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식 지음 『한반도의 길, 왜 비핵지대인가?』(유리창, 2020년 6월 출판)

1.

이 책에서 저자 정욱식 대표(평화네트워크)는 “한반도 비핵지대”를 주장합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요.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첫째, 이것이야말로 북한과 미국 사이의 대립을 해소하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이를 통해서 북미 관계의 정상화는 물론,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과 군비 통제 등 여러 가지 현안이 ‘동시적·병행적’으로 풀리기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이해 당사국인 한국과 북한과 미국도 만족할 수 있는 해법이기 때문입니다. 넷째, 비핵지대화는 한반도에서 전쟁 재발을 막는 해법이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이 방법은 미국과 중국의 무력충돌을 예방하는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한반도를 비핵지대로 만들 수 있다면 우리 문제를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주체적으로 풀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정욱식은 한반도 평화문제 전문가입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을 예견하기도 했고, 경상북도 성주에 사드를 배치하는 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도 예리하게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는 우리에게 하나의 선택지가 아니라 설사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성취해야 할 일이지요. 그런 때문에 저자는 평화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사용하는 “비핵지대화”라는 개념은 비핵화보다 훨씬 섬세한 것인데요. 국제적인 조약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고, 정욱식은 이 문제를 남북한 양국이 함께 이끌어나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꿈이 실천되기란 쉽지 않을 테지만 미래를 준비하는 책임감 있는 한국의 시민이라면 당연히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하나의 화두가 아닐까 합니다.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를 바라는 시민이라면 이 책을 함께 읽고, 이 나라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토론에 참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3.

짐작은 했습니다마는 2019년 북한과 미국의 ‘하노이’ 협상이 불발한 것은, 미국 측의 무성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당시 미국 측은 북한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을 하였던 거지요. 2019년 2월 말의 제2차 북미 정상회담 때 트럼프는 북한의 핵 포기뿐만 아니라 생물·화학무기와 탄도미사일 전부를 폐기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또, 북한이 소유한 모든 핵과 미사일을 한꺼번에 미국에 넘기라는 요구하였습니다. 그것도 회담 직전에 이런 요구를 갑작스럽게 밝힘으로써 사실상 스스로 판을 깨고 말았지요.

미국이 한반도 평화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책에도 나오는 이야기지만 한반도 평화통일 같은 것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일찍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이렇게 말했어요.

“북한이 주기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이를 굳이 나쁘게 볼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미국으로서는 반길 만하다.”(2013년 6월)

현재의 트럼프 대통령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적당한 수준의 ‘공포 마케팅’과 ‘희망 마케팅’을 뒤섞어서 한국을 자신들의 품 안에 가두고는 값비싼 무기를 사도록 강요하는 데 목적을 둡니다. 한반도에 미군이 상주함으로써 미국이 얻을 수 있는 외교, 군사적 이익은 막대합니다. 태평양 지역을 장악하고 유라시아 대륙에서 패권을 행사하는데도 필수적이란 말입니다.

4.

이 책을 읽다가 눈에 확 들어온 몇 구절을 적어봅니다. 이 책의 취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서입니다.

- 이 세상에는 이미 “비핵지대”가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저자의 설명은 이러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중남미 및 카리브해, 남태평양,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몽골이 비핵지대이다. 지구 면적의 절반 이상이 비핵지대이고, 이를 국가 수로 환산하면 115개국이 비핵지대에 속해 있다. 그래서 국제사회에선 비핵화보단 비핵지대가 훨씬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에겐 왜 비핵지대가 생소하기만 하고 한반도에선 비핵지대 대신에 비핵화라는 표현이 사용되어온 것일까?”

- 북한 핵무장에 대한 박근혜 정권의 접근 방식이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무능했는지를 한마디로 정리합니다.

“북한의 핵무장이 가시화되자, 박근혜 정부는 2015년부터 ‘참수작전’을 공공연히 언급했다. ... 하지만 김정은은 ... 핵탄두 발사 항시 준비 및 선제공격 방식으로의 전환을 명령했다.”

- 미국과 같은 강대국도 약소국을 마음대로 주무르지는 못한다는 역사의 교훈이 있습니다.

“21세기 들어서도 미국의 고전은 계속되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등을 상대로 전쟁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 이처럼 핵 강대국에게 핵무기가 결코 만능의 무기가 아니었다면, 이들 나라보다 훨씬 약한 북한에게도 결코 예외일 수는 없다.”

-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남북의 평화 프로세스를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다는 비판입니다. 경청할 부분입니다.

“정부는 대북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선적으로 남북협력 사업을 추진할 뜻을 밝혔다. 금강산 개별 관광, 비무장지대 유네스코 세계유산 남북한 공동 등재, 도쿄 올림픽 남북 공동입장 및 단일팀 구성과 2032년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 추진 스포츠 교류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미국은 남북협력을 지지한다면서도 “비핵화와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북한도 2020년 3월까지 호응이 없는 상태이다.“

- 북한 핵은 폐기를 결정한 다음, 미국이 아니라 러시아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러시아는 자국의 핵무기는 물론이고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벨라루스로부터 핵무기를 이전받아 폐기한 경험이 가장 많은 나라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협력적 위협감소(CTR) 프로그램을 통해 재정 지원과 기술 협력에 나선 바 있다. 또 러시아는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우호 관계에 있다. 아울러 러시아에는 핵탄두 및 이를 장착한 미사일을 안전하게 운송할 수 있는 특수 차량과 열차 등 특수 장비들이 있고 북한과 러시아는 철도와 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신속하고도 안전하게 운송할 수 있는 인프라와 장비 및 시설은 이미 갖춰진 셈이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 외교관 출신인 안드레이 구빈 극동대 교수는 “러시아는 그러한 경험과 시설을 갖추고 있다”며 “다만 이에 대한 국제적인 합의와 북한의 요청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5.

한반도를 ”비핵지대“로 만드는 작업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 틀림없습니다. 갑작스럽게 될 리도 없고, 내부를 설득하기도 어려우며, 더구나 복잡미묘한 국제관계에서 남북한 양국이 주도적으로 이 작업을 추진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어떤 의미로 보든지 간단한 작업이 아닙니다.

그러나 역사적 과제란 늘 그런 것이지요. 불가능한 것을 바꾸는 것이 정치가의 일입니다. 관계란 항상 역동적이기 때문에 미리 철저하게 준비한 사람만이 미묘한 시점에 역사의 방향을 틀 수가 있는 거지요. 이 책을 하나의 출발점으로 삼아서 깊고 풍부한 논의가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편집부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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