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 '우리 민족(동이족)은 밤낮 음주가무를 즐겼다(晝夜飮酒歌舞)'는 내용이 나온다. 놀이문화를 즐겼다는 말이다. 가무(歌舞)에서 무(舞)는 춤, 무용뿐 아니라 오늘날 몸짓으로 하는 예술행위 모두를 포괄한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사회적’이란 말 안에는 연희적, 즉 지니고 있는 감정을 표출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재미있게 놀고 싶어 하는 욕구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심성이다.

행위 예술이 진화하여 연기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배우)과 보는 관객으로 나뉘었다. 이때 관객은 배우를 통해 대리 표현을 하며 동시에 만족을 얻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연극이 이렇게 분화되기 전에는 배우가 곧 관객이었고 또 관객이 배우였다.

오늘 귀한 연극을 한 편 보았다. 전문 극단에서 올린 것이 아니다. 지역 주민들이 모여 스스로 연습해서 연극으로 올리기까지 한 작품이다. 그것도 김천 외곽의 한 면에서 이루어진 연극이어서 그 의미가 컸다. 배우와 관객이 혼연일체(渾然一體)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민이 만든 행복 빨래터'가 연극의 제목이다. 여기에 이 연극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연극의 주체는 주민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주 무대가 빨래터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과학문명의 발달로 빨래터가 사라졌지만 지난 세기까지만 해도 빨래터는 서민 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연극에서 주요 소재로 삼고 있듯 희로애락(喜怒哀樂)의 필터링 역할을 한 것이 빨래터였다. 사내장부들이 마을 사랑방에 모여 소통을 했듯이 아낙들은 빨래터에서 자기 마을뿐 아니라 이웃 마을의 소식까지 중계한다. 집단 여론의 진원지이자 상한 심령의 치유 공간이기도 했다.

이곳 ‘행복 빨래터’에서 난봉꾼 점석이가 바람 피운 이야기에 분노하고, 동네 청년의 고등고시 합격 소식을 내 일처럼 기뻐한다. 시어머니에게 구박 받는 아낙을 위로하고…. ‘행복’이란 수식어가 빨래터 앞에 붙었지만, 이런 서민들의 일상의 총합이 행복이다.

작품의 우열을 논하는 건 적어도 이 연극에서는 사치에 속한다. 작품 이전의 중요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등장하는 배우들이 행복해하고, 보는 관객들이 좋아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하면 '작품 이전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것이 되리라. 정말 그랬다. 예술에서 물아일체(物我一體)는 중요한 요소이다.

연극을 해 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제대로 된 연극을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배우가 되었다. 늘 만나 인정 나누던 이웃집 사람들이 배우가 되었단다.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보러 가야지. 연극 관람은 문화를 누리는 것이 된다는데 기회를 놓칠 순 없지. 그렇게 해서 모인 주민들이 1백 명을 넘었다. 

40분가량의 단막극 스토리는 단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속에는 오늘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의식 구조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남존여비 사상, 부(富)의 오용, 삶의 타락, 비슷한 여성끼리 갖고 있는 동병상련(同病相憐), 빨래터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여론의 사실성에 이르기까지... .

도시화가 많이 진전되었다고는 하지만 농촌에는 아직도 구습의 잔재가 남아 있다. 이 연극은 그것을 날카롭게 파고들어가서 관객들의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마치 판소리에서 추임새를 넣듯 관객들이 맞춰주는 장단이 '주민이 만든 연극 행복 빨래터'의 진가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연극은 경상북도의 주민자치위원회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추진된 주민자치 문화프로그램의 일환이다. 2백 여 만원의 사업 지원금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것으로는 태부족이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재능 및 물질 기부를 했다. 소품에서부터 먹거리에 이르기까지….

면 단위면 농촌에 속한다. 농촌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스스로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는 것 자체로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 변방 사람들도 의기투합하면 문화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 그 문화 창출은 출발부터 과정을 거쳐 결과에 이르기까지 단결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것, 예술이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가 행하고 누릴 수 있다는 것 등을 이 연극은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부언하고 싶은 것이 있다. 면을 대표하는 행정 책임자(면장)가 무엇을 생각하고 추구하는가에 따라 주민의 행복 질이 달라진다는 것. 지금까지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외형), 물질적인 것에 집착한 나머지 정신적인 것을 홀대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정신적 풍요를 생각할 때이다. 

연극 '행복 빨래터'가 무대에 올려지기까지 구성면 이삼근 면장의 공이 적지 않다. 그는 이 연극 대본을 직접 창작하기도 했다. 지역 행정 책임자의 의지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증명했다. 덧붙여 연출을 맡아 수고한 김천연극협회 삼산이수 노하룡 대표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명재 목사(본 신문 발행인, Ph. D)

이런 소규모 연극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 좋겠다. 내면의 세계를 일반화해서 표출하는 것으로 연극만한 게 없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연습하며 좋은 연극으로 승화시킨 배우와 스탭 그리고 후원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기왕에 첫 발을 굳세게 내디뎠으니 주민연극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명재  lmj2284@hanmail.net

이명재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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