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카페 "풍경"에서....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요? 차를 달리다 보니 충북 영동군 매곡면 공수리입니다.

오늘 36년이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친구가 한명 있었답니다.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카톡이 들어오네요. 요즘 같은 날씨에는 진짜로 일이 하기 싫었는데 어찌나 반갑던지요. 부리나케 하던 일을 멈추고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으로 농장을 나섰습니다. 

직지사 근처에서 건강에도 좋다는
시원한 서리테콩국수로 요기를 하고 
도(道)경계 어디쯤에 있다는 카페 "풍경"을 찾아서 차를 몰았습니다.

벌써 여름이 지쳐 가는지 차창 밖의 
녹음(綠陰)은 검게 변했고 흘러가는 뭉게구름까지 초가을을 연상시킵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제 친구가 36년을 봉직했다고 합니다. 
긴 세월 견뎌낸 이야기를 책으로 쓴다 해도 아마 몇 권은 될 테지요?

괘방령을 넘고 지방도를 따라서 한참을 달렸습니다. 작은 마을의 오솔길까지 돌고 돌았더니 카페 "풍경"이 보입니다.

카페 "풍경".....
왠지 낯 설지가 않습니다. 그동안 꿈꿔왔던 그런 풍경이라고나 할까요. 이미 오래전에 역할이 정지된 것 같은 작은 소류지가 첫눈에 들어옵니다. 

고추잠자리가 잠자는 듯이 앉았다 날아오르고 이름 모를 꽃들은 호기심 많은 방문객을 잠시도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휴대폰에다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저 멀리는 경상도와 충청도를 가르는 황악산이 보입니다. 거대한 백두대간이 성큼성큼 달려들 듯이 밀려옵니다. 
눈까지 시원합니다.

늙수그레한(달리 표현할 마땅한 말이 없네요) 주인장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와 나이대가 비슷한지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들을 불러줍니다.
몇곡을 부르고 합석까지 해서는 살아 온 인생이야기를 구수하게 펼칩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었겠지요?

벽에는 '로단세'라는 드라이플라워로 장식을 했습니다. 요즘은 어딜 가나
건조화(乾燥花)로 장식을 하는군요.
카페를 꾸미는 안목이 돋보입니다.

입구에는 그림 한 점이 있습니다. 주인장이 그렸는지 아님 안주인이 그렸는지....뭐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겠지요? 자신들이 사는 집을 그렸군요. 늦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작품입니다.

그림을 보는데 임태주 시인의 시가 생각이 납니다. 잠시 옮겨 보겠습니다.


      산국화가 피었다는 편지
                              /임태주

“가을해가 풀썩 떨어집니다.
꽃살 무늬 방문이 해 그림자에 갇힙니다.
몇 줄 편지를 쓰다 지우는 여자는
돌아 앉아 다시 뜨개질을 합니다.

담장 기와위에 핀 바위 솔 꽃이
설핏설핏 여자의 눈을 밟고 지나갑니다.
뒤란의 머위 잎 몇 장을 오래앉아 뜯습니다.
희미한 초생달이 돋습니다.

봉숭아 꽃물이 남아있는
손톱 끝에서
詩는 사랑하는 일보다 더 외로운 일이라는데 억새를 흔들고 
바람이 지나갑니다.

여자는 잔별들 사이로
등(燈)을 꽂습니다.
가지런히 빗질을 하고
일생의 거울 속에서 여자는
그림자로 남아
산국화 피었다는 편지를 씁니다.
산국화 피었다는 편지를 지웁니다.”

카페 "풍경"을 나서는데 주인장이 
따라 나와서 사진을 찍어 줍니다. 
그리고는 당부의 말씀도 잊지 않았습니다.

인생 제2막은.... 

"서두르지 말구요.
조급해하지 말구요.
남과 비교하지 말구요.
그동안 직장과 가족에게 헌신했으니, 이제는 자신을 위해서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소." 
그랬답니다. 
퇴직은 또 다른 시작인가 봅니다.

문홍연  gcilbonews@daum.net

문홍연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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