고 개인의 영달을 좇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

책을 읽고 얻은 유익에 비해 느낀 바를 너무 약소하게 진술했다. 하지만 『신석구 연구』를 읽고 느낀 소회(所懷)는 오랫동안 나의 마음에 남아 있을 것이다. 책의 저자 이덕주 교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그의 건승을 빈다.더 깊이 책을 읽고 연구해서 한국 교회사를 기름지게 하는 데 미력이나마 이바지할 것을 약속한다(*)

이명재  lmj2284@hanmail.net

이명재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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