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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작가 문홍연의 # 일상 - 시래기가 말라가는 11월 하순입니다
문홍연 | 승인 2020.11.20 22:03

#일상
시래기가 말라가는 11월 하순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계절 
                      詩 / 나태주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11월이다 
더 여유 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낙엽 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 
나무들이 깨금발을 딛고 선 등성이 
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 
황토 흙의 알몸을 
좋아하는 것이다 

황토 흙 속에는 
시제(時祭) 지내러 갔다가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 
콧노래 함께 돌아오는 
아버지의 비틀걸음이 들어 있다 

어린 형제들이랑 
돌담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가 
가져오는 봉송(封送)꾸러미를 기다리던 
해 저물녘 한 때의 굴품한 시간들이 
숨 쉬고 있다 

아니다 황토 흙 속에는 
끼니 대신으로 어머니가 
무쇠 솥에 찌는 고구마의 
구수한 내음새 아스므레 
아지랑이가 스며 있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낙엽 져 나무 밑동까지 드러나 보이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다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

주)굴품하다: 배가 출출하다 또는 고프다의 충청도 사투리라고 합니다.
***  ***  ***  ***  ***  ***  ***  ***

 (나태주 시인, 1945~   )

재작년인가요? 어느 신문기자가 시인한테 물었습니다. "독자들이 나태주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요?"

나태주시인 왈(曰)
“나도 모르죠, 내 탓이 아니에요. 내 시가 졸렬하고 허술하고 작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경계심이 풀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시가 가볍고 허술하다고 가치가 없는 게 아니에요. 상대방이 마음을 열어요.”

저런 모습 때문에 사람들이 노(老)시인을 
좋아하는 지도 모릅니다. 시인은 일상이 시(詩)라고 말하는데, 그 평범한 일상을 조금 다르게 보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의 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라는 시어(詩語)처럼....
자세히, 오래 보아서 그럴까요?

오늘따라 바람이 세차게 붑니다. 옛 어른들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네요. 소설(小雪) 근처에는 바람이 세차다고 하더니 울타리에 널어 말리던 시래기가 다 날아갔습니다. 새끼줄로 단단히 동여매야 했었는데, 나의 게으름을 탓할 수 밖에요. 아깝기는 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시래기된장국을 먹기는 해도 무우청이 시래기가 되는 과정은 잘 모를 테지요. 새끼줄에 엮여 처마 밑이나 빨랫줄에서 찬바람도 맞고 눈도 맞고 그렇게 꼬들꼬들 말라야 제대로 된 시래기가 되는 것이지요.

겨우내 먹으려던 시래기는 소설(小雪) 찬바람에 다 날아갔지만 나태주 시인도 좋아한다는 고구마는 그나마 거득하게 있으니 다행이라면 큰 다행입니다.

문홍연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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