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복지국가연구센터는 사회정책연구회와 공동주최로, 2019년 10월 5일 예수대학교 사회복지학과의 배진희 교수를 초청하여, 홍대앞 쿠바왕에서 “저성장 고복지, 쿠바 패러독스의 비밀을 찾다”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배진희 교수는 연구년 기간 동안 쿠바에 머무르면서 저술한 저서 「거꾸로 가는 쿠바는 행복하다」를 바탕으로, 가난한 나라 쿠바가 펼치는 높은 수준의 복지와 원인에 대하여 강연하였다. 지정토론자로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김영순 교수가 참여하였다.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쿠바 유치원: 만 5세부터 유치원 교육은 의무이며 무상으로 제공된다.

쿠바는 정부 세출의 64%를 교육과 의료, 생활보장에 지출할 만큼 많은 부분을 국민복지에 투자한다(2014년 기준). 첫째, 쿠바 국민은 유치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대학까지 무상으로 교육서비스를 제공받는다. 중학교에서 70% 정도의 학생이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며, 이 중 85%가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교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으로만 진학이 가능하며, 가고 싶은 학과가 거주지역의 대학교에 없을 때에만 다른 대학교로의 입학이 가능하다.

인문계에 가지 못하더라도 학업을 그만두지 않고 직업·기술학교로 진학하여 학업을 지속한다. 이 과정에서 교육비와 학생들이 사용하는 학용품은 물론 예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악기 등도 모두 무료로 제공된다. 정부로부터 받은 교육서비스는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 의무이다. 군대를 가는 남성은 전공과 관련된 기관에 배치되어 2년 간 사회봉사를 해야 하며, 여성은 군 복무를 하지 않으므로 대학 졸업 후 3년 간 사회봉사를 한다. 대부분은 봉사 종료 후 해당 기관에 취업하므로 쿠바에는 대졸 실업자의 수가 많지 않다. 

쿠바의 전형적인 지역 진료소: 1층은 패밀리 닥터의 진료소, 2층은 의사 거주지, 3층은 간호사 거주지

둘째, 의료서비스는 ‘패밀리 닥터 제도‘를 바탕으로 보편적이고 접근 가능하며 통합적인 무료서비스를 지향한다. 지역공동체(policlinico)를 중심으로 하는 소규모 진료소(consultorio)에서 패밀리 닥터와 간호사, 그리고 오페라리오(operario)가 관할 지역 주민의 건강을 일선에서 돌보는 역할을 하는데, 이들은 1차 의료체계를 주요하게 담당한다. 콘술토리오의 방문이 어려운 주민을 위해서는 가정방문을 하여 건강을 돌본다.

특히, 임산부의 경우에는 출산 때까지 평균 15일에 한 번씩 의사를 만나야 하며, 임신 중 비타민과 소고기, 우유에서부터 출산 후 북유럽 국가에서 제공하는 것과 유사한 마더 박스를 제공한다.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백신 역시 모두 무료이며, 생후 6개월까지는 아이를 직접 양육할 수 있도록 유급 18주의 육아휴직을 법적으로 보장한다.

공원에서 체조하는 노인들 (위 좌측 사진), 요양원에서 발 관리 받는 노인 (위 우측 사진), 요양원 (하단 사진)

셋째, 쿠바 정부는 옷을 제외한 대부분의 생필품을 현물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은 물론 사회보장의 일환으로 장단기 연금급여(노령연금, 유족연금, 장애연금, 질병·사고 수당, 모성연금)를 제공함은 물론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부조 제도 또한 갖추고 있다. 현물서비스에는 기본적으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식품은 물론 주택 또한 무료로 제공한다.

노인을 위해서는 데이케어센터(카사 데 아부엘로서, caxa de abuelos)와 노인요양시설(오가르 데 안시아노스, hogar de ancianos)을 세워 사회복지사로 하여금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한다. 각 시설에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식사와 청소담당 노동자가 상주하고 있다. 다만, 노인시설은 1인당 월 사용료(약 24세우페~60세우페)를 지불해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 현장: 시의원의 의정보고회

이 외에도 쿠바는 자연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재난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것은 물론, 전염병 예방을 위해 방역사와 오페라리오가 하루에 25가구를 방문하여 방역시스템은 잘 갖추어져 있는지 등을 점검한다.

정치적으로 일당 독재 국가이지만 뿔뿌리 민주주의가 보장되어 있어 시의원 등을 자치적으로 선출하고, 피델 카스트로의 동상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우상화가 없으며, 일상생활에서 감시와 통제가 없는 전체주의와 거리가 먼 자유로운 사회이다. 치안 수준도 높고, 우리나라보다 성평등 지수가 월등히 높은 나라이기도 하다.   

