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독자와함께
[수필] 자라 보고 놀란 솥뚜껑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철학박사)
이명재 | 승인 2019.07.13 11:00

며칠 전 오전 시간, 시청에 볼 일이 있어서 갔다. 담당자와 상담을 하고 있는데 휴대폰의 신호음이 진동으로 전화되어 전달되어 왔다. 모르는 폰 번호였다. 대화중이어서 받지 않으려다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조용히 받았다.

"이명재 목사님이시죠? 저는 한국저작권위원회 P인데요. 잠깐 통화할 시간이 되시는지요?"

점잖은 목소리였지만 어딘지 위엄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흠칫 몸이 움츠러들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또 저작권 도용 문제가 발생했음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곳에서 나에게 연락해 올 일이 없었다.

대화중이었지만 굳이 통화하려면 못할 상황도 아니었다. 그러나 혹시 지은 죄가 있다면 그것의 인지(認知)를 연기하고픈 마음이었다. 상담 끝나는 대로 연락드리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시청 간 김에 한 군데 더 들려 일을 보고 나니 30 여 분이 지나고 있었다.

저작권위원회에서 온 전화는 내게 정말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또 무슨 사달이 일어났는지 겁부터 났다. 이태 전 저작권 보호 전문 법률사무소란 곳에서 온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교회 행사 포스터에 사용한 디자인이 저작권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불법 사용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작년에도 비슷한 일을 겪어야 했다. 신문에 작고한 유명 시인의 시를 소개하면서 그 시인의 사진을 함께 실었다. 사진은 대백과사전에서 가지고 왔다. 대백과사전은 만인에게 공개된 것이어서 사용해도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한참 뒤 내용증명 우편물을 한 통 받았다.

사진은 저명한 사진작가의 작품으로 무단 사용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이었다. 명기된 연락처로 급히 전화를 했다. 고인이 된 사진작가의 아들이라고 했다. 모든 지적 재산권을 물려받았다고 했다. 법적 처리까지 가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일정액의 사용료를 송금하라고 했다. 그가 말한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부터 '저작권'이란 말만 들어도 겁부터 난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저작권위원회라는 곳에서 온 전화를 받았으니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일을 끝내고도 몇 번을 망설였다. 전화를 넣어야 할지 아니면 기다려야 하는 건지... . 전화를 하는 것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저장되어 있는 번호를 찾아 버튼을 눌렀다.

그가 먼저 알아보고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이상했다. 저작권 위반 문제라면 이렇게 반갑게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될 텐데... . 갑자기 정신이 흐트러졌다.

"예, 여쭤볼 게 있어서 전화 드렸었습니다. 권오순 선생님을 아시는지요?"

순간 마음이 푹 놓였다. 아마 상대방은 듣지 못했을 것이나 ‘휴우~’하는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이유가 있다. 권오순 선생에 대해 물어보는 것으로 볼 때 적어도 나의 저작권 위반 건은 아닐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 목소리도 평정심(平靜心)으로 돌아왔다.

지난 5월 17일(金) '문학의 집 • 서울' 주최로 열린 '금요문학마당 193' '그립습니다 권오순' 홍보 포스터

 "예, 잘 알기는 하지만 그분은 돌아가신지 오래 되셨습니다."

"저희도 잘 압니다. 교과서에 실린 권 선생님 글에 대한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혹시 권 선생님과 관계되는 유족이 계신가 하구요. 목사님이 쓰신 글을 보니까 남동생이 있는 것 같은데요... ."

"아, 남동생이 아니고 제부입니다. 그러니까 권오순 선생 여동생의 남편 되는 분이죠. K 중학교 교장으로 재임하고 있을 때 한 번 뵌 적이 있는데, 그분은 권 선생님보다 먼저 작고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분의 부인이자 권 선생의 여동생 되는 분도 돌아가셨다고 들었구요."

"혹시 그 교장 선생님의 자녀분들은 안 계신가요? 있다면 그분들에게라도 저작권료를 지불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 액수가 상당하거든요."

"여동생에게 자녀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본 적도, 있다는 말조차 들은 적이 없으니까요."

5년 전쯤 전인 것 같다. 그때도 이와 비슷한 전화를 한국저작권위원회로부터 받은 적이 있었다. 한 여성 직원의 전화였는데, 연고자를 알지 못한다고 간략하게 답하니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권오순 선생의 동시 '구슬비'는 거기에 곡을 붙여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려 있다.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듣고 있는 자체로 마음에 평온이 찾아드는 노래이다. 만주 용정에서 발행되던 <가톨릭소년>지에 실린 1937년 발표작이니까 80년이 넘는 나이를 갖고 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P의 전화가 권오순 선생과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나에게는 아름다운 장면의 추억들이다. 전화 통화를 하고 나서 두 가지를 다짐했다. 법을 지키면서 살자. 의식하지 못하고 짓는 죄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죄일지라도 알고는 짓지 말자. 또 맑은 동시를 쓰는 마음으로 살자. 구슬비의 권오순 선생처럼... .

‘자라 보고 놀란 솥뚜껑’은 성립되지 않는 말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에서 가져온 것이다. 모르고 지은 행위 때문에 대가를 치른 경험이 그 기관에서 온 전화에 화들짝 놀라게 했다. ‘저작권위원회’란 말에 지레 겁을 먹었으니…. 이 속담의 예화가 되고도 남지 않겠는가.

이명재 목사(본 신문 발행인, Ph. D)

* 첨언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혹시 권오순 선생님과 먼 관계나마 인척 되시는 분이 이 글을 본다면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연락해서 권 선생님 저작권 보상을 말끔하게 해결하면 좋겠습니다.

이명재  lmj2284@hanmail.net

이명재  lmj2284@hanmail.net

<저작권자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명재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상호 : 김천일보 김천iTV  |  경북 김천시 거문들1길 88-74  |  전화번호 : 054-436-2287
등록번호 : 경북, 아 00398  |  대표전화 : (054)437-0478  |  등록일 : 2016년 01월 18일  |  발행인 겸 편집인 : 이명재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성숙  |  e-mail : gcilbonews@daum.net
Copyright © 2019 김천일보 김천iTV.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