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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익의 환경칼럼] '재난 공동체' 이야기장성익(작가, 환경과생명연구소 소장)
장성익 | 승인 2020.03.05 17:42

지난 2003년 10월, 대서양에서 발생한 대형 태풍이 캐나다 동쪽 끝에 있는 핼리팩스라는 도시를 강타한 적이 있다. 한순간에 도시 전체가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도시 기능이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고, 주민들의 일상생활도 엉망진창으로 망가지고 말았다. 그런데 그 전쟁터나 다름없는 곳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공포와 불안에 휩싸이면서도 혼란의 아수라장에 빠지지 않았다. 자기만 살겠다고 이기적으로 행동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모두 집 밖으로 나와 서로 이야기 나누고, 위로와 격려의 안부 인사를 건네고, 즉석에서 급식소를 만들고, 노인과 아이들을 보살폈다.

그들은 이전에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재난이 닥치자 새롭게 우정과 연대의 관계를 맺으며 아는 사이, 서로 돕고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들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길거리 파티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모두가 동시에 밖에 나와 있었어요.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도 서로를 보며 행복감을 느꼈죠.”

고통과 절망, 두려움을 함께 겪으면서 이전에는 뿔뿔이 흩어져 섬처럼 단절돼 있던 ‘개인’들이 비로소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폐허를 딛고 거뜬히 재난을 이겨낼 수 있었다.

보통 태풍, 지진, 홍수, 가뭄, 화산 폭발 같은 큰 재난이 닥치면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사람들이 이성을 잃은 채 이기적으로 돌변하고, 자기만 살아남으려는 생존 본능에 사로잡혀 흥분과 공포에 빠질 거라고 말이다. 재난 상황에서는 폭력, 약탈, 살인, 강도, 절도, 방화 같은 것들이 판치리라는 고정관념이 널리 퍼져 있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이는 물론 전적으로 틀린 생각이 아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 2005년 8월 미국 남부의 뉴올리언스에 초대형 태풍 카트리나가 들이닥쳤을 때를 하나의 보기로 꼽을 수 있다. 당시 제방이 무너져 도시의 80퍼센트가 물에 잠기는 바람에 한순간에 도시 전체가 폐허로 변해버렸다. 그 결과 사망자와 실종자가 2500여 명에 이르렀고, 재난을 피해 집을 떠난 사람이 무려 100만 명이 넘었다.

그런데 이 도시에서는 핼리팩스와는 달리 약탈과 폭력과 살인과 파괴 행위가 난무했다. 당시 많은 언론은 이것을 이 도시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흑인들이 저지른 짓이라고 몰아갔다. 물론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어느 정도는 과장이자 헛소문이기도 했다.

당시 사망자와 피해자의 절대 다수는 흑인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가난했던 탓에 집값과 임대료가 싼 낮은 지역의 빈민가에 몰려 살고 있었다. 그 당연한 결과로 바닷물이 밀어닥치자 가장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복구 작업 또한 흑인 거주 지역에서는 빨리 이루어지지 않았다. 피해가 가장 컸음에도 말이다. 2005년의 카트리나 대참사는 진실과 거짓이 어지럽게 뒤섞이면서, 인종 차별과 빈부 격차로 얼룩진 미국의 민낯을 날것으로 보여주었다.

1977년 7월 13일 밤 미국 뉴욕에서 인근 발전소에 벼락이 떨어지는 바람에 전기가 끊기는 정전 사고가 일어났을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25시간 동안 뉴욕시 거의 전역에 전기가 끊겼다. 그러자 그 칠흑 같은 어둠을 틈타 밤새 뉴욕 시내 상점 1700곳이 약탈을 당했고 곳곳에서 화재 사고가 나기도 했다. 하룻밤 사이에 경찰에 체포된 사람만 3000명이 넘었다. 그야말로 ‘공포의 밤’이었다.

하지만 재난 전문가들은, 수많은 재난 사례를 실제로 들여다보면 이런 경우는 뜻밖에도 그리 많지 않다고 강조한다. 재난이 닥쳤을 때 기꺼이 낯선 타인에게 물과 음식과 구호 물품을 전해주고, 이웃을 구조하거나 대피시키고, 위험한 곳에 고립된 사람들을 구하러 가고, 자기 집을 숙소로 제공하고, 재건과 복구 활동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우리는 어렵잖게 접할 수 있다. 이른바 ‘재난 공동체’가 탄생하는 것이다.

핼리팩스 사례뿐만이 아니다. 이를테면, 지난 2004년 남아시아 일대를 초토화시킨 엄청난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사망자만 수십만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폭동이나 약탈 같은 건 없었다. 1995년에 50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낳은 일본 고베 대지진 때도 수많은 사람이 서로 돕고 배려하고 협동하는 미덕을 발휘한 덕분에 피해와 혼란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복구 작업도 아주 빨리 끝낼 수 있었다.

물론 재난은 끔찍하고 슬픈 비극이다. 아무리 좋은 얘기를 갖다 붙인다 해도 겪지 않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재난 속에서, 그리고 재난과 더불어, 적지 않은 사람이 불행해지고 추해지기보다는 그 반대로 더 풍요로워지고 아름다워지기도 한다. 적어도 ‘인간다운 삶’이라는 측면에서는 말이다.

고난 속에서 그들은 개인의 욕심과 이기심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서로 돕고 보살피고 나누었다. 고난을 함께 겪고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우정과 연대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고 또 그것을 실천했다.

장성익(작가, 환경과생명연구소 소장)

재난은 그저 불행한 비극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잠재돼 있는 놀라운 능력을 드러내는 뜻밖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 능력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우리 모두가 인간답게 살기를 원하며 우정과 연대를 갈망하는 존재라는 사실로부터 비롯한다. 혹독한 재난이나 위기 속에서도 인간은 얼마든지 위대해질 수 있는 존재다.

장성익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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