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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수상] 망가진 빨간 우산 하나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철학박사)
이명재 | 승인 2019.05.15 09:59

벌써 40년 가까이 되어 간다. 내가 대학 다닐 때였다. 군사정부가 대를 이어 발호(跋扈)할 때여서 사회 분위기가 아주 딱딱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뜻이 맞는 몇몇 지기들과 함께 영세 봉제공장이 많이 산재해 있던 서울 면목동에서 야학을 하고 있었다.

19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였다. 그 당시만 해도 집안 형편이 어려워 진학을 하지 못하고 일찍 생산 현장으로 뛰어들어 돈을 버는 청소년들이 꽤 있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밤 시간을 이용해서 배움에 목말라하는 그들에게 중등부 과정의 교과를 가르쳤다.

없기는 모두가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호주머니를 턴 돈을 모아서 우리는 교재를 사고 간식을 준비하고 소풍을 가고…. 가난했지만 웃음과 사랑을 잃지 않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의미 있는 생활이었던 것 같다.

초여름 장마가 시작되기 전의 장면이 아직도 나의 마음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멀쩡하던 날씨가 저녁 공부가 시작되기 직전, 아이들이 야학으로 올 시간에 굵은 비가 와서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아침 공장 출근 때에 우산을 준비해서 간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저녁 시간에 저렇게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다니….

야학은 성당 지하 교실 몇 개를 빌려 쓰고 있었다. 한 아이가 비를 쫄딱 맞고 교실을 들어섰다. 수건을 찾아 그 아이의 얼굴과 옷을 닦아주고, 안되겠다 싶어 성당 곳곳을 뒤졌다. 몇 개의 우산을 찾아 버스 정류장으로 뛰었다.

검정색, 노란색, 붉은색 등 준비한 몇 개의 우산은 온전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찢어져 나가고 우산대가 휘어지고 살이 부러져 있고…. 하지만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준비한 우산을 버스에서 내리는 야학 학생들에게 하나씩 씌워주었다.

비를 맞을 걱정에 움츠렸던 얼굴들이 환하게 펴졌다. 그 중 어떤 아이는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친척 집에 얹혀 살던 아이였다. 사랑과 정이 몹시 필요한 아이였다.

그에게 씌워진 우산은 그 중 좀 나은 빨간색 우산이었던 것 같다. 자수성가(自手成家)해서 지금은 온전한 가정을 갖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 아이는 지금도 그 때의 일을 떠올리며 고마움을 이야기한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며칠 전에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매년 이맘 때면 잊지 않고 주는 감사 전화이다. 사제지간(師弟之間)이라기보다 오누이처럼 인정을 나누면서 살고 있는 그와 나 사이이다. 애들과 함께 먼 이곳까지 인사를 온 적도 있다.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Ph. D)

어려웠던 시절의 그 망가진 빨간 우산 하나가 그와 나 사이에 사랑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 온 셈이다. 앞으로도 그 아름다운 인연은 계속될 것이다. 소소한 가운데 피어나는 따뜻함, 그것이 행복한 삶 아니겠는가. 감사하다.

이명재  lmj2284@hanmail.net

이명재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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