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대구 동부소방서 119 구급대에 한 시민이 찾아와 봉투 두 개를 건네고 홀연히 떠났습니다. 소방관들의 만류에도 편지 한 통과 현금 152만원을 건네고 사라졌답니다.

그 편지에 "코로나로 영업에 어려움을 겪은 대구 지역 설계사를 위해 강의료를 50% 할인해 드렸고, 그렇게 받은 강의료 전액을 소방관들께 기부한다"고 밝히셨습니다. 또 “전국 소방관들이 모두 고생했지만 초창기에 코로나가 퍼진 대구 소방관들이 더욱 힘들었을 것 같다”고 위로하셨습니다.

편지 말미에 "빛고을 보험설계사가 형제 도시 달구벌 소방관님들께"에 눈길이 한참 멈춥니다.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 누구에게도 결코 적지 않은 돈을 대구 소방관들에게 건넨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코로나19 사태 초반에 병상을 찾아 헤매는 대구의 한 가족을 가장 먼저 받아준 곳이 광주였습니다. 광주는 그렇습니다. 안아주고 연대합니다. 저는 지난 총선 중에 수성구 거리에서 광주의 연대정신을 잊지 말자고 외치고 다녔습니다. 비록 낙선했지만 많은 대구 시민들이 광주의 따뜻한 마음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저는 지역주의를 넘어서겠다고 대구로 선거구를 옮겼습니다. 그래서 늘 선거에서 이기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제가 당선되어야 지역주의가 해소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 졌습니다. 다시 지역주의가 살아났다 싶었습니다. 제가 틀렸습니다. 광주의 평범한 시민께서 제가 틀렸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역주의는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품음으로써 녹여 없애는 것입니다. 이렇듯 호남의 품이 넓습니다.

돌이켜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지역주의와 싸운다고 했지만, 실은 다 내려놓고 부산을 품으러 가신 것이었습니다. 져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밭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품으러 간 사람에게 무슨 패배가 있겠습니까. 저는 한 번 이기고도 그걸 깨닫지 못했나 봅니다.

최근 일부 언론이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를 영호남 지역 대결구도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민주당에 대한 모욕입니다. 우리 민주당은 정책과 비전으로 말하는 정당입니다. 출신 지역을 놓고 이리 나누고 저리 가르는 건 낡은 방식입니다.

중산층과 서민에게 지역이 무슨 의미 있습니까? 노동자와 농민에게, 비정규직과 소상공인에게 출신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 국민일 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민주당일 뿐입니다.

김부겸(전 행안부 장관)

‘형제 도시 달구벌’이라 불러주신 광주 시민 앞에 약속드립니다. 저도 품겠습니다. 맞서 싸우는 걸 넘어, 품음으로써 지역을 넘어서겠습니다. 오직 능력과 비전으로 정치하겠습니다. 더 큰 민주당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편집부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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