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해질녘 부항댐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아내와 산책을 나왔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세느강에 
놓여있다는 "미라보다리" 보다 더 멋진 부항대교를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뜨거운 8월의 태양도 지쳤는지 산을 넘더니 바로 숨었습니다. 해가 지고 잠시 있었는데 어느 틈에 서늘한 강바람이 옷깃을 파고 듭니다. 

부항대교를 찍으려고 했더니 그만 슬리퍼에다 편한 몸빼바지를 입은 아내의 뒷모습도 같이 찍혔습니다. 

사진을 지우려다가 예전에 읽었던 시 한편이 생각이 나서 그대로 올립니다.

            귀가 예쁜 여자 
                         詩/ 나태주

맞선을 본 처녀는 별로였다 
살결이 곱고 얼굴이 둥글고 
눈빛이 순했지만 
특별히 이쁜 구석이라고는 없었다 
두 번째 만나던 날 
시골 다방에서 차 한 잔 마시고 
갈 곳도 마땅치 않아 
가까운 산 소나무 그늘에 앉아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산길을 내릴 때 
앞서가는 처녀의 뒷모습 
조그맣고 새하얀 귀가 예뻤다 
아, 귀가 예쁜 여자였구나 
저 귀나 바라보며 살아가면 어떨까? 

그렇게 살아, 나는 이제 
늙은 남자가 되었고 
아내 또한 늙은 아낙이 되었다.

시어(詩語)가 참 쉽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시인은 45년생입니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퇴직을 하셨지요. 벌써 76살이나 되셨군요. 

시를 찬찬히 읽어보니 시인이 맞선을 
본 여자는 예쁜 구석이라고는 별로 없는 처녀였군요. 그 당시에는 카페 같은 것이 없었으니 ‘시골 다방’에서 만났겠지요. 그리고 차를 마시고 갈 곳이 마땅치 않았으니 맞선을 보고 두 번째 만나는 사람들이 가까운 산으로 가서는 소나무 그늘에서 이야기를 했겠지요?

아마도 나태주 시인이 주로 말을 하고 
그 처녀는 경청을 했다는 느낌이 드네요 
산을 내려갈 때 뒤에서 바라본 처녀의 예쁜 귀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지만, 실은 시인의 이야기를 성실하게 들어 주는 진지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보면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청(傾聽)은 부부뿐만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데 정말 중요한 덕목이더군요. 

저도 결혼생활 30년을 훌쩍 넘기고 나이까지 이순(耳順)을 지나가니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것이 화목하게 살아가는 비결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낍니다. 나태주시인의 시 구절에 나오는 것처럼 예쁜 귀로 농부의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여 32년째 해로하고 있습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다시 또 '코로나19'가 유행처럼 번져 갑니다. 이런 때에는 부항댐 둘레길이 언택트(비대면)관광지로는 최고입니다.

문홍연  gcilbonews@daum.net

문홍연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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