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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강흥구 시집 『둥지의 아침』- 집•학교•교회, 세 개의 축에서 울려퍼지는 사랑 노래
이명재 | 승인 2019.08.28 00:18
강흥구 시집 『둥지의 아침』(시문학사, 2019년 8월)

어울리지 않지만 사적인 이야기로 글을 시작해 보자. 강흥구 선생이 시집을 출판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냐하면 그가 걸어온 길과 문학 특히 시와는 별로 관계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학을 전공하고 그것으로 평생 학생들을 지도해 온 사람이 시를 쓴다? 하지만 또 다른 생각이 밀려왔다. 시는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순수하고 꾸밈이 없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게 시이다. 그렇다면 강흥구 만한 사람이 있는가.

은퇴 후에 더 바쁜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이들의 공통점은 은퇴 후 더 젊게 산다는 것이다. 강흥구 시인만 해도 그렇다. 그는 오랜 교사 생활을 거쳐 몇 개 학교 교장을 맡아 학생들을 지도하다가 은퇴했다. 산행과 걷기 운동도 열심히 하고 색소폰도 배웠다. 시 공부도 은퇴 후 그의 생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할배는 시 공부하러 간다”, 13쪽).

시집 발간 소식을 듣고 그가 어떤 시를 썼을까 생각해 보았다. 고도의 테크닉을 구사하거나 비약과 상징으로 점철된 시는 아닐 것이다. 또 미사여구(美辭麗句)를 어지럽게 배열해 놓은 지적 과시 성향의 시는 더더욱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이 보고 겪은 일들을 소박하게 시로 꾸며 놓고 있었다. 

시집 제목이 '둥지의 아침'이다. 1부 '반달 입'에 포함된 시의 제목에서 가져 온 것이다. 좋은 표제라고 생각했다. 두 가지 의미에서 그렇다. 첫째 '둥지'는 새(鳥類)의 집을 말하는데, 사람으로 치면 보금자리, 살아가는 일상적인 집에 해당한다. '둥지의 아침'에 등재되어 있는 거의 대부분의 시는 출발 지점이 화자가 살고 있는 집이다.

둘째, '아침'이란 단어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인데, 여기 나오는 시들은 모두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인간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다양하게 노래하고 있지만 그것들의 궁극적인 결론은 희망(稀望)이다. 학교 교사요 또 교회 장로로서 강 시인은 세상은 살 만한 곳이며 사람의 본성은 선(善)하다고 말한다. 성선설을 따르는 사람이다.

강 시인이 한 학교 교장으로 재직할 때 모두가 문제아로 보는 학생이 있었다. 퇴학시켜야 할 상황까지 간 이 학생을 양딸로 삼아 교화시킨 이야기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런 넉넉한 마음과 사랑이 시인이 되는 씨앗이었을 것이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그의 시에 '사랑'이란 단어가 많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의 처녀시집 <둥지의 아침>은 5부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합해 89 편의 시를 싣고 있는데, 내용 또는 형식상의 분류는 아닌 것 같다. 부담 없이 가볍게 읽어 가면 된다. 시의 특징을 필자는 앞에서 '자신이 경험한 것을 소박하게 시로 꾸며 놓았다'고 했다. 관념의 산물이 아니라 경험의 산물이라는 말이다.

그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빙긋이 웃음지어야 할 때가 많다. 솔직하고 천진스런 표현 때문이다. 가령 이런 시구(詩句)가 대표적이다.

"이만하면 멋지지 않나 싶다가도/좀 더 잘 생겼으면 해 본다"('거울', 12쪽), "바둑에 져서 화가 난다"('바둑을 두며', 25쪽), "아내를 독차지한 줄 알았는데/가슴을 훔쳐간 남자가 있었다"('아내의 남자', 38쪽), "그녀의 얼굴 떠올리다 시험 망쳤다"('아카시아꽃', 70쪽), "낯선 여자와 데이트하는/꿈에서 깼다"('열대야에 생긴 일', 82쪽), "건강 도우미 보건소가 짱이다"('건강 도우미', 113쪽)... .

강 시인은 학교 교장 출신이요 또 교회에서는 장로로 봉사하고 있다. 근엄의 대명사격인 직위를 두 개나 가지고 있는 사람의 생각과 표현이 이렇게 솔직할 수 있을까. 마지막 예문 '보건소가 짱이다'에서 '짱'은 아이들이 쓰는 '최고'라는 뜻의 은어이다. 학생들과 오래 생활해서 그런지 그가 사용하는 시어들이 은퇴한 할아버지의 것이 아니라 대체로 풋풋하다. 

