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시평] 양보의 미덕이 필요할 때

정치 공학적으로 무슨 유불리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국민과의 약속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 지난 총선이 끝난 뒤 여야 모두가 들고 나온 것이 이른바 ‘협치’이다. 거대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협치와 더불어 겸손을 말했고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도울 것은 확실히 돕고 비판할 것은 따끔하게 비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행태는 20대 이전의 국회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국회 개원을 앞두고 원 구성조차 못하고 있다. 여당은 법정 개원일인 6월 5일 국회를 열어 의장단을 뽑겠다 하고, 미래통합당은 여야의 합의가 있어야 국회 문을 열 수 있다며 버티고 있다. 여야 공히 총선 직후에 가졌던 마음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착각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20대 국회에서 싸움 잘하던 의원들이 대거 쓴 잔 마신 교훈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21대 국회의 절반 이상이 초선이란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말 모른단 말인가. 기존 정치인과 구태 정치에 대한 옐로우 카드라는 것을 알만도 한데 일부러 의식하지 않으려고 외면하는 것만 같다.

21대 국회가 5월 30일부터 임기가 시작되었다(사진 = 연합뉴스)

결론부터 말하면 거대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통 큰 정치를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야당이 된 미래통합당은 안쓰러울 정도로 왜소화되었다. 그들이 해 온 행태를 볼 때 막다른 골목으로 더 밀어 붙이면 속이 시원하겠지만 정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 당이 누울 자리를 마련해 놓고 밀어붙여도 붙여야 한다.

솔직히 난 그들이 총선 직후 '협치' 운운할 때 별로 믿지 않았다. 정치는 관성이 크게 작용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하고 싶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여야를 불문하고 그들은 할 수 있는 일을 바꾸지 않고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별개로 하고...

협치는 협상의 결과일 때 생명력이 있다. 협상은 공식 또는 비공식적으로 자주 만나서 대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아낼 수가 있다. 지금 여야 원내 사령탑은 이 점이 아주 부족하다. 구두선을 남발하는 언론 플레이로는 묘책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여야 원내 사령탑은 문제를 푸는 동역자란 생각을 가져야 한다.

국회의장과 부의장은 이미 내정되어 있다. 전체 회의에서 선출하는 절차만 남아 있다. 그야말로 형식적 통과의례만 남았다고 보면 된다. 문제는 18개 상임위원장이다. 협상 용 냄새가 물씬 풍기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8개 상임 위원장 자리를 몽땅 갖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상식에 어긋날뿐더러 국민의 정서와도 동떨어진 말이다.

지금까지 의석분포에 따라 상임위원장을 분배해 왔다면 21대에도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어떻게 분배하느냐를 놓고 협상을 벌여야지 아예 한 자리도 주지 않겠다고 못을 박으면 협상 자체가 성사되지 않는다. 혹자는 예결위와 법사위 위원장을 야당에게 주지 않으려고 더불어민주당에서 선수를 치고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

177석, 여기에 열린민주당 3석까지 합하면 180석이나 된다. 개헌 빼고 다 할 수 있는 숫자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예결위 법사위 중 한 자리는 야당에 양보하는 것도 괜찮다. 여당 입장에서는 겸손의 정치를 실천하는 것이 된다. 물론 21대 후반기 예결위와 법사위 위원장을 야당에 양보함으로 받은 어려움은 잘 알고 있다.

또 미국 같은 선진국도 다수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식한다, 우리나라 국회도 다수당이 독식하다가 여당의 힘이 막강했던 독재 때 야당에게 불평 무마용으로 시혜 베풀 듯 떼어 준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18개 상임위원장을 다 가져가도 문제 될 게 없다... 이런 논리는 지금 상황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기가 어렵다.

이명재 목사(본 신문 발행인, Ph. D)

협치는 양보의 미덕을 발휘할 때 힘을 얻을 수 있다. 양보는 약자보다는 강자가 먼저 하는 게 순서다. 지금 여당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막강한 힘을 행사할 수 있다. ‘정부여당’이란 말이 지금보다 더 실감날 때가 있었는가. 총선 직후 이구동성으로 '겸손'을 외쳤으니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원 구성에 속도를 내기 바란다.

발행인 lmj2284@hanmail.net

트윗하기

발행인의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