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시평] 국회의사당과 분홍 원피스

사람이 입는 옷은 민감한 사안 중 하나이다. 멋과 개성이 옷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신경을 많이 쓴다. 내가 생각하는 멋있는 옷이 다른 사람에게는 눈에 거슬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런 옷 입지 마라 할 수는 없다.

40여 년 전 나의 대학생활이 떠오른다. 나는 군복 물들인 검정색 옷을 사시사철 입고 다녔다. 생활이 어려운 이유도 있었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검정 색 옷 두 벌을 번갈아 입고 다녔는데. 그 옷이 주위에 나의 상징으로 인식될 정도였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등원해서 말들이 많다. 찬반으로 나뉘어 의견들을 주고받고 있다. 둘 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의원이 국회의사당에 올 땐 다른 의원들을 생각해 정장을 하는 게 옳다고 한 쪽에선 말한다.

다른 한 편에서는 그런 시각 자체가 바로 ‘꼰대 의식’이라며 맞선다. 개인의 취향을 꼰대 의식으로 짓눌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모든 게 개방되어 있는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남녀 의원들에게 정장을 강요하는 것은 구태의연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류호정 의원(정의당)이 국회의사당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은 예를 들기도 한다. 상가에 조문 갈 때 화사한 옷을 피한다. 또 결혼식 등 축하할 자리에는 칙칙한 옷을 입고 가지 않는다. 이처럼 의사당에서도 최소한의 복장 예의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양에도 드레스코드라는 게 있다며…

세상은 변하고 있다. 정치 선진국인 서구의 예에서 보면, 의회의 모습이 정장에서 다양한 모양의 옷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다. 우리라고 특별하지 않다. 나이든 사람의 눈에 틔는 복장도 젊은이들 눈에는 창의적 모습의 결과로 비칠 수 있다.

우리의 정치는 젊은이들을 키우는 것에 인색했다. 나이로 될성부른 젊은이의 싹을 자르는 데 더 익숙하다. 봉건 왕조시대의 폐습을 물려받은 것이 아닐까 싶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처럼 국회에서의 튀는 언행은 싹 잘림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신진대사가 원활한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류호정 의원은 21대 최연소 의원(만 27세)이다. 류 의원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정치인이 구습을 타파하는 것도 할 일 중 하나이다. 이런 점에서 류 의원은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류호정 의원 분홍 원피스 논란에서 내가 본 긍정적인 측면은 다른 데 있다. 지금까지 어떤 사안이든 보는 눈이 진보와 보수로 명확하게 갈렸다. 그 사이에 틈새가 거의 없었다. 자유와 정의 그리고 진리조차도 찬반이 진영논리에 근거해 나뉘었다.

진보가 '좌'하면 보수는 '우'하고, 진보가 '우'하면 보수가 '좌'하는 식이었다. 진보와 보수가 경쟁 속에서도 상호 보완 내지 협조체제가 되어야 나라에 희망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했는가. 분란과 갈등만 있었다. 모두가 대오각성할 필요가 있다.

이런 극한 대립으로 인해 진리는 실종되고 정의는 발붙일 여지가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류호정 옷 논란에서는 난공불락과도 같은 선이 무너졌다. 찬반이 나이와 지역을 초월하고 정파를 떠나 나누어진 것이다. 이런 일이 자주 있으면 좋겠다.

정의와 진리는 진영 논리보다 상위 개념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진보 보수의 이분법적 사고, 앞으로 이런 것이 많이 깨지면 좋겠다. 이렇게 될 때 진영 간 사즉생(死卽生)적 투쟁이 완화될 수 있다. 정치 발전은 다름 아닌 이런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이명재 목사(본 신문 발행인, Ph. D)

21대 최연소 류호정 의원을 응원한다. 젊음은 특권이다. ‘꼰대들’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틀을 깨며 젊음의 끼를 맘껏 발휘하기 바란다. 국회의사당과 분홍 원피스, 좋은 도전이었다. 구각은 나서서 깨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발행인 lmj228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