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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일 교수의 생활산책(22) - 혜존, 혜람, 그리고 혜감문정일(목원대 명예교수, 수필가)
문정일 | 승인 2020.02.14 07:10
문정일(목원대 명예교수, 수필가)

자기가 지은 저서를 친지에게 선물하면서 상대편의 이름과 함께 쓰는 한문 투의 용어가 ‘혜존(惠存), 혜람(惠覽), 또는 혜감(惠鑑)’이다. 예컨대 책을 받는 사람이 ‘홍길동 교수’일 경우에는 “洪吉童敎授 惠存”으로 표기하는 것이다. 예전 우리 선배들은 위에 예시한 것처럼 성함과 직함을 모두 한자로 쓰는 것을 예의로 여기던 관행이 있었으나 요즈음에는 한글로 ”홍길동교수 혜존“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60대 초반으로 약 10권의 저서를 낸 분이 있다. 그가 쓴 수필의 제목이 “혜존, 혜람, 그리고 혜감”이다. 아래의 내용은 그가 쓴 글의 대강의 요지이다.

“나는 다른 이의 저서를 받을 때 책의 안쪽 표지에 ”OOO혜존“으로 되어 있는 책은 여기저기 들춰만 볼 뿐, 그 내용을 읽지 않는다. 왜냐하면 "惠存”이라는 말의 뜻이 “받아 간직해 주시오”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 책은 책꽂이에 꽂아놓고 보관만 하면 되는 것이지 읽어달라는 말이 없으므로 읽게 되지 않는다. 그 대신 “惠覽(헤아려 보아 달라)”이나 “惠鑑(잘 보아 주십시오)”이라는 말은 “읽어 달라”는 뜻이 들어 있으므로 그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게 된다.“

‘혜존, 혜람, 혜감’의 뜻을 사전적인 의미로만 말하자면 일견 그분의 말이 맞는 듯하다. 그러나 그는 ‘혜존(惠存)’이라는 어휘가 갖는 행간(行間)에 숨어 있는 속뜻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책을 쓴 저자가 자신의 책을 친지에게 선물하면서 친히 적은 “혜존(받아 간직해 주시오)”이란 어휘 속에는 “대수로운 내용의 책이 아니니 받아 간직해 주시오”라는 저자의 ‘겸손’과 ‘겸양’의 뜻이 들어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혜존, 혜람, 혜감의 세 가지 단어는 글자의 차이는 있으나 그 각각의 단어가 가지고 있는 뜻은 결국 꼭 같은 것이다.

지식층으로 불리는 사람들 중에 어떤 이들은 “惠存, 惠覽, 惠鑑”이 모두 일본인들이 사용하던 이른 바, 왜색이 들어있는 어휘여서 모두 사용하지 말아야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사용하는 한자용어라고 해서 모두 바꿀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한국과 일본은 한자를 공유하는 나라여서 일반용어 중에 한국과 일본이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어휘는 수도 없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혼을 뒤흔들어놓으려는 불순한 의도가 내포된 말이 아니라면 함께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보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견해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평소에 조심해서 사용해야 하는 한자 용어 몇 가지를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우리는 『조선』이라는 국호를 흔히 『이씨조선(李氏朝鮮)』이라고 부른다. 이 말은 일본인들이 『조선』의 국호를 폄하하기 위해 《李氏가 다스린 나라 조선》 즉 ”이씨왕조”라는 뜻으로 조선의 역사를 축소하고 말살하려는 저의(底意)가 내포되어 있는 용어이다.

우리가 조심해서 말해야 하는 또 하나의 용어가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이다. 이 용어는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강제로 맺은 조약이므로 《조약(條約)》을 《늑약(勒約)》으로 고쳐서 『을사보호늑약(乙巳保護勒約)』으로 불러야 한다. 《조약(條約)》이란 “국가 간에 대등하게 협의하여 맺어진 약속”인 반면 《늑약(勒約)》은 “굴레 륵(勒), 맺을 約(약)”으로써 《굴레가 되는 약속》이라는 뜻이니 국가 간에 대등한 협의 하에 이뤄진 것이 아니고 “강제성과 치욕성이 내포되어 있는 약속”을 말한다. 대한제국시대인 을사년(乙巳年, 1905)에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하여 강제적으로 맺은 조약이므로 실상은 《조약》이 아니라 《늑약》이라는 용어가 맞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惠存(혜존), 惠覽(혜람), 惠鑑(혜감)”은 계속해서 사용해도 좋은 용어이지만 “이씨조선”은 “조선”으로, 그리고 “을사보호조약”은 “을사보호늑약”으로 고쳐서 사용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임을 알자. 우리도 그렇게 사용하고 우리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자. 이 작은 일이 우리 자녀들을 위한 반듯하고 소중한 역사교육이 되기 때문이다.

문정일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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