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게 찾아오지 못한 광복 75주년

어수선한 가운데 또 광복절을 맞이합니다. 광복 75주년입니다. 일제의 압제로부터 해방된 날, 독립한 날은 즐겁고 기뻐야 정상인데 그렇지 못합니다. 왜일까요. 

주객관적인 상황이 먹구름입니다. 코로나19가 반 년 훨씬 넘게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또 긴 장마 속 폭우가 우리 마음을 할퀴고 갔습니다. 자연이 주는 재해라고 하지만 고통의 강도는 우심합니다.

그것보다 더 큰 고통이 있습니다. 갈라진 국론입니다. 보수와 진보로 갈라지고, 중앙과 지방으로 나뉘고, 동서로 분열되어 서로 헐뜯고 있습니다. 국제 사회는 냉혹한데, 우리끼리 싸우기에 바쁩니다.

광복 75주년, 그동안 발전도 있었고 성장도 없지 않았습니다. 발전과 성장은 갈등과 분열이 아니라 한민족의 공동체성을 발현할 때 나타났습니다. 일제를 봐도 그렇습니다. 소위 그들의 대동아 공영권도 일제 단결의 결과입니다.

일제 식민 통치를 합리화한 식민지 근대화론

마지막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가 했다는 말, “조선민이 찬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릴 것이다. 일본은 다시 돌아온다”(이것은 아베의 말이 아니라고 함). 식민지 교육을 심어놓았다는 점을 덧붙였습니다.

이 말은 일본 주류층의 대한관(對韓觀)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기저에는 한국인의 분열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식민 통치 36년 동안 서로 이간질하고 노략질하도록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곁길로 빠지는 듯합니다. 일제가 과거 한국을 지배한 논리가 식민지 근대화론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농업국가인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 경영으로 인해 근대화가 되었다. 따라서 생활수준이 향상되었다’ 이런 논리라면 일본은 우리의 은인이 되는 셈입니다.

식민 지배의 합리화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것을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지난 세기까지만 해도 ‘친일’은 우리에게 배척의 단어요 금기어였습니다. 부끄러움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친일이 어때서!'라고 생각하는 부류가 우리 주위에 적지 않습니다.

내셔널리즘의 퇴화 현상이라고만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한 이데올로기의 퇴화 문제가 아닙니다. 가치관의 혼돈 문제입니다. 왔다가 사라지는 게 이념입니다. 한 때 강했던 것이 약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민족 속에 내재되어 있는 '우리'라는 의식은 인간의 본질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가치관의 혼란, 신자유주의의 영향?

혹자는 지금의 가치관 혼란을 서구(西歐)를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영향이라고 봅니다. 인간보다도 물질을 가치의 중심에 두고 있으니 정신 영역이 축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배금주의와 맘몬주의가 인간의 의식을 사로잡습니다. 사회엔 구조 조정이 일어나고 인간성은 홀대를 받게 됩니다.

민족과의 관계도 물질에 종속됩니다. 지금의 한일 관계가 딱 그렇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편안하면 되지 '반일'이 밥 먹여주냐는 식입니다. 부인할 사람이 있겠지만 이런 의식의 소유자들이 정치 경제계뿐 아니라 학계와 문화계 등에 의외로 많습니다.

우리의 선조들 중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불사른 사람들이 많습니다. 독립운동가 또는 독립투사로 불렸던 분들입니다. 일제 말 친일(親日)과 부일(附日)세력이 대세를 형성할 때, 풍찬노숙하며 투쟁을 한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광복이 올 수 있었습니다.

춘원 이광수는 일제시대 지식인의 상징적 존재였습니다. 강점기가 길어지고 그는 친일로 돌아섰습니다. 8.15 해방 때 그가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해방이 이렇게 일찍 찾아올 줄 알았다면 친일을 하지 않았을 텐데...'  지식인의 허위의식을 드러내 주는 말입니다.

다시 변절자 양산의 시대로...

군사독재 때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반대 진영으로 넘어가 도리어 홍위병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이 땅의 민중을 위해 헌신하던 사람들이 가진 자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을 ‘변절자’ 또는 ‘훼절자’라고 부릅니다.

이런 부류는 역사적 교훈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친일배로 말을 갈아 탄 변절자들에게서 얻는 교훈이 전혀 없는 이들입니다. 그들의 처신이 잘못된 것도 모르고 도리어 기고만장하는 모습에서 일말의 안쓰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광복 75주년이 되는 기쁜 날, 철없는 이들의 행태가 또 우리를 화나게 만듭니다. 코로나19 감염이 잦아들지 않고 있고, 홍수로 입은 피해로 복구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의사들이 여의도에 모여 문재인 탄핵 집회를 대대적으로 개최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을 자기들 마음에 안 든다고 탄핵하겠답니다.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내 건 명분이 의대생 증원 반대라고 합니다. 여러 가지 속사정들이 있겠지요. 하지만 제겐 의사들의 밥그릇 챙기기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의사들은 전문인이고 또 배운 사람들입니다. 이성적 판단이 가능한 사람들일 겁니다. 그런데도 의협회장 등 극우성향의 집행부에 휘둘려 병의원 문까지 닫고 단체행동 하는 것이 보기에 무척 안타깝습니다. 의사들의 수준이 저것밖에 안 될까….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자기 밥그릇 챙기기

의사들은 사람의 생명을 돌봅니다. 사회에서 귀한 존재로 대우 받습니다. 코로나19가 창궐할 때 그들의 희생과 헌신에 많은 사람들이 고마워하며 응원했습니다. 그러나 의협의 여의도 집단행동을 보면서 밥그릇 앞에 나약한 의사들의 숨은 이기심을 봅니다.

나만이 잘 사는 게 아니라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세상 아닌가요. 더불어 사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는 걸 그들이라고 모를 리 없을 텐데요…. 그들이 생각의 폭을 조금 더 넓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회의 기초 단위로 가정을 꼽습니다. 가정의 상황은 사회 나아가 국가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가정은 토론하고 논쟁하되 가족이 운명 공동체라는 생각을 갖고 임합니다. 찢어짐이 아니라 하나 됨을 위해 힘을 보탭니다.

국가도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전혀 이런 분위기가 아니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두 개의 선로를 달리는 철로와 같은 형국입니다. 합치점(交點)이라곤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정치는 정치대로, 경제는 경제대로 심지어 만인 구원을 위한 사랑의 종교까지도 생각이 다른 쪽을 사탄시하며 저주를 퍼붓고 있습니다. 국가의 미래를 밝게 그릴 수 있을까요?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공동체성 회복하자!

서로 적대시해서는 안 됩니다. 잘 하는 것은 도와 힘을 합하고, 잘 못 하는 것은 바로 잡아 발전을 위한 동력으로 삼아야 합니다. 없는 단점도 만들어 공격할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장점을 찾아내어 칭찬할 때 장밋빛 미래가 예비 되는 것입니다. 

이명재 목사(본 신문 발행인, Ph. D)

쉽지 않겠지요. 무척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광복 75주년이 되는 오늘, 국민 모두가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자신을 채우는 날이 되면 좋겠습니다. 국민 전체가 대동정신을 다짐하는 광복 75주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발행인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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