쿠바 현지인 주택 (왼쪽)과 외국인 아파트 (오른 쪽)

그러나 가난한 나라 쿠바의 사회보장과 생활 수준은 높지 못하다. 교육은 무상이나, 시설이 열악해 컴퓨터 한 대를 여러 학생이 함께 사용하며 수업을 진행한다. 의료는 보편적으로 보장되나 의료시설과 약품이 부족해 청진기를 의사와 간호사가 함께 사용해야 할 때도 있다. 나라가 일자리를 마련해 주어 실업은 없으나 한달 임금이 우리돈으로 3~4만원에 불과하다.

국가가 주택을 무상으로 제공하나 주택수가 부족해 2~3가구가 한 집에서 공간을 나눠쓰는 경우도 발생하기도 한다. 식료품부터 기본적인 생활품은 동등하게 배급을 받으나 하루종일 줄을 서도 구하지 못할 때도 많다. 냉장시설이 부족해 섬나라 임에도 생선은 먹기가 힘들다. 도로 사정도 열악하고, 대중교통은 발달하지 못하였고, 전기는 정전에 시달리며, 상하수도 시설은 낙후되어 있다. 

상점 앞: 상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늘 줄 서 있는 주민들

자동차, 우마차와 자전거가 공존하는 고속도로

쿠바의 시장경제는 쿠바 페소를 바탕으로 하는 내국인과 태환 페소를 중심으로 하는 외국인 시장경제로 분리되어 있다. 보통 국민의 3~4만원 짜리 월급과 외국인을 상대로한 월 70만원 짜리 숙박시장이 공존하는 나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쿠바 국민들은 외국인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택시기사나 민박업 등의 자영업종을 선호하는 편이다. 

최고의 자영업으로 꼽히는 쿠바의 택시: 같은 방향 사람들이 합승을 한다

이렇듯 물자도 부족하고 가난한 나라이지만,  쿠바는 국민들을 위한 보편주의적인 복지에 큰 힘을 쏟고 있다. 이런 고복지가 지속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배진희 교수는 혁명의 역사가 남긴 주민참여 기반의 공동체를 제시하였다. 미국의 봉쇄정책에 맞서, 혁명 정부를 세운 쿠바는 카를로스 마누엘 데 세스페데스, 호세 마르티, 피델 카를로스, 체 게바라로 이어진 이념적·정치적 지도자를 중심으로, 혁명의 정신을 이어가는 내부 결속을 다져왔다.

쿠바의 혁명정신은 ‘① 모두가 공평하게 나눠야 한다, ② 차별하지 않는다, 그리고 ③ 앎을 통해 자유를 얻는다’로 축약된다. 이는 혁명수호위원회와 쿠바여성연맹을 통해 확산·유지되었는데, 위원회(연맹)를 중심으로 선거구를 구성하여 자발적 참여와 추천에 의해 무급 의원을 선출하는 한편, 이들을 통해 주민의 필요에 맞춘 주요정책들을 결정함으로써 혁명정신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의료기기는 부족해도 패밀리 닥터와 함께 사회복지사(트라바하도르 소시알, trabajador social)들의 적극적인 사례관리 활동 또한 높은 수준의 복지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임을 언급하였다. 즉, 물자부족과 결핍의 공간을 이웃과 공동체가 채워나가는, 인간을 바탕에 둔 협력의 거버넌스가 쿠바의 복지서비스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쿠바 독립의 아버지 카를로스 마누엘 데 세스페데스: “모든 쿠바인이 나의 아들이다”

발표 후 이어진 토론에서 지정토론자로 나선 김영순 교수는 풀뿌리 공동체에 기반한 쿠바의 사회적 자본이 쿠바가 경제적으로 고립된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고복지를  유지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이며, 그 자체로 큰 의미를 지닌다고 언급하였다. 그러나 향후 복지국가로서의 쿠바가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에 대하여 의문을 제시하였다.  발표자가 말한대로 콩 한 쪽도 나누어 먹어야 하는 국민 최저생계선(national minimum)이 지나치게 낮은 상황에서 가난한 평등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전체 토론 시간에는 성평등도(남녀평등 29위)가 높은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육아와 가사에서 여전히 여성해방이 이루어지지 못한 점, 성(性)에 개방적인 문화와 자유화 아래 나이든 유럽 남성과 젊은 쿠바 여성 사이에서 발생하는 성의 권력관계 문제 등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특히, 자영업의 비중이 높아지며 소득격차가 점차 크게  벌어지는 문제와  쿠바가 과연 자본주의로의 체제전환 압력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함께 나누었다. 

그러나 쿠바인들은 복지란 자본주의의 교정제로서 기능한다는 믿음 아래,  “자본주의를 이용해 사회주의를 지킨다”고 말하고 있다(쿠바의 경제전문가 후아킨 인판테 우가르데). 지구상 유일한 ‘가난하지만 자유로운 사회주의 복지국가’, 쿠바의 미래가 주목되는 이유이다. 

편집부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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