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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의 진정한 친구-고 이희호 여사를 조문하고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철학박사)
이명재 | 승인 2019.06.14 10:40

우리 나이로 98세면 천수를 다 누린 게 된다. 그래도 그의 죽음에 슬픔이 몰려오는 것은 왜일까. 아마 그가 해 온 일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 장애인, 여성, 이주 노동자 등뿐 아니라 세계 평화와 남북의 통일을 위해서도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기독교학술원 강의를 마치고 종강 기념으로 전체가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2차 다담(茶談) 시간을 뒤로 하고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으로 차를 달렸다. 늘 고마운 것은 이상욱 박사가 발이 되어 함께 움직여 준다는 사실이다. 그의 자량 봉사가 아니었다면 힘겨움이 몇 갑절 더 수반되었을 것이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장례식장을 가면 고인의 일생을 대충 헤아려볼 수 있다. 내로라하는 사람이 죽었는데도 장례식장 분위기가 아주 썰렁한 곳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희호 여사가 안치되어 있는 장례식장에는 조문객들뿐 아니라 조화(弔花) 조기(弔旗)로 가득했다.

조문을 하기 위해서 잠시 대기해야만 했다. 방명록에 이름과 소속을 기입했다. 특이한 것은 통을 준비해 놓고 조문객들의 명함을 넣게 해 놓은 것이었다. 난 잠시 망설여야 했다. '덕천교회 담임목사'의 것을 넣을 것인가 아니면 '김천일보 발행인' 명함을 넣을 것인가. 뒤의 것을 넣었다.

영정 사진을 중심으로 흰 국화가 단(壇)을 장식하고 있었다. 정부로부터 받은 훈장이 영정 옆에 다소곳이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성경책이 펼쳐져 있었다. 또 단 좌우로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화가 조문객들을 맞이했다.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고인의 뜻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위패에는 붉은 십자가 아래 한글로 '장로 이희호'라고 적고 있었다.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정치인 김대중의 부인이라는 명칭과 함께 고인을 늘 따라다녔을 '장로'라는 교회 직함이 내겐 더욱 자랑스럽게 다가왔다. 국화를 바치고 고인의 천국 안식을 비는 기도를 했다. 경건함이 에워쌌다.

상주 자리에는 이 여사의 막내아들 홍걸 씨(민화협 남측본부 대표상임의장)와 그의 부인이 지키고 있었다. 효자로 알려져 있는 홍걸 씨는 마지막까지 자식의 도리를 다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식사 자리가 초만원이었다. 안내하는 분이 마침 안쪽에 자리를 하나 만들어 주어 겨우 앉을 수 있었다.

식사를 하기 전 이 여사가 남긴 유언을 떠올렸다. 김성재 장례위 집행위원장에 의하면 “우리 국민들께서 남편 김대중 대통령과 나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 우리 국민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해서 행복한 사람을 사기기 바란다.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들과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유언을 첫 번째로 남겼다고 한다. 또 “동교동 사저를 대통령사저 기념관(가칭)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노벨평화상 상금은 대통령 기념사업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해 달라”는 유언을 덧붙였다고 설명했다.

여느 때 같았으면 다니면서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관계의 사람들은 서먹서먹하기 마련이다. 옆 테이블에 앉은 김희선 전 의원과는 나올 때 인사를 했다. 그는 나를 보고 멋있어졌다며 반가워했다. 그와는 1989년 국민운동본부 서울본부에서 함께 활동한 적이 있다. 지금은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시간이 허락되었다면 오늘 오후 5시 있었던 추모예배에 참석했을 텐데 아쉽게도 그렇게 하질 못했다. '故 이희호 여사 범여성계 추모예배'가 한국YWCA연합회후원회 강교자 이사장의 인도로 드려졌던 것 같다. 설교(박선희 목사), 기도(백삼현 장로), 성경봉독(김판임 목사), 축도(인금란 목사) 등 여성 목회자가 순서를 맡아 드려진 이 예배에 많은 인사들이 참석했다고 귀뜀해 주었다. 여권 신장을 위해 애쓴 고인을 기리는 자리였던 것 같다.  

하루를 묵고 장례예배를 보고 올까 하다가 강아지 먹이 등 집안 단속을 하지 않고 온 것이 발길을 김천으로 돌리게 했다. 한 정치가의 아내로서, 사회운동가로서, 종교지도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이희호 여사를 한 단어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그를 사회적 약자의 진정한 친구로 정의하며 기차에 올랐다.

이명재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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