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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염운옥의 『낙인 찍힌 몸』권은혜 (서강대학교 강사, 철학박사)
편집부 | 승인 2019.09.29 12:41
염운옥 지음 『낙인 찍힌 몸』(돌베개, 2019년 9월 출판)

타자의 몸에 각인된 인종주의의 역사읽기

“그렇다면 인종주의가 낙인찍어온 몸에서 벗어나 자율적인 몸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중략) 우선 일상의 차원에서 나와 다른 사람을 규정짓고 판단하는 말에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중략) 타자의 몸에 덧씌워진 고정관념을 기꺼이 내려놓고 귀 기울여 들으려는 태도야말로 주체와 타자, 나와 낯선 이를 이어주는 끈이 된다.”(379p.) 
 
이 책은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낙인찍히고 배제당한 ‘인종화된 몸’의 역사”를 다룬다.(7p.) 저자는 인종주의를 ‘속성’에 근거해 타자, 즉 비유럽인의 가치를 규정하는 근대 서양의 이데올로기라고 정의한다. 저자에게 인종주의는 타자의 ‘몸’에 관한 담론이다.  

이 책은 인종주의 이론의 시작점인 18세기 유럽에서 출발한다. 식물분류학으로 유명한 린네는 인류를 피부색에 따라 백색, 홍색, 갈색, 흑색의 4가지로 구별했다. 미학자 빙켈만은 고대 그리스문명을 서구 문명의 원류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고대 그리스인의 하얀 피부를 강조하며 채색된 상태이던 고대 그리스의 조각을 ‘표백’했다.

해부학자 캄퍼르와 의학교수 블루멘바흐는 두개골의 형태를 분석한 후 백인이 가장 이상적인 두개골을 지녔다고 결론내렸다. 피부색 및 골상학에 따른 인종분류는 19세기 들어 과학적 사실로 안착되며 비백인의 열등성을 설명해 주는 이론으로 확대된다.  

이 책의 상당부분은 서구 인종주의 담론에 의해 열등한 인종으로 재단된 흑인, 유대인, 그리고 무슬림을 다루고 있다. 흑인의 인종화는 아프리카 노예무역과 노예제를 배경으로 시작되었다. 이 제도들은 19세기에 폐지되었지만 흑인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은 여전히 극복되지 않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특히 흑인 여성의 신체는 인종, 젠더, 계급의 3중 억압이 교차하는 장소였다. 이 책은 19세기 흑인 노예 여성 중 기록이 남아있는 사르키 바트만, 메리 프린스, 서저너 트루스의 이야기를 상세히 소개한다. 서구의 인종주의는 이들의 신체에서 인간성과 여성성을 말살하려 했지만 이들은 타자화된 흑인여성의 몸으로 남길 거부하고 온전한 개인으로 자립하려 했다.  

유대인도 서구 인종주의에 의해 타자화된 사람들이다. 유대인이 유럽인과 다른 점은 종교적 차이였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중반 이후 유럽의 인종주의 담론은 고대 이래로 내려온 유대인의 신체에 대한 고정관념들—남성의 할례, 유대인 남성의 월경설—을 끌어 모아 유대인의 열등성을 강조하는 인종적 반유대주의를 주조했다.

20세기 나치 독일에서 유대인은 독일 민족의 순수성을 타락시키는 존재로 낙인찍힌다. 나치의 유대인 분리정책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럽계 유대인의 절멸정책—홀로코스트—로 발전했다. 홀로코스트는 역사적으로 단죄되었지만 나치 인종주의의 핵심인 백인 우월주의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전후 유럽계 유대인이 건설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과 흑인 유대인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백인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려 한다.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디씨의 국방부 건물이 알카에다의 공격을 받은 이후로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집단의 활동은 무슬림에 대한 서구 백인들의 내재된 공포를 정당화시켰다. 중동지역의 정치적 불안으로 인해 무슬림 난민의 수가 증가하자 유럽인들 사이에서 이슬람포비아는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무슬림을 잠재적 테러범으로 보는 이슬람포비아는 무슬림을 백인 유럽문명의 적으로 보는 오래된 인식에서 온 것이다. 이슬람포비아의 주된 표적은 베일을 쓴 무슬림 여성이다. 서양의 백인들은 베일쓰기를 이슬람 사회의 여성차별적 관습으로 규정했다. 저자는 서구 식민주의 시기 오리엔탈리즘에서 기원한 ‘베일’ 논쟁의 일방적 성격을 비판하며 베일을 쓰건 벗건 간에 그것은 무슬림 여성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한국인 역시 인종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진단한다. 한국인의 독특한 단일민족정서로 인해 비백인 외국인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 무슬림 난민은 일상적으로 인종차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결혼이주여성을 위한다는 ‘다문화정책’은 이들을 오히려 소외시킨다. 저자는 주류사회의 관용에 기대는 것이 다문화주의의 한계라고 지적하며 다문화주의와 함께 이주민의 인권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주민을 포함한 소수자들의 인권을 체계적으로 보장하려면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시급하다고 저자는 결론짓는다.  

저자가 소개하는 “인종화된 몸”들의 예들은 인종주의의 복잡한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전문가의 내공과 명료한 문장은 어렵고 무거운 주제에 접근하는 부담을 덜어준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인종주의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인종주의적 언어와 고정관념에 민감해지기, 소수자의 경험을 경청하기 등을 제시한다.

미국 역사가 이브라함 켄디(Ibraham X. Kendi)는 미국사회와 제도에 깊게 뿌리내린 인종주의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반인종주의자(antiracist)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사회에서 반인종주의를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독자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편집부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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