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시평] 신연수, 동아일보에 사표 던지다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Ph. D)

그 신문사 분위기를 대충 알겠다. 짐작했던 바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검찰의 검사동일체처럼 다른 소리를 용납하려 하지 않는다. 검찰의 뿌리 깊은 상명하복의 정신, 이게 우리 사회에 끼친 폐해가 적지 않다.

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그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는 검사동일체원칙, 윤석열이 정권에 대항해서 선전(?)을 하는 것도 그것에 기초해 움직이는 검사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당사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크리스마스 전날, 그러니까 12월 24일 동아일보 신연수 논설위원이 칼럼을 하나 썼다. 부장급 이상이 주로 쓰는 '오늘과 내일'이라는 코너에서다. 한 친구는 닭 무리 속의 한 마리 학이라며 호감을 드러냈다.

칼럼 제목이 '검찰은 왜 반성하지 않나'였다. 제목만 봐도 극우화의 길을 걷고 있는 '조중동' 중 하나인 동아일보와는 결이 사뭇 달랐다. 계륵과도 같은 오늘날의 검찰 반성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1991년 권위주의 정권 유지를 위해 조작한 강기훈의 유서 대필 사건,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몰아 매장시키려고 했던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의 간첩 조작 사건 등. 이 조작 사건의 당사자는 검찰이었다.

또 김학의 전 법무차관 성접대, 얼마 전 있었던 검사들이 범죄 혐의자로부터 술접대를 받은 사건들을 예로 들면서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는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며 검찰은 더 이상 자정 능력이 없다고 질타했다.

나는 동아일보를 제대로 된 신문으로 보지 않는다. 일제강점기는 말할 것도 없고 이승만 및 박정희 군사 정권 때의 행각은 오랜 기간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신연수의 이 칼럼은 그 신문을 한 번 더 살펴보게 했다.

동아일보에도 사람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네, 신문에 게재된 것을 보면 내부 검토를 거쳤겠지? 혹시 인사 상 불이익을 당할지도 몰라, 개인의 삶에도 가끔 파격이 필요하듯 신문사도 비슷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었다.

나에게 신연수의 칼럼은 때에 찌든 동아일보를 세척시켜 준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이라는 게 대상은 국민 전체 그리고 가치는 진선미(眞善美)의 추구에 맞출 때 의미가 있다. 자세로 정론직필이란 단어를 많이 쓴다.

하지만 메이저 신문이라고 일컫는 '조중동'은 부끄러울 정도였다. 이런 언론의 가치를 진영논리에 종속시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국민을 진보와 보수로 나누는 데에 홍위병 노릇을 했다고 하면 과언일까.

신연수는 칼럼 '검찰은 왜 반성하지 않나'로 인해 동아일보에 사표를 제출했다고 한다. 칼럼을 읽으면서 언뜻 한 염려가 현실이 되었다. 직장에서의 몰상식 중 하나가 인사로 직원을 그만 두게 하는 일이다.

동아일보도 예외가 아니었다. 극우라는 가치가 최고인 양 한 우물을 파는 동아일보에 신연수의 칼럼이 왜 청량제의 역할을 한다고 판단하지는 못했을까. 꼭 독으로만 생각해야 했을까. 오, 사고의 한계여!

금년은 동아일보 창간 1백 년이 되는 해이다. 결코 짧은 역사가 아니다. 그러나 신연수 논설위원의 칼럼 하나를 갖고 일 처리하는 것을 보니 동아일보의 허약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다.

글 쓰는 논설위원을 기업 광고를 전담하는 부서로 발령을 냈다. 신연수 같은 자존심 강한 사람이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람은 가치 지향적 동물이다. 참된 지식인은 명분 없는 행위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수의 기자가 사주 앞에 일열 종대로 줄 설 때, 신연수의 일탈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사주와 맞지 않을 때 훌훌 털고 사표를 던지는 신연수가 멋지게 보인다. 사주를 회사에서 나가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혹자는 남아서 싸우지 왜 사표를 쓰느냐고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윤석열처럼 사사건건 소송을 걸어 법치주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줬으면 좋았겠다고 덧붙인다. 대인의 모습이 아니다. 신연수가 더 잘 안다.

동아일보는 자기 길을 갈 것이다. 몇몇 논설위원들을 비롯해 기자들도 우물 안 개구리 식 독설을 계속 뿜어댈 것이다. 고장 난 브레이크를 단 기관차처럼 폭주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표를 내고 해방감을 느낀다는 신연수의 마음을 이해한다. 한 우물 파기 30여년, 그곳에서 벗어났으니 앞으로의 삶도 걱정될 것이다. 보이진 않지만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신연수 논설위원의 건투를 빈다.

발행인 lmj228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