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일 교수의 생활산책(4) - 본향을 사모하는 마음

문정일(목원대 명예교수, 수필가)

내가 다니던 대학의 교가에는 ‘마음의 고향’이라는 노랫말이 나온다. 원래 ‘고향’이라는 어휘는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신비로운 힘을 지니고 있어서 모교의 교가를 부르다가 ‘마음의 고향’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웬일인지 코끝이 찡함을 느끼게 된다. ‘본향’이란 말도 같은 뜻을 가진 어휘이다. 자신이 태어나서 자라난 곳이 ‘고향’이라면, 자기 가문의 시조(始祖)가 태어난 곳, 즉 ‘본디의 고향’이 바로 ‘본향’이고 ‘본토’이다.

구약성서 창세기(12장)에는 아브라함의 역사가 나온다. 아브라함이 75세가 되던 해에 여호와로부터 “그의 본토 ‘갈대아 우르’를 떠나 여호와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이 있다. ‘여우’가 죽을 때, 그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로 향하고 죽는다는 뜻이니 고향을 잊지 못하는 마음을 말한다. 동물이 그럴진대 하물며 사람이랴! 어느 누구든 조상대대로 살던 본향을 쉽게 떠날 수는 없는 법이다. 더구나 인생의 황혼인 일흔 다섯이 된 노인에게는 더 이상 일러 무엇 하리오? 오늘 현재, 내 나이가 만으로 일흔 다섯이다. 아브라함이 본토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던 바로 그 나이여서 당시 아브라함의 심정을 나 자신에게 주어진 숙제인양 진지한 마음으로 헤아려보게 된다.

여호와의 음성을 들은 아브라함에게도 심한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나서 아직까지의 삶과는 180도 다른 믿음의 인생길을 걸어가기 시작한다. 그가 그 후 25년간, 그러니까 그가 100세가 되던 때까지 그의 믿음은 미숙하였고 흔들림과 실수도 있었으며 절망의 순간도 있었다. 그가 여호와의 뜻보다는 자신의 의지와 지혜를 앞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와는 신실하셔서 그를 오랫동안 참고 기다려 주심을 본다.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가 되던 해에 여호와가 약속해 주신 대로 그는 아들 이삭을 얻는다. 그는 약속의 자녀 이삭을 얻고 나서부터 성숙한 믿음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아브라함이 137세, 그의 아들 이삭이 37세가 되던 해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127세로 세상을 떠나기 까지 아브라함은 더없이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다시 3년 후, 이삭이 40살이 되어 리브가를 아내로 맞는다. 아브라함은 다시 35년을 더 살고 175세에 눈을 감는다.

아브라함이 175세에 죽어 그의 아내가 묻혀있는 막벨라 굴에 합장됨으로써 그가 그의 열조(列祖)에게로 돌아갔음을 성경은 증언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열조에게로 돌아갔다는 말은 그가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합류했음을 의미한다. 이 사실은 그가 역사(歷史)를 초월하여 역사(役事)하시는 여호와의 구원의 섭리 안에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구약시대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아득한 미래에 나타날 메시아의 역사를 믿고 있었다. 이렇듯, 믿음의 환상을 통해 후학들에게 그리고 자녀들에게 믿음을 계승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믿음을 가진 자가 미래의 주인공이 되며 또한 믿음을 가진 자가 천국의 주인공이 된다. 미래의 본향을 사모하는 마음이 믿음을 가진 자의 특징이고 특권이다. 여호와는 믿음을 통해서만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왕년에 세상이 알아주는 번듯한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은퇴하고 나서 아무도 그를 알아주는 이 없는 상태로 외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아브라함처럼 고통과 기쁨을 함께하던 조강지처를 먼저 보내고 혼자서 살아간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미래의 비전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가 죽으셨으나 죽으신 것이 아닌 것처럼, 아브라함이 죽었으나 죽은 것이 아니다. 인간을 향한 여호와의 언약이 폐기(廢棄)되지 않고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 뒤의 본향’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사람만이 이 세상에서도 신실한 삶의 여정을 걸어 갈 수가 있을 것이다.

문정일 교수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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