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화롯불

                   詩 / 박홍진

집에서 오리쯤
임씨 아저씨 바깥채에 
자리잡은 사랑방

겨울철 농한기에
동네 어른들 모여 들다.
저녁밥 숟가락 놓기 무섭게

깜박이는 등잔불 배경
사랑방 한 가운데
떡하니 좌정해 있는 화롯불

강씨 아들 노총각 장가간다네
술도가 아들 고등학교 합격했다네
박씨 며느리 영 못 쓰겠다는 흉...

화롯불이 온기 없는 재가 되도록
말 없이 이야기를 줏어 담는다.
시간은 벌써 삼경(三更)...

중천에 떠 있는 초승달 보며
어르신들, 검정 고무신 끌고
한두 사람씩 나서는 삽작문의 겨을 삽화

* 농촌 고향 마을은 엄마의 품과도 같다. 그곳에서의 어렸을 적 삶은 엄마의 젖과 같다. 시의 주 소재는 화롯불이다. 농촌 마을 사랑방에 모이는 남정네들을 아저씨로 부르는 것으로 볼 때 시적 화자는 소년이다. 화롯불은 사랑방 정 중앙(가장 좋은 위치)을 차지하며 방 안을 모든 것을 묵묵히 담는다. 담배 재떨이가 되기도 하고, 쓰레기를 받아 태워 없애기도 하고 밤을 구워주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것뿐 아니다. 마을의 희로애락에 얽힌 얘기를 담는 그릇이기도 하다. 자정이 가까이 될 무렵 한두 사람씩 "내일 또 보세"란 인사를 남기고 문을 나선다. 화롯불과 어울리는 검정 고무신을 끌고... 한 편의 흑백 정물화를 보는 듯하다(耳穆).

박홍진  gcilbonews@daum.net

박홍진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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