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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익의 환경칼럼] 쓰레기 처리 기술 발달에 얽혀 있는 ‘불편한 진실’장성익(환경과생명연구소 소장)
장성익 | 승인 2019.07.12 19:53

쓰레기 처리 기술의 발달은 좋은 걸까, 나쁜 걸까? 기술 발달에 힘입어 갈수록 쓰레기를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은 일반적으로 바람직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쓰레기가 종종 사회적 부패나 혼란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간주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쓰레기가 넘쳐나는 탓에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비롯해 이른바 ‘사회 불만 계층’의 환경이 열악해지면 사회 질서나 안정이 위협받는다는 것.

예를 들어, 더럽고 불쾌하고 범죄도 자주 발생하는 슬럼 같은 곳은 위험하고 불온하다는 식으로 생각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해서 쓰레기, 가난한 사람들과 하층 계급, 빈민 주거 지역 등이 뚜르르 한 줄로 엮이게 된다.

그러면서 마치 이것들이 한데 합쳐져 사회 불안이나 무질서, 위험과 혼란 등을 일으키는 요인이라도 되는 것 같은 정치적 효과를 낳게 된다. 이렇게 되면 가난한 사람들, 하층 계급, 비주류 소수자 등은 사회를 어지럽히고 기존 질서와 체제를 흔들 수 있다는 구실 아래 깨끗이 제거해야 할 ‘쓰레기’로 취급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국, 쓰레기 처리가 단순히 오염과 질병을 없애거나 도시 미관을 개선하는 차원을 넘어 이른바 ‘문명화’, 질서 있는 생활방식, 사회 전반에 대한 정치적 관리와 통제 등과도 연결되는 것이다. 이는 곧, 쓰레기 처리와 이와 관련된 공중위생이나 보건의 발전이 직접으로든 간접으로든 기존 사회 질서와 체제를 유지하려는 노력과 맞물려 진행되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런 흐름 속에서 강력하게 떠오른 것이 과학주의와 전문가주의다. 갈수록 쓰레기와 관련한 일을 ‘폐기물 전문가’나 ‘위생 과학자’ 등으로 불리는 별도의 특수한 사람들이 떠맡게 되었다는 것.

이에 따라 쓰레기 처리 또한 보통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 현장이 아니라 별도의 특수한 시설과 공간에서 별도의 특수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과학기술을 활용하고 첨단 시설 등으로 꾸며진 대규모 위생 쓰레기매립장이나 소각장 등이 이를 상징한다.

그러면서 쓰레기와 관련된 정책이나 의사 결정 권한은 소수의 기술자와 위생공학자, 그리고 관료들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쓰레기와 관련된 일에서 일반 시민의 목소리는 줄어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달라진 건 이뿐만이 아니다. 이런 과정에서 어느 사이엔가 쓰레기는 낭비나 환경 파괴의 상징이 아니라 단지 적절한 곳에 효율적인 방법으로 치우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덩달아 쓰레기 처리 또한 갈수록 기술적인 문제로 바뀌어갔다.

쓰레기 문제를 기술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것은 쓰레기를 대량으로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경제 시스템과 사회 구조를 바꾸는 일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말이다. 많거나 적거나 쓰레기가 나오는 대로 그저 기술적으로 처리하기만 하면 된다는 편리한 사고방식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버리게 된다.

쓰레기 처리 전문가들과 특수한 전문 시설들은 그렇게 나오는 쓰레기를 후딱후딱 잘도 치운다. 이제 쓰레기는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된다. 일상생활이나 산업 생산의 현장에서도 멀어진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버리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새로운 도덕관념이 생겨난다.

위생, 건강, 청결, 안전 등을 위해서는 빨리빨리 버리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이 갈수록 널리 퍼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사람들은 자기가 내놓은 그 많은 쓰레기가 어디서 어떻게 처리되는지 잘 알지 못하게 된다.

쓰레기를 버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사실은 그것이 끝이기는커녕 길고 복잡한 쓰레기 전체 흐름의 ‘시작’에 지나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러는 사이에 과잉 소비와 환경 파괴에 따른 마음의 부담이나 책임감, 뭔가 너무 지나치다거나 잘못하고 있다는 감각 같은 것도 시나브로 사라져간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낭비적 문화에 길들여진다.

사람들이 이 지구를 덮치고 있는 환경 재앙을 몸으로 느끼기가 쉽지 않은 건 그 당연한 결과다. 사람들은 그저 소비자로서 이미 다 만들어진 물건을 골라서 살 뿐이다. 치워진 쓰레기를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물건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환경 파괴의 현장들 또한 보지 못한다.

현대인은 그렇게 무감각과 무책임, 그리고 무지의 수렁에 빠져들게 된다. 만약 사람들이 자기가 버린 쓰레기를 자신이 직접 해결해야 한다면 쓰레기가 이렇게나 많아질 수 있었을까? 지금과 같은 이 엄청난 낭비와 탕진의 경제를 쉽사리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위생공학, 쓰레기 수거와 처리 방식, 재활용 기술 등이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오히려 쓰레기는 훨씬 더 늘었다. 어마어마한 쓰레기 더미 위에 거대한 ‘낭비의 제국’을 건설해온 것이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이룩한 가장 특기할 만한 일 가운데 하나다.

이 제국은 쓰레기를 손쉽게 변명하고 합리화했다. 쓰레기가 눈에 띄지 않도록 말끔히 치움으로써 마치 쓰레기 문제가 해결된 것 같은 환상을 심어주었다. 기억할 것은, 이것이 오늘날 세계경제를 호령하는 기업과 자본의 이해관계에 잘 들어맞는다는 점이다.

가능한 한 상품을 많이 만들고 많이 팔아서 최대한 돈을 많이 벌려고 하는 것이 기업이기 때문이다. 즉, 쓰레기가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치워질수록 새로운 소비 욕구를 불어넣기가 쉬워진다는 얘기다. 이처럼 쓰레기는 사실상 환경 논리가 아니라 경제 논리에 휘둘려왔다.

장성익 소장(환경과생명연구소)

두말할 나위도 없이 쓰레기 처리 기술의 발달은 우리에게 큰 혜택과 편리를 선사해주었다. 하지만 쓰레기의 역사에는 이와 관련한 ‘불편한 진실’이 아로새겨져 있다. 이 점을 놓치지 않아야 쓰레기 문제의 해결책도 제대로 찾을 수 있다.

장성익  gcilbonews@daum.net

장성익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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