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말티재를 넘었습니다.

이곳 말티재는 속세와 서방정토를 경계 짓는 관문의 역할을 한답니다. 
저 고개를 넘어서면 속세와 이별한다는 속리산(俗離山)이니 그렇게 부르는 것일까요? 그러고 보면 속리산만큼 불교적인 색채가 뚜렷한 산도 드물 듯합니다. 

저도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여러 번 말티재를 넘어서 속리산을 다녀왔지만 아직까지도 세속에 미련이 남았는지 
오늘도 여전히 분주하게만 다닙니다.

재를 넘어 한참을 달렸더니 저만치 조선조 세조대왕의 가마가 지나갈 때 스스로 가지를 들어 올려서 정이품 벼슬을 얻었다는 정이품송이 보입니다.

무심히 쳐다봤더니 이제는 기운이 다했는지 여기저기 지주대에 의지해서 간신히 버티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수령 800년은 아름답게 넘겼으니 1,000년인들 못 채울라구요? 언젠가는 이곳 속리(俗離)를 영원히 떠나겠지만 꿋꿋하게 잘 버텨 주기를 빌어 봅니다.

매표소를 지나 세조길을 따라서 
피안(彼岸)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오늘따라 씰데 없는 생각이 드네요. 
제 나이 62살인데 앞으로 얼마큼이나 차안(此岸)에서의 세월이 남았을까요? 가끔씩 미래가 궁금하기도 합니다.

일주문을 지나 오리숲을 부지런히 걸어서 법주사에 도착했습니다. 금강문을 지나고 팔상전도 지나니 
국보 5호 쌍사자석등이 반깁니다. 
제가 늘 마음에 있어 하는 국보입니다.

어떤 시인은 그의 시에서 말했지요.
"세상사 괴로우면 한번쯤 찾아와서 세상사 떠받드는 석등과 천년 신라를 안아보고 싶다"고....문외한인 제가 봐도
통일신라시대 석공님의 조각 실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쌍사자 석등 사이로 법주사 대웅보전의 멋진 현판 글씨가 보입니다. 

시인은 세상사 괴로우면 찾아 온다지만 저야 뭐 세상일들이 그렇게 괴로울 것도 없고, 법주사를 찾는 핑계 아닌 핑계를 
하나 만든다면 세상사를 떠받든다는 저 "쌍사자석등"이 보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법주사 너른 경내 귀퉁이에 앉아서 싸가지고 온 김밥으로 점심을 때웁니다. 너른 마당에는 '코로나19'로 인해서 아직까지 주인을 못 찾은 연등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고,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맑은 미소를 띠며 지치지도 않고 쏘다닙니다.
아이를 앞세우고 따라다니는 젊은 부모가 참으로 존경스럽게 보입니다.

법주사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며 마음을 깨끗하게 씻는다고는 했습니다만.... 막내딸 취업에 대한 기도는 차마 씻지를 못했던지 두 손 모아 기도를 했습니다. 

이제는 왔던 길을 돌아 갈 시간입니다.
돌다리를 건너고 오리숲길을 가로질러 다시 차안(此岸)의 현실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늘 그랬습니다. 저는 오늘도 
속세를 벗어나지(俗離) 못했습니다.

문홍연  gcilbonews@daum.net

문홍연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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