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어버이날 아침입니다. 여느 해와는 또 다른 어버이날을 맞이합니다. 슬픈 어버이날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시간이 되는 아이들과 함께 어버이(제게는 장인어른)를 뵈러 바쁜 발걸음을 했었습니다. 적지 않은 기쁨이었지요.

저는 어버이를 일찍 여의었습니다. 막내인 탓도 없지 않지만 부모님이 보다 일찍 세상을 뜨셨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를,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었으니까요. 따라서 부모님의 정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결혼을 할 즈음 아내 될 사람은 양 부모님이 다 계셨습니다. 부모 없는 저에게 그것은 결혼의 좋은 조건이 되었습니다. 아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저의 부모님과 진배없는 분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내용으로 점수를 따서 결혼 승낙을 받아낼 수 있었으니까요. 그분들을 처음 뵙는 자리에서 저는 대뜸 이렇게 말씀 드렸습니다.

"앞으로 두 분을 친 부모처럼 생각하고 잘 모시겠습니다.“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사위로 맞은 그분들에게 감사할 일이지요. 저는 '부모처럼 모시겠다'는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렇지만 그분들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내리사랑이 이런 것인가 싶었습니다.

두 분이 주신 사랑이 그렇게 길지 못했습니다. 장모되시는 이 권사님이 제가 결혼한 지 7년 만에 돌아가셨으니까요. 참으로 슬펐습니다. 장모님의 작정기도로 저는 목회의 길을 들어설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장모님 장례를 치를 때 조문객을 맞으면서 저는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문상객들이 저를 위로해 줄 정도로요. 뒤에서 속삭이는 소리들이 들렸습니다. 둘째 사위가 장모 사랑을 많이 받았나 봐, 분명 어릴 때 친 부모를 여의었을 꺼야....

친부모와 처부모 네 분 중 장인어른이 유일한 부모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제게 스승처럼, 선후배처럼 또 가끔은 동지가 되기도 하고, 친구가 될 때도 있었습니다. 신앙에 있어서는 스승과도 같은 분이었습니다. 삶에 있어서는 인생의 대 선배이십니다.

세상을 보는 눈은 동지를 연상할 정도로 비슷했습니다. 시조시인이신 당신이 쓴 시를 두고 대화할 땐 친구와도 같은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희(古稀) 가까이 되어 시작(詩作)을 하셨음에도 네 권의 시집을 상재하는 열정을 장인어른은 보이셨습니다.

그런 장인어른이 지난 달 27일 갑자기 세상을 뜨셨습니다. 정말 '갑자기'입니다. 119 구급차로 병원으로 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고속도로를 달려 문병을 가던 중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너무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정신이 혼몽했습니다. 

따져보니 어버이날을 열흘 앞둔 날이었습니다. 어버이의 짐을 혼자 지시고 지금까지 잘 버텨오셨는데... 제겐 밤중에 맞은 날벼락이었습니다. 이순(耳順)과 고희의 중간쯤에 와 있는 나이지만 '완전한' 고아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어버이날과의 관계성이 없어져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부모님 없이 맞는 어버이날은 슬플 수밖에 없습니다. 제겐 마지막 어버이이신 장인어른의 귀천(歸天)으로 더 슬픈 어버이날을 맞이합니다. 장인어른의 장례식을 떠올립니다. 슬픔 중에도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셔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코로나19가 잦아드는 때라곤 하지만 경향각지에서 장례식장을 찾아 손잡아 주셨습니다.

부고(訃告)를 널리 내지 않았음에도 조화(弔花)로 또 조전(弔電)으로, 부의(賻儀)로 함께 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더불어 함께 사는 의미를 다시 새기고 다짐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은 결코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명재 목사(본 신문 발행인, Ph. D)

글을 쓰고 있는 중에 객지 생활하는 아이들에게서 전화가 들어오는군요. "엄마, 아빠 어버이날 축하드려요. 못 내려 가 죄송해요." 이제 받기만 하는 어버이날이 아니라 사랑을 주는 어버이날을 생각할 때입니다. 세월의 법칙인 줄 알면서도 제겐 어색하기만 합니다. 올해 어버이날은 여느 때와는 다르게 다가오는 군요.

이명재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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