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 목사(본 신문 발행인, Ph. D)

진중권이 최성해에게 고마워해야 할 게 여럿 있다. 진은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로서 7 여년 간 그 대학의 녹을 먹었다. 최성해는 그 대학 총장이었다. 이사장이 있긴 했지만 바지 사장에 지나지 않았다. 최가 실질적 오너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동양대에선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짐(朕)'이었다.

그런 학교에서 교수로 일했으니 조국 사태가 일어났을 때 10년 지기 조국을 배신하고 최성해 편에 붙어 그를 적극 편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토대가 굳건하지 못한 지식인의 의식 전이는 생각보다 훨씬 쉽게 일어난다. 진중권은 최근 그것의 좋은 예를 보여 주고 있다.

진중권이 최성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그 둘의 만남은 진중권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최성해가 조국 딸의 표창장 문제로 조국 일가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결국 최의 진술이 허위로 드러났지만 당사자 최도, 그를 두둔했던 진중권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런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진중권은 동양대 교수란 직함을 가지고 진보논객연하는 활동을 열심히 했다. 신문, 공중파 방송을 가리지 않았다. 논객으로 종횡무진했다. 그런 그가 조국과 척을 진 뒤 정신적 아노미에 휩싸이게 되었다. 진보를 가지고는 조국과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일까?

진보에서 보수로 의식 이전을 할 때 보통 좌충우돌하는 중간기를 거치는 경우가 있다. 때와 장소에 따라 진보와 보수의 목소리를 낸다. 또 같은 자리에서 이 둘을 섞어서 내는 수도 있다. 지금 진중권에게 그런 시기가 아닌가 싶다. 주로 진보 진영을 공격하지만 가끔 보수를 넘는 극우 인사의 목소리에 제동을 거는 것을 보면 말이다.

확언컨대 진이 최성해를 만나지 않았다면 진보 논객으로 대우 받으며 살았을 것이다. 진의 가족사에 조금만 다가가 보아도 심리상태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목회자 아버지 밑에서 성장하면서 억눌린 생활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일본인 아내에 자녀는 엄마와 독일에 살고 있다고 한다(몇 년 전의 일이다.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우리의 언론들이 아직도 그의 입을 주시한다는 사실이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건이 터지면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의 말이라며 기사의 칸을 채운다. 그 방면에 진보다 전문성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은데 왜 하필 진중권일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 진보논객으로 활약한 그가 보수의 대변자로 전향한 것은(본인은 동의 안 할지 모르지만)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이 흥미는 언론 관계자들뿐 아니라 독자(시청자)들에게도 일정 부분 관심을 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왜 그런 것 있지 않나. 사람들은 돌연변이에 관심 두는….

그러나 이 기간은 그렇게 오래 갈 것 같진 않다. 그의 효용 가치는 시한부이다. 좌우의 중간 지대가 빈약한 우리의 상황에서 그가 설 자리가 마땅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에서는 그를 더 이상 동류로 보지 않을 것이며, 보수에 발 담근다 해도 말의 논리가 기대한 것만큼 날카롭지 못할 것이다.

말은 이론과 경험의 합산물인데 진의 입장에선 어느 것에도 힘을 싣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럴 때 진중권이 할 일이 있다. 압박감을 피해 자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진정으로 권한다. 사람들이 근황을 궁금해 할 때까지 은둔하는 것이다. 은둔하면서 과거를 돌이켜 자신을 재점검하고 삶의 기초를 다시 놓는 일이다.

진중권을 두고 ‘식자우환(識字憂患)’ 운운하며 비판했던 적이 있다. 그가 아는 게 많다는 전제 하에 한 말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확신을 떨쳐버리지 않고 있다. 지식도 사회에 순기능을 할 때 의미가 있지 역기능을 해서는 안 된다는…. 진중권은 이 점을 마음에 새기고 내적 지식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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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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