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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나이토 아키라 지음 『에도의 도쿄』, 호즈미 가즈오 지음 『메이지의 도쿄』김중은 (국토연구원 도시연구본부 연구위원, 도쿄대학 도시공학박사)
편집부 | 승인 2019.09.07 17:33
나이토 아키라 지음, 이용화 옮김 『에도의 도쿄』(논형, 2019년 2월 출판)

“메이지정부가 목표로 한 것은 ‘근대도시’로서의 도쿄였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국의 수도’ 즉 국가의 수도로서의 딱딱한 관리사회를 의미하고 있었다. 요컨대 걸핏하면 쾌적성보다는 국가의 체면과 통치가 우선되어 정치성과 경제성을 추구했다. 그러나 도쿄의 일반시민들은 에도 이후의 시민문화를 이어받아 자유로운 생활공간을 추구했다. 메이지의 도쿄는 ‘천황’의 의향과 ‘시민’의 목소리라는 두 개의 요소가 대립과 공존하면서 성립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메이지의 도쿄, 19p.) 
 
도쿄는 어떻게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16세기까지도 도쿄는 일본열도의 동쪽 끝에 위치한 황무지에 불과했다. 히비야만(日比谷湾) 주변의 갈대밭이 무성한 저습지와 무사시노(武蔵野)의 드넓은 대지로 이루어졌던 도쿄 -그 당시에는 만[江]의 입구[戸]라는 뜻의 에도(江戸)라고 불렀다-가 도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초,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가 이곳에 에도막부를 열고 에도성(城)과 성 아래에 무사들과 평민들의 거주지를 건설하면서 부터이다. 에도시대(1603~1868)가 오늘날 도쿄의 맹아(萌芽)기라면 메이지(明治)시대(1868~1912)는 도쿄가 세계도시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기반을 확립한 시기다. 메이지 신정부는 일본의 수도를 ‘교토’에서 ‘에도’로 변경하고 그 명칭도 ‘에도’에서 ‘도쿄’로 바꾸었다. 메이지시대에 도쿄는 제국의 수도이자 문명개화의 중심지였으며 근대화를 달성하기 위한 모델도시였다. 「에도의 도쿄」와 「메이지의 도쿄」, 이 두 권의 책은 도쿄라는 도시가 태동하여 근대도시로서의 기틀을 갖추게 된 이 300여 년 간의 과정을 일러스트를 곁들여 생동감 있게 기술하고 있다.  
 
사실 우리에게 메이지시대부터 시작되는 일본의 근대화 역사는 제국주의나 침략전쟁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그러한 이유로 이 시기를 다룬 책들을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에도의 도쿄」와 「메이지의 도쿄」는 역사학자나 인문학자가 아닌 건축학자가 정치나 체제보다는 도시계획과 건축을 소재로 그 당시 도쿄라는 도시의 발달과정과 도시민들의 일상생활을 담백하게 담아낸 책이다. 「메이지의 도쿄」의 저자 호즈미 가즈오도 이 책의 끝부분에서 가급적 전쟁과 같은 제국주의 역사에 관한 기술을 자제하고 도쿄라는 도시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공학적인 측면에서 도시계획이란 ‘사람들이 일하고 쉬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의 경계를 구획하고 철도·도로·상하수도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사는데 필요한 기반시설을 효율적으로 설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도쿄의 골격을 형성하고 있는 간선도로, 철도, 수로 등은 대부분 에도시대와 메이지시대의 도시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것들이다. 심지어 지명이나 동네의 분위기 또한 이 시기 도시계획의 영향을 받은 경우가 많다.  
 

호즈미 가즈오 지음, 이용화 옮김 『메이지의 도쿄』(논형, 2019년 2월 출판)

「에도의 도쿄」 저자 나이토 아키라는 오늘날 도쿄가 인구 1,300만의 대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로 17세기 초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구상한 에도의 도시계획을 꼽고 있다. 당시 이에야스는 시가지의 계속적인 확장을 고려하여 에도성을 중심으로 한 ‘달팽이 형태의 수로와 다섯 갈래의 방사상의 대로’를 계획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이후 숫한 대화재나 지진으로 시가지가 소실되는 과정이 반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에도의 시가지는 계속해서 확장되어 갈 수 있었다고 이 책은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19세기 초 도쿄의 인구는 140만 명에 육박하였으며 19세기 중엽에는 도쿄에 1,719개의 마을[町]이 존재하였다고 한다. 한편, 도쿄 니혼바시(日本橋)를 기점으로 하는 방사형 대로에 설치된 역참(驛站) 중에 일부(시나가와(品川), 신주쿠(新宿))는 지금도 도쿄를 드나드는 육상교통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날 도쿄를 상징하는 긴자(銀座)거리 또한 메이지시대 도시계획의 산물이다. 당시 목조주택이 즐비하여 화재에 취약한 도쿄의 거리를 서양과 같은 불연도시로 개조하기 위해 메이지정부가 불연화거리 시범사업을 추진한 곳이 긴자거리다. 저자는 이 계획을 메이지정부가 도쿄에 수립한 최초의 도시계획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수백 년 간 기후에 맞게 발달해온 일본인들의 거주양식을 고려하지 않은,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근대화를 이루겠다는 정부의 일방적인 주장이 관철된 주민부재(住民不在)의 지역개발이었다고 혹평하고 있다.  
 
도쿄는 이러한 권력이 주도하는 물리적인 도시계획만으로 성장해 온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저자는 단언하고 있다. 도시계획가나 건축가, 정치인, 자본가들이 큰 그림(계획)을 그리고 막대한 재원을 투입하여 공학적 측면에서 훌륭한 도시를 만들어 낸다고 한들 도시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생활패턴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도시의 모습을 자신에 맞게 바꾸어 나가기 위해 몸부림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도시의 발전 또한 더뎌질 것임은 자명하다.  
 
저자는 그 당시 도쿄에서 살고 있던 평범한 시민들의 생활을 조명하는 과정을 통해 이러한 명제들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과학기술의 진보만을 추종하여 공학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도시계획으로는 결코 이상도시를 만들어 갈 수 없다. 도시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을 지니고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다시 말해 사람들이 마음의 자유를 낳고 키우는 장소를 계획하는 것이 도시계획의 본질임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이러한 도시계획이야말로 인류가 추구해온 진정한 이상도시를 만들어가는 출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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