시는 운율의 문학이다. 산문시로 일컫는 것조차 음악성이 배제되어 있으면 시라고 할 수 없다. 강흥구 시인의 시 전반에는 개울물 흘러가듯 졸졸거리는 운율이 가득하다. 시의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는 말이다. 요즘 줄만 바꿔 쓰면 시인 줄 알고 미흡한 시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을 본다. 강 시인은 내용과 형식에서 나무랄 데 없는 시작(詩作)을 하고 있다. 

그가 프롤로그 격인 짧은 '시인의 말'에서 "은퇴 후에 시선을 나 자신에게 돌리자 꽃들의 대화가 들리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 냄새를 맡게 되었다"고 썼다. 내면에서 시심(詩心)을 조용히 가꾸고 있었다는 뜻이다. 강 시인이 은퇴하고 짧은 시 공부 끝에 '어떻게 하다' 보니 시인이 된 게 아니라 시인이 될 수 있는 조건이 잠복되어 있었다는 얘기다.

시를 내용상 또는 형식상 분류해서 이해하곤 한다. 서정시 서사시 극시 등은 내용상의 분류이다. 또 자유시 정형시 산문시 등은 형식을 보고 나눈 것이다. 강흥구의 시를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이 이 정도라면 시의 장르를 하나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았다. 수필시, 이것은 산문시와는 또 다르다. 그의 시는 한 편의 수필을 읽는 것 같은 장면이 그려진다. 다음을 보라.

"아내를 독차지한 줄 알았는데 / 가슴을 훔쳐간 아내가 있었다 //
삼십년 넘게 함께 살다 / 직장 따라 떠난 아들 / 아내의 마음까지 가져갔다"('아내의 남자' 중, 38쪽).

강 시인 자신의 이야기다. 자신에게는 아내요 아들에게는 엄마인 한 여인을 두고 갖는 사념(思念)에서 따스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지 않은가. 다복한 가정을 우회적으로 자랑하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잠복해 있다. 시 '아내의 남자' 전체에 기승전결의 순서로 살을 붙인다면 그대로 한 편의 훌륭한 수필이 될 것 같다. 89편의 시가 다 그렇다. 그래서 '수필 시'라는 언어 조합을 생각해 본 것이다.

서두에 시집 제목 <둥지의 아침>을 설명하면서 강 시인 시의 출발이 집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의 무대는 집 외에도 학교와 교회가 있다. 그러니까 그의 시는 '집+학교+교회'가 삼박자로 호흡을 맞추면서 펼쳐진다. 이 삼박자는 조화를 이루면서 사랑의 메아리가 되어 독자들에게 파고 든다. 다음과 같은 예문을 들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먼동이 터오면 / 할배와 할매는 새벽운동 나서고 / 며느리는 / 아침밥을 준비한다(下略)"('둥지의 아침', 13쪽).

"연못은 연꽃이 공부하는 교실 / 못 가운데 동산의 능소화는 선생님이다(下略)"('연못 학교', 66쪽).

"기도 시간에 내려다보니 / 구두가 약점이라도 잡은 듯 / 빤히 올려다본다...교회에서 예배드리고(下略)"('구두는 안다', 11쪽).

시 '둥지의 아침'은 가족애를 그리고 있다. 가족도 흔한 핵가족이 아니라 '할아버지(나)-아들-손자' 이렇게 3대가 동거하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아름다운 생활을 시로 형상화하고 있다. 여기엔 가족 구성원이 하는 일, 취미 활동, 가사의 분담까지 따뜻하게 보여준다. 강 시인 가족애의 농밀도(濃密度)를 가늠할 수 있는 시다.

'연못 학교'는 그의 학생 사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40년 가까운 교직 생활을 은퇴하고 쓴 시인데, 말이 쉬워 40년이지 이쯤 되면 모든 사물과 현상이 학생들과 학교로 연결시켜 생각하기 쉽다. 그의 집이 접해 있는 연화지를 학교로, 능소화를 교사로 그리고 연꽃은 학생들로 연결 짓는 착상은 오랜 기간 교직에 종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강 시인을 받쳐주고 있는 또 하나의 축은 기독교이다. 그의 삶의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시집 맨 앞에 배치되어 있는 '구두는 다 안다'에 강 시인과 기독교와의 관계를 암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기도는 눈을 감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화자는 눈을 감지 않고 구두를 내려다본다. 구두에게 약점이 잡혔다. 하나님께 일러바칠 눈빛이다. 시인의 맑은 마음이 엿보인다.

