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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일 교수의 생활산책(63) - ‘응접불가(應接不暇)‘의 계절문정일(목원대 명예교수, 수필가)
문정일 | 승인 2020.11.26 09:09
문정일(목원대 명예교수, 수필가)

한자 사자성어에 "응접불가(應接不暇)"란 말이 있다. 간단히 직역하면 “접(接)함에 응(應)할 겨를[暇]이 없다[不]"는 뜻이다. 다시 풀어 말하면 "차례차례로 나타나는 산수(山水)의 풍광이 하도 수려(秀麗)해서 일일이 모두 구경할 겨를[틈]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제대로 응접할[만나볼] 시간이 없다”는 말이 된다.

중국 진(晉)나라 사람으로 왕헌지(王獻之: 344-388)란 인물이 있다. 이는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예가 왕희지(王羲之: 307-365)의 아들로서 아버지에 버금가는 서예가요, 고관이었으며 아버지 왕희지와 함께 ‘이왕(二王=두 사람의 王氏)’이란 별칭으로 일컬어지던 사람이다. 왕헌지는 한때, 산음지방(山陰地方: 중국 회계산의 북쪽지방)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그 경치의 수려함에 관한 이야기 가운데 ‘응접불가’(應接不暇)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었다. 그의 말을 여기에 옮겨본다.

“산음(山陰)의 길은 실로 장관(壯觀)이다. 길을 걸으면 높이 솟은 산과 깊은 계곡이 연달아 나타난다. 그것들이 서로 그림자를 비치니 아름다운 빛이 나며 스스로 아름다움을 다투어 나타내니 그 <응접[應接]에 겨를이 없을[不暇] 정도>이다. 나무에 단풍이 들고 하늘이 높은 가을과 겨울에는 다른 생각조차 모두 잊게 된다."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풍경이 잇달아 전개되었으면 ‘일일이 다 응접할 겨를이 없다’고 말을 하였을까? ‘응접불가’란 원래 이처럼 '계속 이어져 나타나는 아름다운 경치'를 표현하는 멋진 찬사였는데 오늘날에는 원래의 의미를 확대 적용하여 ‘새로운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감당해야 할 일거리가 너무 많이 생겨 '일일이 대응(對應)해서 처리하기가 어려운 경우'에도, '응접불가'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요즈음 우리나라의 산하(山河)를 보면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문자 그대로 '비단[錦]으로 수놓은[繡] 강(江)과 산(山)'이다. 동서남북 어디를 바라보아도 산하가 오색으로 물들어 있다. 어디에 사진기의 렌즈를 들이대도 캘린더(Calendar)에 들어갈 만큼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그림이 나온다. 글자 그대로 "일일이 응접할 겨를"이 없음을 체험하게 된다. 이름 하여, ‘응접불가의 계절'이다.

목원대학 영문과에서 나와 20년을 함께 일하던 교수 중에 ‘펜실바니아’에서 온 《필립》이라는 이름을 가진 미국인 교수가 있다. 미국에서 학부를 마치자마자, 1985년 스물 두 살의 젊은 나이로 대전에 와서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만 35년의 세월이 흘렀다. 같은 학과 동료교수 몇 사람이 미국 여행 중에 《필립》교수의 자택을 방문했는데 아주 유복한 가문이라고 칭찬하는 말을 들었다. 그는 한국에 온지 2년 만에 영문학과 여학생을 아내로 맞아 결혼을 했는데 문 장로가 미숙한 영어로 주례를 섰던 인연이 있다. .

한 번은 내가 그에게 농담 삼아 물었다. “당신은 미국의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는 말을 들었는데 왜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30여년의 세월을 한국에서 사시는가?” 그의 대답이 참으로 재미가 있다. “내가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한국의 10월과 11월의 하늘이 너무 맑고 날씨가 매혹적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인즉, 아름다운 절경의 한 복판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행복한 줄을 알아야 한다. 참으로 감사한 줄 알아야 한다. 짜증이나 한숨은 절대 금물이다. 이처럼 일상에서 기쁨과 감사를 향유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삶이 힘들고 고달파도 '우울증'이나 '염세주의' 따위는 감히 범접(犯接)하지 못할 것이다.

신앙인은 자연의 사물을 바라보되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의 시선과 사물이 마주치는 곳에 소망과 사랑이 따라 나온다. 믿음의 눈은 모든 사물 속에서 조물주의 창조의 섭리를 보게 해준다. 믿음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마력을 지니고 있어서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 하나님 창조의 손길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신약성서 히브리서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를 지니게 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믿는 이의 말과 생각은 긍정적이고도 힘찬 에너지로 넘치게 마련이다.

문정일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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