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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칼럼] '기승전 비핵화'의 시대, 비핵지대로 정면돌파를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편집부 | 승인 2020.11.25 17:06
정욱식 대표(평화네트워크)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뉴노멀'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남북관계에서도 '뉴노멀'이 불가피해지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그런데 '남북관계의 뉴노멀'은 진작부터 찾아왔다.

대북포용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던 노태우·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에는 북핵 문제가 초기 단계에 있었거나 일정 정도 해결 국면에 있었다. 이에 따라 대북 제재도 그리 강하지 않았고 남북한의 교류협력과 경제협력도 도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때부터는 북핵 능력 강화와 대북 제재 강화가 악순환을 형성해왔다. 이는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보유와 대북 제재 강화가 남북관계의 '새로운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핵화 체념론이 커지면서 그 대처 방안도 양극화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한국도 핵무기를 갖거나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해서 '공포의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핵전쟁의 공포만 가중시킬 위험이 크다. 한반도를 전갈이 득실거리는 병으로 만드는 것을 두고 결코 '뉴노멀'이라고 할 수는 없다. 더구나 한국은 이미 강력한 대북 억제력을 확보하고 있기에 누구의 핵무기든 한국에 있을 필요도 없다. 

반대로 비핵화를 추후 과제로 밀어두고 남북한의 화해협력과 평화부터 추진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역시 한계는 분명하다.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가 너무나도 촘촘하게 짜여 있어 남북한이 경제협력을 재개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은 물론이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인 영국과 프랑스마저도 비핵화의 진전 없는 대북 제재 완화에 반대해왔다. 이에 따라 비핵화를 뒤로 미루거나 우회하면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나는 이러한 현실을 두고 '기승전비핵화'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 표현은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면(기) 남북경협과 교류협력이 필요하고(승) 이를 위해서는 제재가 완화·해제가 요구되는데(전) 이를 위해서는 비핵화의 진전이 필수적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도 마찬가지 맥락을 품고 있다. 안타깝지만 이게 엄연한 현실이다. 

물론 이에 순응하자는 뜻은 아니다. 부정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현실이라면 오히려 정면돌파를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CVID와 FFVD의 대안은 MLBD 

한반도 비핵화 관련해 시야를 세계로 넓혀보면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 비핵무기지대(비핵지대)가 바로 그것이다. 현재 아프리카, 중남미, 남태평양,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이 비핵지대이고 여기에 속한 나라들이 116개국에 달한다. 

비핵지대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도 담겨 있고 그 정의와 목표를 담은 유엔 문서도 존재하며 유엔 안보리도 지지·협력을 약속한 바 있다. 유엔 군축위원회는 1999년 비핵지대 설치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한 바 있는데, 이는 유엔 총회의 승인을 받은 것이다. 특히 2009년 9월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 1887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 

 

"(15개 안보리 이사국들은) 비핵지대 조약들을 체결하기 위해 취해진 조치들을 환영·지지하고, 지역 당사국들의 자유로운 준비에 기초하고 1999년 유엔군축위원회 지침에 따라 국제적으로 인정된 비핵지대가 세계와 지역 평화와 안전을 증진하고 비확산체제를 강화하며 핵군축의 목표를 실현하는 데에 기여한다는 확신을 재확인한다." 

그렇다. 비핵지대는 이미 다른 지역의 핵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하나의 정상적인(normal) 방식으로 자리잡아왔다. 기승전비핵화라는 '새로운(new)' 현실에서 '정상적인(normal)'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는 유력한 경로로 한반도 비핵지대를 검토해야 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와 목표를 비핵지대로 삼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고 조약 체결을 '종착지'로 삼으면서, 대북 제재 해결, 평화협정 체결, 북미수교, 군비통제와 같은 사안들도 동시적·병행적으로 모색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비핵지대는 남북한이 "비핵지대 내" 당사자들로 조약을 체결하고,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5대 공식적인 핵보유국들이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비핵지대 외" 당사자들로 이 조약의 의정서를 체결하는 구도를 일컫는다. 기본적인 내용은 남북한은 핵무기를 개발·생산·보유·실험·접수를 하지 않고,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따라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시설을 보유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핵보유국들은 남북한에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가하지 않고 핵무기 및 그 투발수단 배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법적 구속력을 갖춘 형태로 보장하는 것이다. 

이처럼 비핵지대는 국제법적 구속력을 확보할 수 있어 '지속가능한 비핵화'에 가장 부합하는 방식이다. 일방적이고 과도한 요구를 담은 CVID나 FFVD의 대안으로 '다자적이고 법적 구속력을 갖춘 비핵화(MLBD, Multilateral Legally Binding Denuclearization)'를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영변 조약'을 위하여 

물론 한반도 비핵지대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존재할 수는 있다. 우선 미국이 흔쾌히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자신의 핵전략에 차질을 야기할 수 있는 비핵지대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비핵지대는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규범이 되어왔고 미국도 이에 동의했다. 또한 바이든은 2020년 10월 22일 대선 TV 토론에서 "한반도는 비핵지대가 되어야 한다(The Korean Peninsula should be a nuclear-free zone)"고 밝힌 바 있고, 안보 정책에 있어서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입장도 밝혀왔다.

무엇보다도 비핵지대 방식은 30년 동안 풀지 못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를 상대로 긴밀한 협의가 가능하다고 보는 까닭이다. 

북한이 동의할지도 불확실하다. 조약 방식으로 미국의 대북 핵위협이 근원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핵지대는 미국의 대북 핵위협 해소를 다자적이고 법적 구속력을 갖춘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방식보다는 우월하다. 또한 비핵지대는 북한이 주장해온 "조선반도 비핵화"와도 흡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비핵지대는 김정은 정권에 실질적인 '최대의 압박'이 될 수 있다. 동시에 김정은에게 '명예로운 선택'의 길을 열어줄 수 있다. 한반도 비핵지대 창설은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의 유훈을 실현한다는 역사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교 협상, 특히 적대국들 사이의 협상에서 어느 일방이 완전히 만족할 수 있는 해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패전국을 상대로도 달성하기 힘들다. 그래서 협상 당사자들이 만족과 불만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협상안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한반도 핵문제를 비핵지대 방식으로 풀자는 제안이 이에 해당될 수 있다.

한반도 비핵지대는 아직 낯선 제안이다. 다른 나라는 물론이고 한국 정부도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국내외 시민사회와 국제사회의 외교가에서 먼저 공론화를 해볼 필요가 있다. 북한과 소통이 가능한 국가들은 이 아이디어를 북한에 전달할 필요도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로 불린다. 비핵화 자체를 둘러싼 동상이몽이 너무나도 크고 이에 따라 제재 해결 등 상응조치들과 선순환적인 로드맵을 만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여 국제사회에선 이미 익숙한, 그러나 한반도 핵문제 해법으론 낯선 비핵지대를 주목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선 비핵지대가 하나의 '노멀(normal)'이다. 한반도 핵문제 해법으로는 '새로운(new)'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문제 해법의 '뉴 노멀'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한반도 비핵지대 조약에 체결되면 '영변 조약'으로 부르는 것은 어떨까?

편집부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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