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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이세형의 박바가지
이세형 | 승인 2020.01.14 22:04

           박바가지

                     詩 / 이세형

태어나기 전 푸른 생이었던
액땜으로 보낸 타박의 나날

세상의 소통은
비운 마음에서
내 안의 우주를 보는 거 

모질게 버텨온
억겁의 세월
부서지고 깨지고 나서야 알았다 

삶이란 
그저 그런 아무 쓸모가 없는 거란 걸
그게 나 자신이라는 걸

* 겸양 속에 진실이 배태될 때가 많다. 이 시를 접하자 들려오는 소리가 바로 '겸양'이었다. 시인은 박바가지의 상징을 빌려와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빈 것은 많은 것으로 채울 수 있다. 물도, 쌀도, 그 어떤 먹거리도… 아니, 보석을 넣으면 보석 창고가 된다. 그러니 어떤 존재보다 위대하다. 그래서 시인은 세상과 나, 찰나와 억겁을 빈 내 마음과 우주로 연결시키고 있다. 힘겨웠던 탄생이 없었다면 삶의 이런 철리(哲理)를 미처 깨닫지 못했을 터. 부서지고 깨져버린 삶, 아무 쓸모없는 삶... 시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이 이런 것 아닌가. 단지 의식하지 못할 뿐... 그것을 깨닫는 자는 이미 우주만큼 성장해 있다. 생각과 삶이!(耳穆)

사진 = Daum 카페 '박으로 바가지 만들기' 염하나(만채농장 대표)

이세형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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