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실망스러울 수 있을까. 그의 이력으로 볼 때 둘 중 하나라고 난 생각했다. 찻잔 속의 태풍이든지 아니면 정치의 수준을 더 떨어뜨리든지. 솔직히 전자의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정치 신인이 거친 동네에서 자신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측이 빗나갔다. 빗나가도 한참 빗나가고 말았다. 공안검사 출신으로 법무부 장관에 국무총리까지 승승장구한 그에게서 '난동'의 기술이 숨어 있을지 몰랐다. 얌전했던 고위 관료의 조폭화라고나 할까.

그의 관료 여정을 승승장구(乘勝長驅)라고 했는데, 그가 모시던 박근혜가 탄핵 당해 물러감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의 자리까지 올랐으니 ‘승승장구’라는 말이 전혀 지나치지 않다. 권력의 정점을 찍은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주체적 의지로 비단길을 걸었다고 보지 않았다.

그는 한때 박근혜 아바타란 말을 들었다. 박근혜의 생각을 꿰뚫고 알아서 긴 그를 두고 비아냥대며 한 말이다. 그때 그에게서 난동의 기미를 눈치 채고 있던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난 거의 없었다고 확신한다. 그런 사람이었다.

국민 앞에 무릎을 꿇고 석고대죄(席藁待罪)한 자한당에 구원투수로 들어간 사람이 황교안이다. 그를 당 대표로 받아들이면서 그가 프로 정치인 뺨칠 정도로 정치판을 헤집고 다닐 줄은 아무도 몰랐다. 어제 국회의사당에서의 모습은 난동의 우두머리 바로 그것이었다.

원외 인사인 그가 장외집회, 삭발, 단식을 반복한 것은 그렇다고 치자. 원외의 서러움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그의 심정에 동의는 하지 않더라도 이해는 하려고 했다. 더욱이 지금 황교안은 당내 기반이 몹시 취약하지 않은가. 정치는 아메바와 같아서 약한 고리를 찾아 들게 마련이다.

그런데 오늘(12월 16일) 나이 먹은 사람들을 이끌고 국회에 들어가서 난동을 피운 것은 어떤 경우의 수로도 이해 불가이다. 국회를 민의의 전당이라고 한다. 국회의사당 내의 난동은 국민 앞에 난동을 부린 것과 같다. 문 대통령이 ‘물재인’이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법대로 엄정 조치해야 한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앞에서 '공수처법 ·선거법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자유한국당의 '공수처법 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중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해 '국회청사 출입제한조치'가 발동됐다. 2019.12.16/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마치 해방정국에서의 서북청년단과 땃벌떼를 연상하게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이들은 온갖 악행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한 제1공화국의 이들과 맞닿아 있다. 황교안이 근본주의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는 전도사이고 그가 주도하는 집회엔 극우 기독교 신자들이 그 중심에 있다.

태극기로도 부족해 성조기까지 흔들며 문재인 하야를 외치는 그들은 과연 어느 시대 사람들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마치 6.25 전쟁 직후 냉전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을 때의 의식 구조를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세월은 지났으되 뇌는 고착되어 있는….

더 가관인 것은 이스라엘 국기까지 가지고 나와 국회의사당에서 집단 난동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의 이스라엘 출신이어서 돌출한 행동 같은데, 그것과 이스라엘 국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무식의 소치가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은 기독교 국가가 아니다. 이스라엘 국민의 80%가 유대교인이요, 17%가 무슬림이다. 기독교 인구는 전체의 2%밖에 안 된다. 이런 데도 한국의 기독교 우파는 문재인 하야를 외치며 이스라엘 국기를 흔들어 대고 있다. 한 편의 코메디다.

공수처 설치를 반대하고 선거법 개정을 반대하고 패스트트랙 폐기를 주장할 수는 있다. 지금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절차와 방식이 정당해야 한다. 자기들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극렬 지지자들을 앞세워 난동을 부리는 것은 시대착오적 행위이다. 역사를 퇴행시키는 짓이다.

국정농단으로 탄핵당한 박근혜 때의 촛불집회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백만 인파가 모여 탄핵을 외쳤지만 단 한 건의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선진국들이 감탄할 정도로 성숙한 민도를 보여주었다. 황교안을 비롯한 극우 세력은 이 점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황교안이 명확하게 할 것이 있다. 서북청년단 모습으로 반짝 난동을 부리다가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제1 야당 지도자로서 체면치레를 하다가 물러날 것인가. 결국 내년 4.15 총선이 모든 것을 웅변으로 말해 줄 것이다. 극소수의 난동꾼들 가지고 여의도를 점령할 수는 없다.

이명재 목사(본 신문 발행인, Ph. D)

아무리 정치 신인이라고 해도 이 정도의 수는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극단은 위험하다. 중국의 자사(子思)가 주장한 중용지도(中庸之道)를 생각해야 하고, 독일의 철학자 헤겔의 정-반-합의 원리를 깊이 숙고할 때이다. 무엇보다도 민주주의는 대화와 타협의 시스템이라는 것쯤은 황이 알아야 한다.

발행인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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