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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일 교수의 생활산책(54) - 성삼문의 임절시(臨絶詩)
문정일 | 승인 2020.09.24 09:51
문정일(목원대 명예교수, 수필가)

조선 세종대왕 때 충신으로 집현전 학사였던 성삼문(成三問)은 1497년 문과 중시(重試)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세종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그는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못한다”는 선비정신을 실천하였으며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단종의 왕위 회복을 도모하다 발각되어 처참한 최후를 맞는다.

성삼문의 어머니가 그를 낳느라 산고(産苦)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의 일화이다. 지나가던 도사 한 사람이 대문을 열고 들어서더니 "이 집에 애기 낳았소?"하고 묻더란다. 하인이 "아직 안 낳았는뎁쇼."하고 대답을 하니 "허허! 천하를 호령할 인물이 되기는 틀렸는걸!"하며 아쉬운 듯 혼잣말을 하고 사라지더니 잠시 후 그가 찾아와서 같은 질문을 하였다. 역시 하인이 "아직 안 낳았는뎁쇼."하고 대답하니 "한 나라의 제왕이 되기도 틀렸군!"하고 가더니 잠시 후 세 번째 찾아와서 또 다시 같은 질문을 했다 한다. 하인이 "네, 지금 막 낳았습니다."하고 대답을 하니 그 도사는 역시 혼잣말처럼 "한 나라의 충신은 되겠네!" 하며 가더란다. 도사가 “세 번 물었다” 하여 이름을 삼문(三問)이라 지었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서울노량진에는 ‘사육신묘역( 死六臣墓域)’이 조성되어 있다.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잡혀 죽은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성삼문, 박팽년 등이 묻힌 묘소이다. 원래 이곳에는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이개(李塏), 유응부(兪應孚)만 묻혔으나, 1977∼1978년 사육신묘역 정화사업 때, 하위지(河緯地), 유성원(柳誠源), 김문기(金文起)의 가묘(假墓)도 추봉(追封)되었고 1972년 5월 25일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8호로 지정되었다. 다음에 소개하는 성삼문의 시는 그가 처형되기 직전, 죽음에 임해서 쓴 《임절시(臨絶詩)》이다.

“擊鼓催人命(격고최인명) -북을 두드림은 사람의 목숨을 재촉하는 것이요/ 回頭日欲斜(회두일욕사) -고개를 돌리니 해는 기울고 있구나/ 黃泉無一店(황천무일점) -황천 가는 길엔 주막집이 하나도 없다는데/ 今夜宿誰家(금야숙수가) -오늘 밤은 뉘 집에서 잠을 잘꼬?”

사형수를 처형하기 위해 형장으로 달려가는 수레에는 사형수에게 용수( =죄수의 얼굴을 가리는데 쓰던 원추형 갓)를 씌우고 북을 '둥둥둥' 울리면서 간다고 한다. 누구든지 중죄를 지으면 이렇게 된다는 경고의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리라.

첫 행에서 "북을 두드리니 사람의 목숨을 재촉하는 것이요."라는 글 속에서 우리는 성삼문 자신이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목숨이 경각(頃刻)에 달린 사람이 어찌 이토록 태연자약(泰然自若)할 수 있을까?

둘 째 행을 살펴보자. "고개를 돌리니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지려 하고 있구나." 하루의 해가 저물고 있는 황혼을 묘사하면서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고 있는 자신의 운명과 처지를 암시하는 듯한 절묘한 은유(隱喩)가 들어있다.

3~4행의 "황천으로 가는 길엔 주막집이 하나도 없다는데/ 오늘 밤은 뉘 집에서 잠을 잘꼬?" 이 대목은 성삼문이 가히 범인(凡人)의 삶을 초탈(超脫)한 듯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죽는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그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요, 계속해서 영원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그는 확신하고 있었던 것일까? 자신의 여행길에 주막집이 없어서 목을 축일 곳이 마땅치 않고 잠자리가 좀 불편한 것이 다소 신경이 쓰인다는 독백이다. 어차피 인생은 나그네인 것을! 이 세상이건, 저 세상이건 크게 다를 것이 무엇이며 새삼스럽게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는 표현으로 성삼문다운 의연함을 보여주고 있다.

충신, 성삼문!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갖가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오늘날의 수많은 정치인들이나 고관대작들과는 얼마나 차별화되는 인물이었던가? 불충이나 불의와는 일체의 타협을 거부하고 꼿꼿하게 살다 숭고한 죽음을 선택한 그에게서 우리는 호연지기(浩然之氣)의 전형(典型)을 보는 듯하다.

문정일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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