지면에 한계가 있어 일일이 설명을 붙일 수 없지만 그의 모든 시에는 가족 사랑, 학교 사랑, 교회 사랑이 넘쳐나고 있다. 시인이라면 누구나 진선미(眞善美)에 사랑을 녹여 시작을 한다. 강 시인도 이런 룰(rule)에 충실하게 시를 짓고 있다. 시는 필요할 때 비유와 상징의 기법을 구사하는데 강 시인도 예외가 아니다. 다음의 몇 개 예는 시인이니까 가능한 비유의 표현이다.

"휴대폰 자동차 지갑 없이/고양이는 하루를 잘도 살아간다"('길고양이와 나', 15쪽), "이 빠진 반달 입으로 함빡 웃는다"('반달 입', 17쪽),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말 한마디', 23쪽), "윈도우 브러시가 밤을 닦으며 공포를 겹겹이 포개고 있다"('비 내리는 밤', 33쪽), "가슴 속의 들국화로 피어 있다"('한로', 45쪽), "코스모스처럼 손 흔들고 있다"('마음의 짐', 48쪽), "야간부 만들 궁리로 대머리가 된 수달 교장선생님"('연못 학교', 66쪽), "샤워한 여인 머리 말리듯이"('뻐꾸기 소리에', 72쪽), "구도자 행색으로/찾아온 가을"('명적암의 가을', 87쪽), "두루미 떼가 초서로 날아간다"('가을 마중', 92쪽)... .

눈에 띄는 대로 옮겨 본 것이다. 시는 관찰로부터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수학을 전공하고 가르친 강 시인인 만큼 관찰력이 날카로우면서도 정밀하다. 다음과 같은 표현은 강 시인 외에 눈 줄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사색에 잠겼던 백로가 / 물 위로 낮게 날며 좌우로 춤을 추더니 / 날쌔게 물고기를 낚아채고 / 강가 낚시꾼을 흘깃 본다"('새벽 산책길', 88쪽).

관찰과 상상의 절묘한 교합이다. 이러한 표현이 시 곳곳에서 보인다. 내용이 풍성하다는 얘기다. 기독교 장로요 학교 교사를 거쳐 교장으로 마무리한 그를 꽉 막힌 사람, 사회의 흐름에는 둔감한 사람, 요즘 젊은 세대가 쓰는 용어로 '꼰대'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강 시인은 젊은이들의 속어도 유효적절하게 쓸 줄도 아는 사람이다('건강 도우미 보건소가 '짱'이다, 113쪽).

강 시인은 문학만을 위한 문학에 매달다리지 않는다. 지금의 사회 현상에 관심도 보인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국민의 도리라고 여긴다. 그는 좌우로 나뉜 이 사회가 하나 되어 화합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춘설'이 그런 시이다. 

"붉게 출렁이는 촛불과 / 태극기 물결 위에 / 골고루 흩뿌리는 눈발...너무 멀리 떨어진 / 좌와 우 / 하나로 모으는 춘설 / 까맣게 타버린 양의 가슴 / 달래준다"('춘설' 중, 63쪽).

가치를 한쪽에 부여하고 상대 쪽을 비난했다면 시뿐 아니라 시인의 위상에도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그러나 강 시인은 좌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제안을 하고 있다. 중용지도(中庸之道)를 걷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이명재 목사(본 신문 발행인, Ph. D)

끝으로 이 시집의 가치는 시 해설을 통해서도 증명되고 있다. 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김송배 시인의 격조 높은 시집 해설로 강흥구를 시인의 반열에 올려놓는 데에 톡톡히 역할하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 시집 출판을 맡은 시문학사도 증명된 시인의 시집만 내 주는 출판사로 알려져 있다. 처녀 시집을 시문학사에서 내는 일은 흔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강 시인의 시필(詩筆)이 깊이를 더하고 더욱 확장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독자 제현의 일독을 권한다.

이명재  lmj2284@hanmail.net

이명재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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