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재(언론인)

빈센트 반 고흐는 두 달 여 간 함께 생활했던 동료 화가 폴 고갱과의 격렬한 말다툼 끝에 자신의 귀를 자른 사건으로 유명합니다. 그가 귀(귓볼)를 자른 이유에 대해 여러 분석이 있습니다. 고갱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고흐와 건방지며 타인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고갱의 성격이 부딪혔다는 풀이가 많습니다. 

왜 하필 귀였을까? 누구도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기에 제 마음대로 상상을 해봅니다. 고흐는 고갱과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며 소통하지 못한 스스로의 협소함에 절망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소통의 1차적 관문인 경청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자신의 귀를 미워하며 징계를 내리지 않았을까?  

귀를 자른 게 미치광이의 발작적 행동이라는 풀이는 단선적일 뿐 아니라 천재 화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뭐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 대목에서 경청의 중요성을 다시 떠올립니다. 무엇보다 하늘의 소리를 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모든 일은 무의미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자연현상과 역사적 사건 뿐 아니라 인간들의 범속한 일상까지 초월자의 뜻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야스퍼스는 따라서 "세상에 나타나는 여러 현상이나 표상을 보고 그에 숨겨진 초월자의 암호 즉 메시지를 헤아려 풀이해 내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덧붙였습니다. 암호를 풀려면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첫 단계가 하늘로 귀를 여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순종하며 살면 우리의 영혼은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내가 따뜻해졌기에 그악스럽고 거친 일상에 차가워진 타인을 품을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하늘이 내게 주신 온기가 이웃에게 전해집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뜻과 영혼의 목소리를 듣다가도 이내 세상사와 물질세계에 다시 빠져듭니다. '현대인의 우상은 출세'라고 한 미국 신학자 하비 콕스의 지적처럼 물질적 성공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러나 마음은 소란스럽습니다. 편안하지 못합니다. 

대지에 굳게 발을 디디고 하늘 소리를 들을 때 우리의 삶에는 편안함이 찾아오리라. 내게 깊게 뿌리박힌 슬픔도 사라질 것이다. '(하늘 소리에 의해) 왜 사는 지 아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빅터 프랭클)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도 어제처럼 산길을 오릅니다. 편하게 걷는 길가에 찔레나무들이 여기 저기 서 있습니다. 활짝 열린 꽃잎이 사람의 귀를 닮았습니다. 하늘로 순하게 열렸습니다. 하늘 이야기에 따뜻해진 찔레가 이제 제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이창재  gcilbonews@daum.net

이창재  gcilbonews@daum.net

<저작권자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