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일(목원대 명예교수, 수필가)

약 20여년 전, 안식년으로 캘리포니아에서 1년간 머무는 동안 감리교단의 선윤경(宣允景, Peter Sun, 1934~ )목사님을 이웃에 모시고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는 다시없는 행운이었다. 선 목사님은 1960년대 초에 유학차 도미하여 미국동부 『보스턴 대학』에서 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동부 감리교단에서 30여 년간 목회를 하시다가 만 60세가 되던 해에 조기은퇴하시고 나서 10여 년간 캘리포니아 알라메다 카운티에 은거하시다가 기력이 쇠해지시면서 지금은 동부지역에 있는 자녀들과 함께 살고 계시다.

안식년을 보낸 일 년 동안 매일 새벽, 바닷가 산책을 함께 하면서 선 목사님과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캘리포니아의 대부분의 명소를 친히 안내해 주신 덕분에 미국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으니 이런 행운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는다. 이따금 전화통화라도 하게 되면 늘 반복해서 하시는 말씀이 있다. "문 박사, 바닷가 새벽 산책 마치고 바닷가 맥도널드 창가에 앉아서 출렁이는 바다를 내다보며 즐기던 에그머핀과 커피 한잔의 추억을 매우 ‘미스(miss)’하고 있어요."

한 번은 목사님을 따라 흑인교회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사실은 그날 특별히 흑인교회에서 1년에 한 번씩 '영혼의 음식'을 먹는 의식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의식은 외형상으로는 개신교의 성찬식과 유사한 의식이지만 흑인들에게는 깊은 의미가 있다. 자기네 조상들이 노예시절에 먹던 음식을 기억하고 옛날의 그것과 꼭 같은 음식을 먹음으로써 조상이 겪었던 아픔을 직접 몸소 체험하면서 민족애를 고취하고 아울러 자유의 몸이 되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옛날 노예생활을 하던 조상들이 백인들이 잡아먹고 버린 돼지의 내장을 흐르는 개울물에 씻은 다음, 역겨운 냄새가 덜 나도록 특정한 풀[草]을 함께 넣고 끊여서 그 국물을 먹는 의식이다. 한 사람씩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집례하는 목사가 떠주는 '영혼의 음식'을 받아먹는 것이다. 이 '영혼의 음식'이란 짐승들이 먹는 '꿀꿀이 죽'과 같은 것인데 그 음식 속에 자기네 조상들의 영혼이 살아 숨 쉬고 있으며 노예 신분으로 짐승이하의 취급을 받던 선조들의 얼과 정기가 맥맥이 흐르고 있는 그런 음식이기에 그들은 감사와 감격 속에 '영혼의 음식'을 먹는 예배의식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날 선 목사님은 그 의식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으나 나는 음식을 받아먹다가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할 것만 같아 의식에는 참여하지 않고 시종 '옵저버'의 자격으로 의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예배 후에 선 목사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그 음식의 냄새가 하도 역하고 비위가 상해서 목 너머로 넘기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선 목사님은 그 의식에 참여하시고 나서 힘주어 말씀하였다. 흑인들이 비록 오랜 동안 인간이하의 대접을 받아 왔고 아직도 그 상처의 흔적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지만 이들이 진정 잠재력이 있는 민족이요, 흑인교회가 활기 있게 살아 움직이는 이유와 그들 특유의 믿음의 열기의 근거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흑인교회의 예배의식은 설교자나 회중이 모두 일어서서 양손을 높이 쳐들고 온 몸을 흔들면서 교회당의 마루 위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춤추는 모습으로 진행이 되고 있었다. 짐승만도 못한 대접을 받던 자신들을 하나님이 자유케 하셨는데 그 감격을 생각하면 어떻게 조용히 앉아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말하자면 예배자체가 감사와 은혜의 표현이요, 간증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선 목사님의 자책과 충고가 이어진다. “우리도 자만하지 말고 겸허한 마음으로 해마다 '꽁보리 주먹밥'이나 '개떡'과 같은 우리 나름의 '영혼의 음식'을 통하여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다질 뿐만 아니라, 신앙을 바탕으로 한, 흑인들의 조국애와 민족애를 배워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금주(8/15)에 《제75주년 광복절》을 맞는다. 우리도 일제치하 36년간의 참혹했던 역사를 깊이 묵상하며 “영혼의 음식”을 시식(試食)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게 된다.

문정일  gcilbonews@daum.net

문정일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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