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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 - 사회 관습에 일침을 놓다
이명재 | 승인 2019.11.08 17:27

 사회 초년생인 딸아이가 관람을 권했다. 아직 부모보다 사유(思惟)의 세계가 좁다고 생각하는 딸이 자신 있게 권한 데는 이유가 없지 않을 터이다. 단풍의 계절을 맞아 원근 각처의 산을 찾는 시절에 영화관을 향하는 마음이 조금은 야릇했다. 그것도 밤 시간에 말이다.

'82년생 김지영' 조남주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해서 사람들이 더 마음을 두는 것 같았다. 조남주의 소설은 밀리언셀러로 사회에 적지 않은 파문을 던졌다. 페미니즘 소설로 읽혀졌는데, 여권 신장이 시대 변화의 한 흐름이라면 수용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삼종지도(三從之道)는 지난 세기의 유물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 폐습이 곳곳에 남아 있다. 여자이기 때문에 당하는 불편과 고통을 이 영화는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 고통이 개인의 인성 차원을 넘어 사회의 인습에 기인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바뀌어야 한다. 사회 각 부문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일어야 한다.

조남진 작가는 소설로 그리고 김도영 감독은 영화로 이 문제를 제기하며 사람들의 정신을 일깨우고 있다. 사회의 관습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남성 중심의 전통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작위적이며 특별한 것을 일반화 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 점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지구 위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문제는 양성 평등의 관점에서 보아야지 늘 그래왔던 것처럼 남성 우위의 입장에서 재단해서는 안 된다. 남녀는 상보적 관계로 지음 받았다. 따라서 협력관계가 되어야 한다.

이 영화가 2,30대의 젊은 층이 환호하며 찾는 데에서도 메시지를 포착할 수 있다. 신진대사(新陳代謝)가 잘 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신진대사는 '신(新)'에 방점을 두고 이루어지는 사회 현상이다. 양성평등을 향한 여권 신장은 새로운 세대 즉 젊은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봄바람영화사의 창립 작품이라고 한다.  단편 영화 감독의 경험밖에 없는 김지영 입장에서도 첫 장편 영화가 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봉 5일 만에 100만, 개봉 10일 만에 200만 관객을 흡입하는 흥행을 기록했다. 대단한 성공 가도(街道)다.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여러 갈래의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중 가장 공감을 불러일으킨 요소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 즉 근친성이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도구 중 하나가 '빙의(憑依)'이다. 내가 주체가 될 수 있고 대상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 지영에게 친정 엄마가 언니가 또 대학시절 남자 선배의 영혼이 옮겨 붙었다. 순간 다른 사람이 되지만 거기서 흘러나온 말은 사실 지영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던 것이었다. 가까운 사람을 빌려 잠재의식을 토로하는 것이다. 그 최전선이 관습이라는 이름의 양성 불평등이다.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아무래도 친정 엄마가 딸인 지영의 빙의망상(憑依妄想) 소식을 접하고 급히 가서 딸과 상면하는 장면이다. 자식에게 제대로 해 주지 못해 이렇게 되었다는 부모로서의 자책감을 울부짖음으로 대변할 때 관객들은 두 눈을 촉촉하게 적시게 된다.

따지고 보면 엄마도 지영 이상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왔다. 일찍이 청계천 봉제공장에서 일하면서 사회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이 영화엔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지만 청계천 뚝방을 중심으로 당시 영세 봉제공장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이 일한 곳이다.

시대가 흐르면 사회가 따라 변해야 하고, 사회가 변하면 사람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 능력 있는 여성이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가정의 울타리에 갇힌다는 것은 전근대적인 시대상이다. 영화에서 지영도 딸 돌보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다시 직장 생활을 하고 싶어 한다.

허나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때 남편 대현이 1년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제안한다. 아내가 건강해질 수만 있다면 젊은 남편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부산의 어머니(지영의 시어머니)가 강력 반대한다. 경제성과 효율적인 면에서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다.

가부장적 사고가 지배하는 구세대와 양성평등을 바라는 신세대의 갈등 양상이다. 영화에서는 이것의 치열한 대립과 해결 없이 지영이 나가기로 한 직장을 포기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자기 생각을 펴보지도 못하고 늘 눌린 삶을 살아온 지영이인데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빙의도 아마 이런 삶에서 기인한 것이지 싶다.

앞에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빙의 증상을 듣고 딸네 집에 달려와 모녀가 상봉하는 장면을 들었다. 하지만 통쾌하기로는 이것보다 더한 장면이 있어 인상적이다. 커피숍에서 냉커피를 받아 들고 딸에게 눈을 파는 사이 커피를 바닥에 쏟는 일이 발생했다. 이것을 보고 곁에 있던 청춘 남녀 일행이 지영에게 '맘충'이라며 비아냥댄다.

어디에서 그런 강력한 힘이 솟아났을까. "저기요. 제가 왜 맘충 벌레죠? 저에 대해 뭘 안다고 함부로 말하세요... 댁끼리 한 말이면 들리지 않게 하든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고 자기 기분만 생각하는 이기적 젊은이들에게 주는 일침이다. 

아내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남편 대현의 따뜻함과 성실함. 아내의 병이 더 도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정신과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게 하는 데에도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진정 연약한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였다. 지영에게는 35만 원의 상담료가 걸음을 더디게 했고….

꿈 많던 소녀, 세계 여행을 하고 싶었던 지영, 소설가가 되기 위해 대학 국문과를 택한 김지영이었다. 능력 부족이 아니라 사회의 관습이 그녀의 길을 방해했다면 사회가 일정 부분 보상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 보상은 다름 아닌 양성 평등이 될 것이다.

영화는 이렇게 대미를 장식한다. 한 여성 월간지에 투고한 글을 지영이 펼치며 행복해 하는 장면. 모르겠다. 억눌림에서 해방되어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는 세상이 도래했는지…. 그렇게 상상하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이 영화는 사회 관습에 일침을 놓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글/이명재 발행인).

이명재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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